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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27. 2024

엄마 신화를 버려야 아이들이 편해진다

무한 '애미'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이번에 한국 여행을 하면서 어떤 생각의 골짜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엄마 신화'이다. 택시 기사님의 '한국이 이 모양이 된 것은 모두 엄마 탓'에 이어 친정아버지의 같은 맥락의 사고방식을 접하게 되었다. 

마지막 점심 식사 자리에서 '애미가 그러니까'라는 '애미 책임론'을 듣게 된 것이다. 


지금의 한국 경제 부흥을 이끈 기성세대들이 지니고 있는 '애미 책임'에 대한 사고방식은 현재의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상담심리학과'의 새 학기가 시작되어 듣기 시작한 <부모교육과 부모상담의 필요성>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지금 한국 사회에 팽배한 경쟁의식의 꼭짓점에 어쩌면 '엄마 책임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아이들의 도덕성, 윤리의식, 인성 등은 분명히 가정환경의 책임이 크게 작용한다. 몇 달 전 교장 선생님에게 대들고 선생님과 교우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두려운 초등학생의 행동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문제의 중심이 된 아이의 배경을 보니 아이 엄마의 문제 해결 태도가 일반적인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단일적인 케이스뿐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금쪽같은 내 새끼'와 같은 육아 코칭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의 문제 행동 원인에는 엄마 또는 부모(아빠, 조부모)가 자리를 잡고 있다. 


아이들의 인성이나 행동에는 엄마(부모)의 책임이 중요하다. 이것은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른 나라여도 명명백백한 일이다. 


한국에서 도드라지는 '엄마 신화'의 문제는 아이들의 과도한 교육열이다. 아이의 성과가 곧 엄마의 업적이 되는 사회적 경향이 엄마들을 채찍질하고 그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성과에 집착하게 된다. 아이와 엄마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없게 되는 것이다. 


한 정신과 의사의 영상에서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다. 과학고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매진했지만 불합격한 아이와 엄마가 상담을 왔다고 한다. 그 엄마는 함께 학원을 보내던 엄마 그룹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오게 되었고 동네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불합격 통지를 받은 날 남편은 아내에게 '자식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애가 떨어졌냐고 엄마의 책임을 물었다. 엄마는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렸다. 


서양에서는 자녀가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것은 아이가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왜 엄마의 책임이냐고 반문하는 한 외국 엄마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서양에서도 이른바 상류층에서는 자녀들의 학업이나 성과를 자신들의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거나 명맥을 이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처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녀들의 성과에 대해 엄마 신화, 엄마 책임론, 엄마 탓을 하는 문화가 팽배하게 자리 잡은 이상 엄마들의 성과에 대한 집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에는 교육 채널이라고 하며 '00대에 보낸 엄마의 비법'이라는 제목 등으로 엄마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온다. 


사회학자인 르마스터스(E.E. LeMasters)가 제시한 '부모기에 대한 신화'에서 '좋은 부모를 만나면 자녀는 훌륭하게 성장한다'라는 항목이 있다. 훌륭하게 성장한다는 의미는 학업적 성취도 있지만 인격적인 성숙도 포함이 된다. 


아이들이 명문대에 가기 위해서는 조부모의 재력,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이 세 박자가 갖춰져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엄마의 물심양면 뒷받침이 자녀를 우수한 성적으로 이끌고 명문대의 진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과 지상주의의 극에 치달으며 잊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거 같다. 


아이의 성과가 엄마의 노력의 결과로 빚어진다는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의 불타는 학구열은 쉬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국의 엄마들이 인에이블러가 될 수밖에 없는 유언/무언의 압박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엄마를 향한 '탓'이 줄어들어 한국의 엄마들이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종국에는 아이들의 행복 지수를 끌어올리는 일이 될 테니까. 





표지그림 : Leah Saulnier,  <Blame It On The Weath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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