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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주리 Jun 12. 2024

깔딱수 60화 -역사를 하는 이유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기쁨

뭔가에 빠지면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그거만 파고들 때가 있다. 주위가 안 보인다. 누구는 집요하다고 하고 누구는 집중을 한다고 한다. 집중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반대로 집중을 못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도 나는 뭐에 빠져도 단단히 빠져있다. 

한동안 수학에 빠진 적이 있었다. 학생 때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그건 아쉽지만 아니다. 다 커서 운명을 바꿀 시험을 다 치고 나서야 뒤늦게 수학에 빠졌다. 교육 회사에 들어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수학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배움이 더딘 나는 그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서야 알게 되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어릴 때 수학에 구멍이 났을 때 메꾸지 않아서 허덕이는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선생님이 설명하면 그땐 안다. 혼자 풀어보면 잘 모른단다. 그럼 모르는 거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여기서 실수를 저지른다. 들어서 아는 걸 자기가 아는 거라고 착각하고 넘어간다. 그러면서 공부가 어렵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려면 기초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소홀이라는 단어를 나에게서 없애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나를 찾아준 아이들이 좀 더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연구하는 데 시간을 더 썼다. 시험 잘 보는 아이들은 출제자의 의도를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 나는 교재를 만든 사람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싶었다. 프로그램식 학습이라고 하지만 분명 목적을 가지고 만든 교재일 텐데 흐름이 궁금했다. 

보려고 하니까 교재 구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본사 수학 연구소에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수학전공자들이라 설명이 명료했다. 스스로 학습원리가 뭔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겨우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 이후 아이들에게 수학의 개념과 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연산 숙달은 아이들과 어머니의 잔소리 몫이다. 선생님은 그저 단순 연산이 아닌 개념과 원리를 이해할 때까지 깨우쳐주면 된다. 

학교 다닐 때 한국사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다. 암기과목은 도무지 극복이 되질 않는 나에게는 사회, 영어가 무척이나 싫은 과목이었다. 덜 외웠으니 머리에 남지 않았음에도 수학처럼 이해하면 문제가 풀릴 거라고 믿는 게으른 학생이었다. 재미가 있었다면 외우는 노력을 들였을 텐데 사회, 역사, 경제 이런 공부는 재미마저 없었다. 재미없는 과목에 한국사가 1등이었으니 평생 친하게 지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사 절대는 절대 없었다. 

한국사를 밥벌이 때문에 억지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내신 시험이 아니라 부담이 없었던 이유도 있다. TV에서 역사 강사들의 쉬운 설명도 한몫했다. 한번 빠지니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데 나오기 싫었다. 교과서나 문제집만 파고 읽던 내가 역사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험이 싫다더니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도전했다. 심화 시험에서 1급을 따야 어디서 명함을 내민다길래 덥석 도전을 했다. 하지만 구석기, 신석기부터 발목을 잡았다.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해야 했기에 멈출 수는 없었다. 

한 번 두 번 같은 강의 동영상을 볼 때마다 알아가는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르는 이야기만 들어서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닐까? 아는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가 있지 않을까? 맞았다. 알아야 들렸다. 모르는 사람 이야기가 들릴 리가 없었다. 사람도 아는 척을 해야 반가운 법! 아이들에게 역사에 나오는 인물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맡은 아이들을 보이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세상에 나갈 나의 아이들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한국사 특강을 시작했다. 

아이들 중에 이미 들어본 이야기라서 반가워하는 친구들이 있다. 더러는 전혀 몰라서 수업 시간에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친구들도 있다.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호기심으로 다가가서 수줍게 인사를 나누다가 어느새 신나게 같이 뛰노는 사이가 된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말이다. 셀럽보다 유명한 세종대왕은 가장 친한 사이고, 만주벌판까지 땅을 넓혔던 광개토 대왕도 아이들에겐 그저 친한 친구다. 영웅 이순신도 아이들에게는 조금 잘 아는 사람이고, 나이가 많은 장수왕도 아이들에겐 그저 친한 친구 사이다. 망할 줄 알았던 고구려를 살린 소수림왕을 아이들은 기특하고 고마워한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니 재미가 있어지는 것이다. 재미있으면 아이들은 빠져든다. 

