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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nnievo Mar 08. 2024

입사는 안 했지만 퇴사가 하고 싶어

웨이팅게일을 2년씩이나?

 때는 바야흐로 2018년, 모두가 선망하는 한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간호사의 죽음은 때때로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하였으나, 그 이후의 것들은 적어도 나에게 그 해만큼의 강렬함은 주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평생 이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기 때문이다.
 2018년. 그때 나는 신입생이었다. 한 교수는 '한 부적응자에 의해 병원 관계자들이 귀찮아졌다'라는 식으로 그 사건을 묘사하곤 하였는데, 일말의 간호관도 성립되지 않았던 그 시기의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더랬다. 남들은 한 달만 붙는 프리셉터라는 것을 세 달이나 곁에 끼우고서도 힘들다며 쉽게 삶을 포기해 버린 존재, 그 덕에 윗사람들은 좌천당하고 괜히 병원 분위기만 싱숭해졌다,라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인데 말이다.
 

 나는 대학교를 4년이나 다녔지만 주사를 놔본 적이 거의 없다. 실습 모형은 턱없이 모자랐고, 나에게 돌아온 기회는 적었다. 심지어는 실습 시험을 볼 때에도 시간 절약을 이유로 전 과정을 단순히 입으로만 읊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졸업하자마자 간호사가 되었고, 얌전한 마네킹에게도 바들거리며 주사를 놓는 나는 고함을 지르며 마구 몸을 움직여대는 사람들을 상대로 주사를 놓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5개월 간 병원을 다녔지만 고작 저 주사 하나를 완전히 습득하지 못했다. 그러니 프리셉터가 한 달이 붙든, 세 달이 붙든, 그것은 개인이 소위 말하는 '1인분'을 하기까지에 충분한 기간이 절대 아니다. 애초에 책에서의 완벽히 딱 떨어지는 예시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으니 트레이닝의 결핍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병원은 그렇다고 해서 담당 환자 수를 깎아주지는 않는다. 신규 간호사는 하나의 온전한 간호사로 취급되어, 나에게 빈자리를 마련해 준 이전 근무자의 공백을 어떻게든 채워내야만 한다.
 
 
 가뜩이나 힘든 근무환경에 최근 연달아 일어난 여러 망조는 간호사들을 더욱 궁지로 내몰고 있다. 우선 현재, 2024년, 전공의들의 단체사직으로 인해 수많은 간호사들이 의료공백의 완화를 위해 희생되고 있다. 간호사가 의사 일을 넘본다며 간호법을 거부했던 세상이 억지로 간호사들의 등을 떠미는 꼴이 제법 웃기다. 우리 일만 하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더니 없던 일을 얹어줬다. 그러니 착한 나무꾼에게 금도끼와 은도끼를 함께 쥐어주던 신선은 단순히 동화 속의 일이 아니다. 미련하게 의료공백을 틀어막는 간호사들에게 추가업무라는 은도끼가 쥐어졌으니, 곧 금도끼의 차례다. 이미 2020년의 전공의 파업 때 이용당한 일부 PA 간호사들이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소당한 전적이 있으니, 이번에도 단물만 쪽 빨린 채 버려지는 상상을 그려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게 다, '덕분에 챌린지'를 만들어 낸 노고의 대가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최근 5년 치(2018년~2022년)를 분석한 결과 신규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은 52.8%로 집계됐다. 그래도 괜찮다. 출산율이 0.6%대 선을 돌파하는 상황에서도 간호학과의 정원은 계속 늘고 있으니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전 국민 간호사 만들기 프로젝트'의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니. 그러나 간호사가 하고 싶은 간호학생들은, 간호공부보다는 차라리 영어 공부를 하기를 바란다. 신기하게도, 간호사가 부족하다던 매체의 서술과는 다르게 간호사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파업만 보더라도 예비 신규 입사자들은 예상 입사 시기가 한층 밀렸고, 올드들은 무급 휴직을 권고받고 있다. 간호사들은 필요가 없단다. 그렇다면 정작 필요했을 때에는 어땠을까? 의료진이 부족하다고 그리 떠들어대던 코로나 시기에 입사자 수를 대폭 늘렸던가? 아니, 정작 전쟁 같은 상황에서는 교육시킬 여력조차 없다며 취준생들을 불취업으로 이끌었다. 줄일 땐 줄이고, 늘릴 땐 늘리지 않으면 인력난이 가속화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어떻게든 굴러'가는 상황 속에서 더 많은 인건비를 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끼리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12시간씩 뛰어다니기보다 다 같이 주어진 시간만 적당히 일해서 누군가 긴장할만한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국에서 단 3개월의 간호 경력만 있어도 갈 수 있는 나라가 있다. 그 부근에서는 환자를 보호하기 전에 내 몸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일단 그것이 한국에서는 '몸을 사리는' 행위로 치부되기 때문에 저런 발상을 가르친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지만, 나는 저러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랐다.
 내가 요양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곳은 대체적으로 한가하였으나 워낙 적은 인원으로 근무하다 보니 바쁠 땐 감당할 수 없이 바빠지곤 했는데, 그날은 하필이면 숨 쉴 틈도 없이 바쁜 하루였다. 채혈 후의 주사기가 검사용기로 향하다가 내 손을 향해 돌진하였고, 나는 차마 같이 일하는 이들에게 나라는 부담을 얹어줄 수 없어서 홀로 고군분투했더랬다. 그날 나는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위는 그 어떤 것도 교육받지 못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저 흐르는 물에 손을 대고 있을 때 수 선생님께 들켜(?) 버려서 이것저것 하긴 했는데, 결국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고 해프닝은 그대로 끝이 났다. 혈액으로 옮을 수 있는 병은 수없이 많지만, 나는 그저 '없겠지'라고 믿을 뿐이다.
 내가 유독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근무한 탓도 있겠지만, 큰 병원이라고 간호사를 더 생각해주진 않는 것 같다. '응급 오프는 온콜 상태', '아프더라도 출근하고 아파라', '내 열이 40도까지 치솟았지만 30도의 환자를 위해 뛰어다녔던 하루' 등의 썰들이 수도 없이 터져 나오니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나는 이 기다림이 무용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리도 시간을 허비하는가. 1년이 고작일 것이라 예상했던 나의 웨이팅이 2년으로 늘어날 전망인데, 이것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나는 맛집도 1시간이면 기다리고 2시간이면 포기하는 사람인데, 2년이나 기다리라니, 너무 멀고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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