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Jul 09. 2024

몰입의 슬픔


'몰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이름도 있어 보이는)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가 떠오른다. 원조 몰입꾼이라는 저급한 표현은 죄송하지만 20년 전 몰입 flow의 즐거움을 주장하고 나선 장본인이니 몰입의 원조임은 분명하다. 


칙센트 미하이는 시카고대학의 심리학ㆍ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클레어몬트대학 심리학과 및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이자 ‘삶의 질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몰입(flow)’ 이론의 창시자로 유명한 그는 오랫동안 인간의 창의성과 행복에 대해 연구해 온 세계적 석학이다. (교보문고 저자 소개 인용)


이 몰입을 한국판으로 적용시켜 대 히트를 치신 분이 황농문 박사이다. 칙센트 미하이 박사의 책이 몰입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해 줌을 일깨워주는 이론서라면 황농문박사의 책은  몰입의 힘을 이용하면 누구나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다는 몰입적 사고 실전응용서에 가깝다. 


칙센트의 책 <몰입의 즐거움>에서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세상을 접할 때 쏟아부을 수 있는 에너지는 주의 집중의 절대적 상한선 안에서만 전개된다고 한다. 


누구나의 삶에는 원대하든 소박하든 목표와 꿈이 있다. 개개인이 추구하는 그 목표가 결국 자아의 모습을 결정짓게 된다. 과도한 목표는 절망으로 이르는 지름길이 될 수 있고 평가 절하된 목표는 삶의 의욕을 꺾을 수 있다. 성장을 수반하는 목표 달성은 몰입 없이는 이룰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성인 ADHD가 화두가 되고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알고 보니 ADHD였기 때문이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쉽게 듣는다. 나 역시도 진지하게 성인 ADHD를 의심해 본 적도 있다.


ADHD 뿐만 아니라 숏폼이나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다양한 자극제들의 발달로 인해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으려는 각고의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관심을 받는 것이 '몰입'이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무언가에 깊이 흠뻑 빠져들 수 있는 '몰입'이라고 칙센트 미하이는 말한다. 


무언가를 하다가 거기에 푹 빠져들어 시간 감각조차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인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경험을 한다고 했다. 


그것이 일이든 취미활동이든 무아지경, 물아일체가 되어 행하고 있는 활동과 내가 하나로 융합되는 경험은 지극히 숭고하다. 


모든 주의력이 한곳에 집중이 되면서 사위는 고요해지고 나와 그것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일상에서 그런 경험을 종종 하는데 주로 피아노 연습을 할 때이다. (그렇다고 그 몰입이 온전히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지는 않는다. 극도의 신경증-히스테릭-을 수반하는 경우가 더 많다.)




Theodore Robinson, At the Piano, 1887, oil on canvas



며칠 전 아들의 신청곡이 접수되어 어제 오후 연습을 하고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곡명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이었다. 이 곡을 최초로 친 건 7년쯤 전이지 싶다. 7년 전에 치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악보였으니 정말 '오랜만에 뵙겠습니다'였다. 


더듬더듬 손가락의 머슬 메모리를 일깨워가며 악보를 보는데 그간 꾸준히 피아노를 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한 번 쳐 본 곡이라고 생각보다 금방 멜로디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이런 내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정지아 작가의 <목욕 가는 날>에서 뽑아낸 원픽! 한 문장 '어떠한 세월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재미와 만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몰입에 흠뻑 빠져있을 때 맛있게 구워지는 어떤 냄새가 풍겨왔다. 옆집에서 바비큐를 하나보다 했는데 일순간 내 몰입을 파괴하는 아주 큰 폭발음이 들렸다. 


아이스 메이커의 모터가 폭발이라도 했나 싶어서 벌떡 일어나 부엌을 쳐다보니 파열음의 음원은 아이스 메이커가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잊고 있었다. 



내가 달걀을 삶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 까. 맣. 게 잊어버렸고 나의 냄비는 새까맣게 타버렸다. 


후다닥 달려가서 가스 불을 껐지만 다음 달걀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또 하나 폭발했고 이어서 다른 달걀도 폭발해 버렸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뚜껑을 씌워놨다는 것이다. 안 그랬으면 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튀어나오는 달걀의 파편들을 그러모으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폭발하는 달걀에 안면을 가격 당했을 수도 있다. 


요즘 달걀 값도 비싸서 방목란은 12구에 CAD $8 정도 하는데, 달걀값에 더해 냄비도 날려먹었으니 몰입의 대가가 컸다. 


즐거움이 비극으로 동전 뒤집듯 뒤집어진 오후였다. 이럴 때 내가 꺼내드는 나의 정신승리 카드가 있다. 



No failure, only feedback.



다음부터 달걀을 삶을 때에는 꼭 타이머를 맞춰두자. 나의 즐거운 몰입을 달걀의 폭발음으로 깨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알람 소리로 깨는 것이 무엇으로 봐도 나을 것이다. 


안전한 몰입을 위하여......








표지그림 : Happy Tears is a 1964 pop art painting by Roy Lichtenstein. It formerly held the record for highest auction price for a Lichtenstein painting.

매거진의 이전글 배려하는 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