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멘토를 시댁에서 만나다
좋은 시댁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
재력? 명예? 학벌?
이런 눈에 보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시댁을 '좋은 곳' 또는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댁의 가치관과 그분들의 인품이다.
친구들 중에서 일찍 결혼한 친구 하나는 꽤나 수입이 좋은 사업체를 가진 부잣집의 며느리가 되었다. 공무원 부모님 슬하에 자라 사치라는 건 전혀 모르고 살았던 친구이다. 결혼과 동시에 친구는 온몸을 고가의 물건들로 두르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백화점에 가면 20대 초중반의 평범한 여성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금액의 옷을 척척 사 주셨다. 하지만 내 친구는 누리게 된 '부'만큼 시댁과 남편에게 온 몸으로 충성을 다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친구는 강경한 시어머니를 만나며 신혼 초 꽤나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나 나올 법한 에피소드인 '냉장고 검사'하는 시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아들 집에 온 시어머니는 냉장고를 열어 친구가 만든 반찬을 "우리 아들은 이런 거 안 먹는다"면서 다 버리고 당신이 만든 반찬으로 채워 넣었다고 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나의 친정 엄마의 시댁도 만만치가 않았다. 쇼펜하우어도 울고 갈 우주최강 염세주의자 시아버지와 지금 대치동맘의 시조새 격인 시어머니의 등쌀에 엄마의 결혼관은 철저히 부정적이고 비극적으로 고착되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시댁은 '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시부모님이 한 걸음 다가오시면 두려움에 휩싸인 초식동물처럼 열 걸음은 뒤로 내뺐다. 그러다가 아이가 세 돌이 되기 전에 말레이시아로 아주 내빼고 말았다.
그러나 내가 상담을 받으며 내 인생의 화두를 '성숙한 인간'에 놓고 나니 시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부모님들은 나의 부모님처럼 명문대를 나오신 것도 아니다. 브람스나 바흐를 들으시지도 않는다. 시댁을 방문하면 구성진 트로트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시거나 머리 끄덩이를 잡고 난투를 벌이는 막장 드라마도 즐기신다.
하지만 시댁에 가면 비난, 비판, 지적은 없다. 시어머니는 손주들을 보시면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크게 될 사람들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 말이 처음에는 거북했지만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얼마나 미래지향적인 가스라이팅인가.
손주들이 젓가락질을 못해도, 먹기 싫은 걸 거부하거나, 걷기 귀찮아해도 습관이 잘못되었다고 손주를 지적하거나 나의 육아를 비판하지 않으신다. 시어머니는 당신의 아들들이나 손주들, 그리고 며느리들 모두 '존재 자체로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사랑하신다.
상담을 시작한 초반에 나의 부정적으로 말하는 태도를 버리고 긍정적이고 지지적인 말을 습득하기 위해서 두 명을 롤 모델로 삼았다. 한 명은 오은영 박사님이고 다른 한 명은 시어머니였다.
나는 외국어를 배우듯 기억을 더듬어 시어머니의 언어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경상도 사투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거제도 출신이시다. 지금도 시어머니가 말씀을 하시면 30% 정도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들이나 나 스스로에게 하는 긍정의 언어들은 경상도 사투리를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나만의 언어로 많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물론 시어머니를 친정 엄마와 보낸 시간만큼 가까이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태도가 가식이 아님은 아주버님과 남편을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남편은 검소한 시댁의 다른 식구들과 달리 허세가 심하긴 하지만 아들을 대할 때의 태도를 보면 시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으로 대하고 교정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수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명문대와 인품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모두 지성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 또 시댁에서 많은 걸 느꼈다. 다름을 배울 수 있는 친정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더 낫고 좋다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대조적인 가정환경을 통해 그 안에서 깨닫고 공부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시부모님을 뵙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날 기차역에서 시어머니께서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왠지 코끝이 찡해졌다. 어머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서 나에게 더 많은 가르침과 큰 힘을 주셨으면 좋겠다.
표지그림 : Pablo Picasso, <Mother and child (Marie-Therese and Maya)>,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