온라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엔 두 달을 계획한 겨울방학 특강이다. 일주일에 한번 40분 화상으로 진행하는 역사 수업에 아이들이 얼마나 올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역사 수업에 관심이 있었고, 아이보다 부모님들이 권하는 집이 많았다. 아이들은 역사 수업에서 배운 것을 부모님에게 아는 척을 한다. 수학 영어는 몰라도 역사는 부모님보다 많이 아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감은 곧 다른 일상의 관심으로 돌리기도 한다. 역사를 좋아하는 아이는 인물을 깊이 이해하는 연습을 한다. 그것은 옆 친구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도 한다.

특강과 함께 또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한국사 자격증반. 한국사에 관심이 생긴 아이들에게 뭔가를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세상에 많은 학습도구가 있고,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는데 특별히 나를 찾아준 아이들이 고맙고, 수업에 책임감이 생겼다. 성의 있는 강의를 위해 준비과정에 신경 쓰고 리허설도 여러 번 한다. 관련 공부도 하고 역사 동영상도 찾아서 보고 또 본다. 역사 정리노트도 따로 만들고, 블로그에 포스팅해서 공부하고 나서 같이 읽으며 정리하라고도 한다. 

한국사 자격증반 수업 시간에 정조대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정조가 자기 손으로 뽑은 신하를 규장각에서 공부시키고 밤늦도록 연구와 일을 시켰다고 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여 재교육까지 시켰다고 하니까 좀 어려웠나 보다.

"우리 한국사 시간을 딱 40분만 하는 게 아니고 수업 이후 밤늦게까지 보충수업을 한다면 너희들이 좋아하겠니? "

"네~~ 할래요. 재미있어요. 늦게까지 해도 돼요~"

"선생님은 잘 건데 그만하자."

"조금만 더 해요~"

아이들이 변했다. 첫 수업에 쭈뼛거렸던 아이들이 이젠 시험을 떠나서 역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문제가 풀린다면서 좋아한다. 쪽지시험을 봐도 척척이다. 밤 9시 넘어서 하는 온라인 수업이 뭐가 좋다고 졸지도 않고 끝까지 듣는다. 심지어 마지막 인사를 하고도 나가지 않고 선생님이랑 수다를 떨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역사 공부를 하면서 학교에서 한국사 박사라는 소리를 듣는단다. 얼마나 대단한 훈장인지 모른다. 본인 스스로도 뿌듯해한다. 선생님도 역시 뿌듯하고 기특하고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자격증 시험이 처음인 아이들에게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 합격증을 받으면 세상이 조금은 달리 보일 테니 그때까지 나는 아이들이 더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방법을 찾아보자!


한국사에 빠져 역사에 관심을 갖고 나아가 일본사까지 관심의 폭을 넓힌 아이가 생겼다. 그것에서 끝이 아니라 혼자 책을 읽고 선생님에게 따로 일본사 공부한 것을 발표하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아이가 자발적으로 공부하는데 선생님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일본 역사라는 새로운 학문은 흥미로웠고 아이는 성의가 있었다. 정성껏 준비한 발표 자료를 블로그에 포스팅도 하라고 했다. 아이의 성장이 보였다. 그가 내 제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초등학생이 하기엔 벅차 보이는 것을 거뜬히 해낸 준오 어린이. 이젠 청소년이 된 준오는 중국사와 세계사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역사 박사 준오가 탄생하게 된 것은 오롯 그의 몫이다. 선생님은 그저 아이를 격려하고 관심을 갖게 한 것이 전부다. 

새로운 탄생을 위해 오늘도 역사책을 펼친다. 제2, 제3 ... 준오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가을학기엔 또 어떤 수업을 가져와서 아이들과 즐거운 한 판을 할지 벌써부터 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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