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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밍고 Mar 03. 2023

어느 나라 지폐가 세균을 잘 옮길까?

2019년 이그노벨상 경제학상

               


  민우는 잔뜩 신이 났어. 세뱃돈을 어마어마하게 받았거든. 두툼한 돈뭉치를 손안에 쥔 기분은 꽤나 좋았어. 그래서 몇 번이나 세고 또 세어 봤지. 하루 종일 돈을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몰라.

  지금도 막 열다섯 번째 돈을 세어 본 참이었어. 식탁 위를 봤는데 민우가 제일 좋아하는 한과가 놓여 있네. 냉큼 식탁에 앉아 손을 뻗었지. 아까부터 민우를 지켜보던 엄마가 소리쳤어.

  “돈이 얼마나 더러운데 그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어! 얼른 가서 손 씻고 와!”



  많은 사람들이 지폐를 주고받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폐에는 세균이 엄청 많지.

  2014년 미국의 생물학자 제인 칼튼이 지폐에 얼마나 많은 세균이 있는지 알아봤어. 1달러짜리 지폐에 3,000여 종의 세균이 발견되었대. 그중에는 식중독, 폐렴, 궤양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도 있었어. 미국의 미생물학자 크리스 메이슨은 지폐를 ‘세균을 머금은 스펀지’라고 표현했어. 꽤 적절한 말이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한 적이 있어. 2001년 순천향대학 생명과학부 오계헌 교수가 지하철역과 시장에서 1천 원권 지폐 50장을 모아서 조사했어. 지폐에서 평균 1천400여 개의 세균이 발견되었고, 모든 지폐에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균이 나왔지. 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병원균이라고 해. 지폐가 병원균을 옮긴다고 할 수 있지.


  지폐에 세균이 많다는 연구는 여러 번 있었어.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지폐를 비교해 어느 나라 지폐가 세균을 잘 옮기는지를 연구한 학자는 없었지. 이 연구를 한 연구팀은 2019년 이그노벨상 경제학상을 받게 돼. 바로 터키, 네덜란드, 독일의 하비프 게딕, 티머시 보스, 안드레아스 보스로 이루어진 공동 연구팀이야.

  게딕 연구팀은 지폐에 세균을 바르고 일정 시간이 지났을 때 세균이 얼마나 살아있는지 살펴보았어. 실험에 사용한 지폐는 ① 유럽의 유로, ② 미국의 달러, ③ 캐나다의 달러, ④ 크로아티나의 쿠나, ⑤ 루마니아의 레우, ⑥ 모로코의 디르함, ⑦ 인도의 루피, 이렇게 일곱 종류였어.  


  먼저 실험에 쓸 지폐를 깨끗하게 소독해야 해. 원래부터 많은 세균이 묻은 지폐가 있다면 정확히 비교할 수가 없잖아.

  지폐에 두 가지 세균과 한 가지 효소를 발랐는데, ① 황색포도상구균, ② 장구균, ③ 대장균이 잘 자라게 하는 효소였어. 황색포도상구균은 사람의 손에 가장 많이 사는 세균으로 식중독은 물론이고 피부염, 중이염, 방광염 같은 병을 일으키는 균이야. 장구균은 장이나 여성의 생식기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세균인데, 일부가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형태로 진화했어. 이렇게 약을 써도 죽지 않는 상태를 내성이 생겼다고 해. 실험에서는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장구균을 썼어. 면역력이 약한 환자가 이 균에 감염되면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할 수도 있지. 마지막으로 대장균은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균인데, 실험에서는 이 대장균을 잘 자라게 하는 효소를 발랐어.

  지폐에 세균을 바른 뒤 주위 온도를 35도로 유지했어. 그 온도에서 세균이 잘 자라기 때문이야. 우리가 돈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세균이 아주 잘 자라겠지? 사람의 체온은 36.5도니까 말이야.


 3시간, 6시간, 24시간 뒤에 각 지폐에 어떤 세균이 살아있는지 살펴봤어. 3시간이 지났을 때, 크로아티아의 쿠나를 제외하고 모든 지폐에서 한두 가지의 세균이 발견되었어. 6시간이 지났을 때, 유럽의 유로, 미국의 달러, 캐나다의 달러에 한두 가지의 세균이 살아 있었고, 루마니아의 레우는 세 가지 세균이 모두 살아 있었어. 24시간이 지나자 다른 지폐에서는 어떠한 세균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루마니아의 레우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발견되었지.

루마니아의 레우

   그러니까 게딕 연구팀의 실험에서 루마니아의 레우가 세균을 제일 잘 옮길 수 있는 지폐로 밝혀진 거야.  


  게딕 연구팀은 루마니아의 레우에서 세균이 잘 살아남은 건 지폐의 소재인 폴리머(플라스틱 소재 중 하나)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며 이에 관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지.

  ‘지폐(紙幣)’라는 단어에 ‘지(紙)’는 ‘종이’를 뜻하지만, 사실 지폐는 종이로 만들어지지 않았어. 우리나라의 경우 목화에서 뽑아낸 섬유인 면섬유가 기본 재료야. 면섬유는 잘 찢어지지 않고, 또 물에 젖어도 잘 말리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많은 나라에서 지폐의 소재로 면섬유를 쓰고 있지만, 루마니아처럼 폴리머 소재를 쓰는 경우도 있어.

 

  그럼 이렇게 세균이 잔뜩 묻은 지폐를 만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하지 마. 손만 잘 씻으면 돼. 물로 잘 씻으면 대부분의 세균이 사라지니까.



<참고 자료>

- Money and transmission of bacteria(돈과 세균의 전염, 연구 논문)

- 1천 원권 지폐에서 식중동균 9종 검출 (연합뉴스, 2001)

- 지폐에 세균 수천 마리 있다.. 3000여 종 검출 (파이낸셜 뉴스, 2014)

- 지폐, 세균 덩어리인 동시에 면역력 증진 효과 (파이낸셜뉴스, 2016)

- 지폐라고? ‘면폐·플폐’ 아냐? (아시아경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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