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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주리 May 10. 2023

깔딱수 3화 -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사람


매주 수요일 깔딱고개를 넘어가는 직장인입니다.


수요일마다 깔딱수 연재중입니다.


오늘은 3화 ~



1998년도 졸업도 하기 전 회사 9박 10일 연수를 갔다. 연수를 받다가 중간에 졸업식을 갔으니 참 오래된 이야기다. 그때 처음으로 받은 지역이 강남구 일원동, 수서동, 개포동 이었다. 아이들 가르쳐본 적 없던 새파란 신입이 뭣도 모르고 들어간 회사에서 어버버할 시간도 없이 수업을 인계인수받아야 했다. 동기 5명이 있었기에 힘들어도 서로 서로 의지하며 버텼던 것 같다. 내가 받은 지역은 남자 교사가 하던 지역이라 교사 교체를 기다린 일부 어머니가 있었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그 지역에서는 일이 수월했었다. 소문도 나서 회원도 늘어났었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으면 일이 쉽다. 저절로 회원이 늘어나면 수수료는 더 많이 받는 시스템이라 매달 월급 올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일원동, 수서동에서는 나름 이름을 날리면서 승승장구했었는데, 유독 개포동 한 ** 아파트에서만 회원이 줄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원인을 찾아야 했다. 일원동 수서동에서 늘려놓은 회원 수가 개포동에서 다 까먹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교사인 내가 알아내야 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다른 지역은 일을 좀 못하던 교사의 수업을 받았으니 조금만 잘해도 티가 팍팍 났었다. 그러니 소문도 잘나고 회원이 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개포동 **아파트는 우리 회사에서 제일로 잘했던 선배가 하던 것을 받아서 했으니 어머니들 눈에 찼을 리가 없었던 거였다. 신입이가 1등 교사가 하던 것을 했으니 뭘 해도 잘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안 하던 것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지역을 지켜야 하는데 고민스러웠다. 그럼 입소문을 부탁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고민스러워하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나랑 같은 지역을 들어가는 어문 선생님이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 여자가 바로 문주리라는 것이었다.


" 여기 실력도 없는 젊은 여자가 와서 이 동네 애들 다 망치고 있어! 이러다 애들 공부 못하면 어쩌냐 나는 이제 그만둬야겠다."


내 동기는 그렇게 동네에서 말하는 여자의 집 주소를 알려줬다. 이럴 수가 내 회원이었다. 그것도 그전 선생님한테 회원을 10명이나 소개해 준 돼지엄마였었다. 인수인계 갔을 때 그 어머니는 우리 애들 잘 부탁합니다가 아니라 

" 나한테 잘 보이세요. 그래야 여기서 일도 잘 할 수 있어요. " 

어린 신입교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전 선생님도 그 어머니 너무 좋다고만 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알고 보니 소개해 준 회원 어머니들에게 이제는 교사가 바뀌었으니 그만두라고 본인이 나서서 독려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쁜 x. 요즘의 맘 카페에서 나쁜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랑 다를 게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애들은 계속 시키고 있어서 이런 수작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 했던 것이었다. 매달 그 어머니가 소개해 준 다른 아이들은 하나씩 빠져나갔고, 회원은 점점 줄어서 그 지역에 폭탄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


심각한 사태가 지속되자 그 지역을 빼기로 하고 얼마 안 남은 어머니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었다. 다른 어머니들은 고생했다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 하지만 그 진상 엄마만 "그렇게 일하다가는 이일도 얼마 못하겠어" 하면서 비아냥거림을 날리는 것이었다. 화는 났지만 고객이라 화도 못 내고 이를 바드득 갈고 물러나야 했다. 어쩜 저렇게 저주를 할 수가 있을까? 어린 선생이 애쓰는 것을 보면서 자기는 계속 자기 애들은 공부시키면서 다른 애들은 다 그만두게 할 수가 있을까? 자기애들은 학습지가 아니라 과외만큼 봐주기를 매주 바라면서 이것저것 요구를 할 때 거절하지 못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명확하게 선을 그었을 것을.



아이가 생겨서 집에서 4년 정도 일을 그만두고 쉴 때였다. 우리 집은 3층이었다. 6층에 새로 이사가 들어왔다. 아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몸이 굳었다. 그전에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혔던 그 진상 엄마였다. 시간이 10년도 지났는데 아직도 그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단 말인가? 나름 트라우마였다 보다. 나는 하나도 반갑지 않았는데 그 진상은 나를 너무도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애들도 다 좋은 대학을 갔다는 것이다. 빨리 지나치고 싶은데 계속 말을 걸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세상 좁다지만 어떻게 이곳에서 딱 만날 수가 있을까? 외출이 싫어졌다. 혹시 마주칠까 봐 나갈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피하게 되었다. 이걸 어쩌지?



그러던 어느 날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보니 그 진상 엄마였다. 문을 저렇게 두드리다니. 짜증이 확 밀려왔지만 문을 열어줬다. 막 밀고 들어왔다. 전남편이 술 먹고 행패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이건 뭔가? 자기 좀 숨겨달라는데 당황스러웠지만 나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좀 얻어맞은 몰골이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도 못하고 나와서 한쪽은 맨발이다. 6층에서 도망 나와서 3층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낮에 사람 없는 이집 저집을 두드렸는지 아님 우리 집을 알고 찾아왔는지 알 수는 없었다. 신발도 못 신고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을 들어오라고 할까? 순간 고민을 했지만, 나 몰라라를 절대 할 수 없어서 들어오라고 한 후 문을 얼른 닫았다.


밖에는 부인을 찾는 술주정뱅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문을 닫아도 들리는 공포에 대낮이라 남편도 없이 우리끼리 있는데, 나랑 우리 아기들은 진상 엄마보다 더 겁에 질렸다. 계단은 비틀거리는 발소리와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흔적으로 어느 집도 문을 열지 못하고 우리처럼 벌벌 떨고 있었으리라.


한참을 시끄럽게 떠들더니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소리 지르다 나갔나? 쓰러졌나? 별별 생각을 다했다. 하지만 나갈 수는 없었다. 확인도 못하고 현관 스피커폰으로 집 앞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상 엄마는 정신을 차리더니 미안하고 고맙다면서 간다고 했다.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애들 보기도 나를 보기도 민망했을 터라 막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를 보면 피하는 눈치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묻지 않았다. 그러다 젊은 남자를 집에 데려온다는 소문이 아파트에 돌았다. 확인할 수는 없었다. 술주정뱅이 사건은 온 아파트 주민이 알았고, 관심을 모두 갖고 그 집만 보고 있었는지 아는 사람 별로 없는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나는 걱정이 되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후 이사를 갔다. 당연히 이사 갈 때 인사도 없이 갔다. 더 이상 민망하게라도 마주치지 않아서 좋았고, 좋은 기억 1도 없는 사람이랑 더 이상 가식적으로 인사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날 줄 모르고 사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 언젠가는 그 끝이 있을 텐데 좋은 만남으로 기억되고 싶다. 일로 만나는 사람을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 줄 알고 엉망진창으로 끝을 맺을 수 있을까? 가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끝내는 사람도 있는데 저러지 말아야지 한다. 끝까지 가는 인연이라면 감사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도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 만나는 내 소중한 사람들을 절대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정말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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