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을 즐길 수 있는 20대

아직 비어 있기에 채울수 있다

by 민토

​주민등록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스무 살,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묘한 해방감과 묵직한 책임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제 부모님의 동의 없이도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내 삶을 내 뜻대로 멋지게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슴을 채우는 시기다. 하지만 그 뜨거웠던 시절을 지나 불혹이라 불리는 40대의 언덕에 올라 뒤를 돌아보면, 그때의 20대는 '완성된 어른'이라기보다는 '어른의 옷을 갓 걸쳐 입은 아이'에 가까웠음을 깨닫게 된다.



​냉정하게 말해, 나이만 성인이 되었을 뿐 사실 20대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가 지극히 정상이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마주한 사회라는 정글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하다.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복잡한 인간관계를 풀어갈 지혜, 시련 앞에서도 내면을 지킬 여유까지 20대가 가진 자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청춘은 이 자연스러운 '부족함'을 견디지 못한다. 텅 빈 통장을 보며 자책하고, 서툰 일 처리에 괴로워한다. SNS 속 타인의 화려한 삶과 비교하며 '나는 왜 뒤처져 있을까'라는 조바심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20대의 특권인 낭만을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40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20대의 가장 큰 무기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그토록 불안해하는 '부족함' 그 자체다. 중년의 삶은 안정을 찾지만, 그 안정은 곧 가능성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 경험과 고정관념으로 꽉 차버린 그릇에는 새로운 것을 담기가 어렵다. 반면, 20대의 텅 빈 공간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여백이다. 가진 것이 없기에 잃을 것도 없고, 그렇기에 두려움 없이 시도할 수 있는 야생성이야말로 20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첫째, 돈이 부족하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창의력과 낭만의 원천이 된다. 40대가 되어 넉넉한 예산으로 떠나는 여행은 편안하지만, 20대 때 낡은 배낭 하나 메고 떠났던 가난한 여행만큼 강렬한 기억을 남기지 못한다. 돈이 부족했기에 우리는 비싼 호텔 대신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았고, 편한 택시 대신 두 다리로 골목을 누볐다. 부족한 예산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남들이 생각지 못한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컵라면 하나를 나눠 먹어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낭만은, 통장이 가벼웠기에 역설적으로 채워질 수 있었던 마음의 풍요였다.


​둘째, 지식과 배움이 부족하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겸손함의 토대가 된다. 나이가 들면 '나도 안다'는 아집이 생겨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되기 쉽다. 하지만 '나는 아직 모른다'는 20대의 솔직한 무지는 스펀지처럼 세상을 흡수할 수 있는 최고의 학습 태도가 된다. 모르는 것이 많기에 호기심이 왕성하고, 부끄러움 없이 질문할 수 있다. 아직 내 안에 정해진 답이 없기에 타인의 의견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기존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혁신이 겁 없는 청춘들의 손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셋째,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할 만큼 치열하게 부딪히는 과정은 삶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든다. 학업, 취업 준비, 아르바이트로 숨 쉴 틈 없이 바쁜 20대의 시간들이 때로는 가혹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깨지고 넘어지는 과정은, 훗날 편안한 안락의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삶의 야성을 길러준다. 상처받고 아파하며 흘린 눈물은 마음의 굳은살이 되어 웬만한 시련에는 끄떡없는 회복탄력성을 만들어준다. 40대가 되어 마주할 더 큰 파도를 넘을 수 있는 힘은, 바로 20대라는 거친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배운 수영 실력에서 나온다.



​그러니 사랑하는 20대여, 지금 당신을 감싸고 있는 그 부족함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 하지 말고 마음껏 즐겨라. 부족하다는 것은 아직 채워질 자리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고, 서툴다는 것은 성장할 폭이 광활하다는 증거다.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출발하는 모험은 없다. 결핍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며, 불안은 우리가 안주하지 않고 깨어있게 만드는 알람이다.

​빨리 어른이 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빈칸을 채우기 위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그 갈증과 허기짐은, 당신이 살아있고 성장하고 있다는 가장 뜨거운 신호다. 40대가 되어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서서히 잃어버리게 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부족함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를 바란다. 꽉 찬 완벽함보다는 어설프지만 나만의 색으로 채워가는 기쁨이 있는 지금이, 먼 훗날 당신이 가장 그리워하게 될 생애 가장 빛나는 시절일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