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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Apr 27. 2023

물병, 너의 죄를 알렸다!

초1 신입생의 물병 사용 메뉴얼

"엄마, 목말라~ 목말라."

하교 시간에 몽실이를 찾으러 학교에 갔더니, 엄마를 보자마자 아이는 목이 마르다고 타령이다. 아침에 가방에 넣어준 물병을 열어 남은 물을 주려하자, 몽실이 당황한다.

"남은 물 없어."

"다 마셨어?"

체육 활동을 해서 목이 많이 마려웠나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쏟았어."

몽실이 목소리가 작아진다.

"쏟았어? 어쩌다가?"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고 넣어둔 물병이 쏟아져 가방이며, 책이며, 공책을 모조리 젖게 만드는 사건은, 1학년 교실에서는 종종 발생하곤 하는 흔한 일이다.


 "선생님, 00이 가방 밑에 물 흘러요!"

 라는 제보를 받자마자 물이 흐르는 00이 자리에 달려가보면, 역시...

 뚜껑이 열린 채로 거꾸로 박혀있던 물병에서 물이 주르륵~~

 가방의 물건을 모조리 꺼내 창가에 말리고, 가방을 뒤집어 걸레나 화장지로 닦아주는 동안 문제의 물병 주인은 어쩔 줄 몰라하며 내 옆에서 종종 거리고 있다. 저또한 돕겠다고 바닥을 닦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도 걱정하는 얼굴로 걸레를 들고 달려와주기도 한다.


 한차례 소동이 그치고, 문제의 물병을 살펴보면, 저학년 아이가 혼자 열고 닫기 불편해보이는 물병이 대부분.

 "00아, 책이랑 공책은 다행이 많이 젖지 않아서 오늘 다 마를 거 같아. 책가방 속도 닦기는 했지만, 집에 가서 세탁 한 번 하렴."

 아이는 끄덕끄덕. 그리곤 미안하고 부끄러운지 고개를 다시 푹 숙인다.

 "이 물병은 선생님도 잘 닫지 못하겠다야, 엄마께 말씀 드려 네가 열고 닫기 편한 것으로 하나 준비해 주시라고 하면 어떨까?"

 다시 고개를 끄덕끄덕.

 아이 잘못도 아닌데, 수업 시간에 소란을 피워 괜시리 미안한지 주눅들어 있는 모습이 짠해서 머리를 쓰담쓰담 해줬더니, 더 고개를 푹 숙였던 그 아이.


코로나 사태와 함께 아이들에게 필수품이 된 물병.

코로나 이전에는 개인적으로 물병을 챙겨오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학교 복도 여기 저기에 설치된 정수기를 이용하곤 했다. 학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우리 학교엔 버튼을 누르면 위로 솟아오르는 물에 입을 대고 먹는 형식. 개인 컵이나 종이 컵도 필요없는 편리한 방식이라서 아이들은 귀찮게 물병이나 물컵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었었다. 물론 나도 첫째, 둘째를 키울 때는, 매일 물병 세척과 소독에 불편함을 느껴 개인 물병을 챙겨주지 않았던 직장맘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학교 정수기가 폐쇄 되자,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매일 물병을 챙겨야했다. 물병을 깜박하고 잊고 오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각 교실에 생수병을 제공하곤 했으나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개인 물병을 소지하고 다녔다. 작년 말부터는 학교 정수기도 부분적으로 개방하고 있으나 올해도 여전히 공동 사용 정수기에 대한 불안이 남아 있어서 개인 물병을 챙겨주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물병 관련 사건도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공부시간에 물병을 꺼내놓고 달그락 달그락 거린다거나 물병에서 물이 셀까 우려되어 비닐 덮개를 하고 온 친구들이 비닐소리를 바스락 바스락 거리며 수업에 방해되는 소음을 내기도 하고. 물병의 물을 엎어 수업이 일시 중지 되기도 한다. 물병에 음료수를 담아와서 자랑하며 마시는 친구, 그걸 또 선생님께 고자질하러 나오는 친구^^;;


그래도 가장 많은 물병 사건은 물병 뚜껑이 잘 닫히지 않아 가방이 온똥 물바다가 되는 사건이다.

아이도, 담임도 참 난처한 사건.


물병,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


하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은 마음~




코로나가 있기 한참 전, 친정언니 전화 내용이 떠오른다.


"학교에선 물도 마시면 안되니?"


언니의 질문이 너무 쌩뚱 맞아서 난 대답할 말을 못 찾고 망설였었다.


"00이가 물 마시려고 하니 선생님이 못 마시게 했대!"

