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40대의 친구, 가까이 있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 우정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우정의 본질

by 민토 Apr 03. 2025

40대에 들어서면서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묵직해집니다. 직장에서는 책임이 커지고,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때로는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이 길이 맞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문득 오래된 친구가 떠오릅니다.


어느 날, 몇 년 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예전과 달라진 듯하면서도 익숙합니다. "잘 지내냐?"는 짧은 한마디에 순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우리는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금은 서로 사는 환경도 다르고, 고민하는 문제도 다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때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전처럼 매일 붙어 다니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만, 가끔이라도 안부를 묻고, 지친 하루 끝에 전화 한 통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 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하고,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그런 존재. 어쩌면 친구란, 함께했던 시간이 각자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더 많아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족과 회사가 삶의 중심이 되어갑니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가고, 해야 할 일들이 쌓여가는 동안 친구들과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져 갑니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가까워지려 애쓰기보다 그냥 그렇게 두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던 순간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밤늦도록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별거 아닌 일에도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던 그 시절. 그때는 우정이란 함께하는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시간이 쌓인다고 해서 우정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고, 거리가 멀어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끔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어보지만, 예전처럼 술술 이어지던 대화는 어느 순간 멈춰버립니다.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서로를 너무 잘 알았던 만큼, 지금의 어색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특별한 이야기가 없으니 괜히 쓸데없는 농담을 하다가, 애매한 침묵이 흐르면 "다음에 밥 한 끼 하자"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짓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 '다음'이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예전에는 "한잔하자" 한마디면 곧장 약속이 잡혔고, "밥 먹자" 하면 당연히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일정이 먼저 떠오르고, 머릿속에서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이유들이 자동으로 계산됩니다. 그렇게 한 번 미루고, 또 한 번 미루다 보면, 결국 그 말조차 조심스러워집니다.

변한 것은 우리뿐일까요, 아니면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이렇게 되는 걸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한때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우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존재하는 것 아닐까 싶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랜만에 연락이 와도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고, 설령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적어진 시점이 되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젊을 때는 친구가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였습니다. 늘 곁에 있었고, 언제든 부르면 달려올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됩니다. 함께했던 시간이 길어도, 서로의 삶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인생에서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요?


젊을 때의 친구가 ‘함께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함께 버티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처럼 매일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떠오르는 사람. 힘들 때 문득 연락하고 싶어지고,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한 사람.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숫자가 아니라 깊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많이 만나지는 못해도, 가끔씩이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삶의 조각들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남는 것이 아닐까요. 꼭 자주 보지 않아도,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 그것이 40대 이후의 친구가 가져야 할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 속에서, 친구라는 존재를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나이. 그 관계를 지켜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다시금 생각해볼 때입니다.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우정이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친구란, 인생이 흔들릴 때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잊지 않고 연락을 해보는 것, 작은 관심을 표현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히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최선을 다해 살지만 불안한 마음 : 40대의 삶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