길 위의 첫날

세비야(Sevilla)에서 길레나(Guillena)까지, 22km

by 올리브

세비야(Sevilla)의 아침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순례의 첫날치고는 지나치게 평온한 아침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마음 한쪽이 조용히 설레었다. 3월 초의 안달루시아(Andalucía)는 낮 기온이 20도 가까이 오른다고 했다. 두툼한 옷 대신 얇은 바람막이 하나만 챙겼다. 괜한 걱정이었는지 햇살은 이미 봄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걷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배낭을 고쳐 메고 도시를 벗어났다. 세비야에서 길레나(Guillena)까지는 22km 남짓, 비아 데 라 플라타(Vía de la Plata) 은의 길의 첫걸음이다. 지도 위에서는 짧아 보이는 거리지만, 첫날은 무리하지 않고 걷자 마음먹으며 잡은 구간이다. 아스팔트는 길게 이어졌고 산업지대의 풍경은 건조했다. 노란 화살표도, 순례자를 안내하는 표지석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순례자의 모습 역시 드물었다. 그래도 맑은 하늘 덕분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스페인의 하늘은 좋다.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이미 눈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첫날은 가볍게 걷자.’

작게 중얼거렸지만 어깨는 금세 무게를 떠올렸다.


출발 2주 전, 임진각의 이른 아침 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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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작은 쉼표, 산티아고』를 출간하고,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폐암 17년차 남편과 여전히 다정하게 하루를 아끼며, 작은 이야기를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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