 

언니의 억양을 들어 보니, 상당히 격양되어 있는 것이 선생님께 화도 나고 서운하기도 한 거 같았다.


"날씨도 더운데!! 왜 물도 못 마시게 하는 거야!"


나는 내 조카의 교실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 보았다.


"언니, 혹시 00이에게 얼음물 싸줬어?"


"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어?"


"00이가 혹시 공부시간에 물 마셨는지 물어봐."


 아마 내 조카는 조용한 공부시간에 목이 마렵다고 물병을 꺼내 책상에 올려두고, 얼음물이 녹지 않자, 물병을 흔들어댔으니라. 무더운 여름엔 흔히 있는 교실 풍경이다.


"맞아, 공부 시간에 목이 마려워서 물 마셨는데, 선생님한테 혼났대! 물 마시는 것도 혼나야 하는 일이니?"


아이고, 이러다가 내 조카 00이의 담임 선생님이 물도 못 마시게 하는 아동학대 선생님 되시겠다!!


"언니,  어떻게 학교에서 애들에게 물도 마시지 말라고 했겠어? 아마 수업 시간이라 그러셨을 거야.

나도 공부 시간엔 되도록이면, 공부에 방해되니까 쉬는 시간에 마시라고 지도하고 있어.

특히, 얼음물을 소리나게 흔들어 대거나 물병 비닐을 바스락 바스락 거리면 다른 아이들 공부에도 방해될 수 있고. 00이에게 목이 너무 마려우면 꺼내서 먹기는 하되, 방해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먹으라고 말해 줘. 되도록이면 쉬는 시간에 마시고. 아마 00이 담임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 하셨을 거야."


 아이들은 집에 와서 학교에서 있었던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을 엄마에게 털어 놓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어하는 거 같다. 아마 내 조카 00이도 "목이 마려운데 선생님이 물도 못마시게 한다"고 말한 이유 뒤에는, 여러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께 핀잔을 듣고 속상한 마음을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어서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학급의 규칙, 예컨대 "물은 되도록이면 쉬는 시간에 마시기, 꼭 마시고 싶으면 수업에 방해되지 않기"등은 잠시 뒤로 감추고,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앞세웠으리라.


 가끔 아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때, 엄마도 그에 동화되어 같이 억울하고 속상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엄마의 역할은 아이와 같이 화내고, 같이 따지기 보다는, 그 아이의 속상함을 조용히 들어주고, 토닥여 주고,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올바른 방향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 초1 몽실이도 제 잘못을 아는지 목소리가 작아진다. 하지만 이내 변명의 카드를 내세운다.

"내가 일부러 엎은 게 아니라! 뒤에 00이가 자꾸 귀찮게 하고 말을 시켜서 그러지 말라고 뒤 돌아보다가 팔꿈치가 물병을 쳤어."

"그랬구나, 많이 쏟아졌어?"

"아니, 물이 거의 없어서 조금 흘렸어, 하나도, 하나도 안 젖었어!!"

"다행이네."

"흘린 것도 내가 다 닦았어! 휴지 갖다가 내가 다 닦았어! 00이는 저 때문에 그런 건데, 미안하다고도 안 했어."

"그랬구나, 속상했겠네. 그런데 혹시 공부 시간에 그랬어?"


몽실이는 화뜰짝 놀라더니 아예 대답을 못한다.

에구 에구, 공부 시간에 그 난리를 쳤구나ㅠ.ㅠ


"공부 시간엔 물병은 가방에 넣어두지 그랬어?"

"알아, 나두 알아, 엄마. 공부 시간엔 물병 꺼내면 안 되는데, 중간 놀이 시간에 밖에 나가서 놀고 너무 목이 말라서, 마시고 막 넣어두려고 했어."


저도 제 잘못을 안다니 다행이긴 하다.


"그래, 그래. 물병은 꼭 뚜껑 잘 닫아서 가방에 넣어두렴. 그리고 네 물병에 물이 다 떨어졌으면 참지만 말고, 복도 정수기에서 받아서 마셔도 돼."


"알아, 나도 알아~ 아 목마렵다~~~."


잔소리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는 듯, 말을 돌리는 초1 몽실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는 내손에 쥐어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딴청을 피우는


이 모든 문제의 범인,


물병을 바라보았다.


매일 너의 그 속을 쑤셔대며 세척하는 것도


이젠 지겹구나.


이제 나도 너,  물병과


그만 헤어지고 싶다!!




 코로나와 함께 너도 어서 우리 곁을 떠나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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