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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y 01. 2023

너무 늦어도, 너무 빨라도 안돼!

초1 급식실에서 살아남기

"오늘은 몇 등이야?"

"2등"

"1등은 양00?"

"응"

"좀 분발하지 그랬어? 매운 거 많이 나왔어?"

"매워도 먹었어. 엄마 좋아하는 추어탕! 한 숟가락 먹어봤어."

"내일은 4등까지 도전해보자."

"3등!! 3등 할래."

"그래, 그래도 앞으로 5등 안에는 들었으면 좋겠다."

"알았어, 알았어! 노력할게요!"


 남들은 점심 메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다는데, 몽실이와 나는 항상 점심 급식 시간 이야기는 몇 번째로 먹었는지, 먹는 등수 이야기다. 오늘도 그렇다.

 몽실이의 오늘 성적은 2등. 앞에서 2등이 아니다. 뒤에서 2등이다. 몽실이반 1등은 항상 양00이란 친구. 병설유치원에서도 같은 반이었던 친구인데, 몽실이와 함께 둘이 앞다투어 1~2등을 했었단다ㅠ.ㅠ

 

 편식이 문제지, 먹는 속도가 무에 중요해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냐고 뭐라고 하실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몽실이는 편식도 좀 한다. 매운 것을 아직 잘 못 먹는다. 김치는 집에서 살짝 씻어서 주고, 매운 국물도 도전하는 음으로 한숟가락 뜨는 정도. 또한 햄, 치킨너겟 등 인스턴트 식품에는 환호하지만, 나물류는 콩나물 무침만 입에 대는 정도다. 그래서 점심 급식 시간에 온통 고춧가루로 요리된 반찬이 식판을 빨갛게 가득 채운 날에는 먹는 속도가 더욱 느려진다. 편식과 식사 속도로 유명한 아이.

 

 그래도 엄마는 편식보다 속도가 더 걱정된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몽실이의 언니, 첫애를 키울 때는 편식 때문에 마음이 항상 불편했었다. 첫애는 입도 짧고, 편식도 엄청났다!! 어쩌다가 밥숟가락에 고춧가루가 하나라도 딸려 들어갔으면 어찌 알아챘는지 "퉤퉤" 뱉으며 맵다고 소리쳤던 예민 덩어리. 그 때는 그 아이에게 다섯 숟가락 밥을 먹이는 것이 목표였을 정도였다. 그랬던 편식쟁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초등학교 중학년 무렵이 되자 매운 떡볶이를 섭렵하더니, 요즘엄마인 나도 도전하기 어려운 막창, 곱창, 마라탕까지 후루룩 할 정도다.

 편식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라는 것을 알기에 몽실이의 편식은 마음의 여유를 두고 차근차근 교육해나갈 예정이다. 먹기 어렵고 싫은 음식도 한 입만 도전해보는 것! 그것만 꾸준히 연습해 준다면 몽실이도 극강의 매운 불닭 볶음면까지 먹어치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학교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교사 입장에서 초1 급식 시간은 그리 평화롭지는 않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천 명이 넘는 대규모 학교이다보니, 급식실에 약 2개 학년씩 시간을 지켜 이용하고 있다. 2개 학년, 약 300~400명이 급식실에 가득 차면, 급식실은 정말 전쟁통 속 같은 곳이 되어버린다.

 특히, 식판도 수저도 스스로 챙기기엔 너무 어린 1학년 학생들, 여기 저기서 수저와 식판을 "쨍그랑~"하며 떨어뜨리기도 하고, 식판을 들고 가다가 서로 부딪혀 뜨거운 국물에 데이는 사고도 발생한다. 뛰다가 넘어져서 모서리에 이마를 다치는 아이, 잔판 처리를 하다가 자신의 옷에 잔반을 엎어버린 아이, 먹기 싫다고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아이도 있다 ㅠ.ㅠ 가끔은 음식물이 목에 걸려 큰 사고가 날 뻔한 일도 있고, 속이 안 좋았던지 먹다가 식판 위에 토를 하는 학생도 있다.



 젊은 시절, 일반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초등 교사의 퇴근 시간이 도마 위에 오르곤 했었다. 왜 4시 30분 퇴근이냐며, 방학 있는 것도 부러운데, 퇴근 시간이 너무 한 거 아니냐며.


 교사는 출근이 빠르고, 점심 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되어 "4시 30분 퇴근"이라고 답변하면, 더 성토하던 친구들. 자신들도 점심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해야는 거 아니냐며, 뭔 특별한 일이 초등 점심 시간에 있길래 점심 시간까지 근무시간이냐고!


 나는  '너희들도 딱 하루만 초등 점심 시간에 근무해보면 그런 말을 못할 텐데'하고 속으로 속상한 마음을 삼키곤 했었다. 나도 너희들처럼 먹고 싶은 메뉴 골라서 느긋하게 점심을 즐기고 싶다고. 나도 점심 먹고나선 좋아하는 커피 손에 들고 직장 앞 공원도 여유롭게 산책하며 점심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그렇게 해서 6시~ 7시 퇴근해도 행복할 거 같다고. 사실 4시 30분 퇴근 시간을 지켜 퇴근해본 적도 드물다고. 퇴근 시간이 지나도 일은 쏟아지고, 간신히 일을 마치고 나면 매일 너희들 퇴근 시간이 되지만, 우리는 초과 수당도 쉽사리 신청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었더랬다.


 담임 교사에게 전쟁 중 최전방 같은 초1 급식시간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리오!


 

 1학년 담임은 우리 반 급식 차례가 되면, 아이들 손을 씻게 하고 줄을 서서 급식실로 입장한다. 학생 혼자서 수저를 들고, 식판을 들고 배식해주시는 급식 조리원 선생님들에게 밥, 국, 반찬을 차례로 받은 후 우리 반 자리를 찾아 앉은 후 식사를 한다.


 1학년은 지정석에 앉기도 하지만, 한 달 별로 급식 순서가 바뀌면 앉는 자리도 변경되곤 하는데, 아이들은 바뀐 자리를 잘 인지하지 못해 식판을 들고 헤메기도 한다^^;; 헤매는 친구들까지 모두 자리에 앉힌 후, 교사는 드디어 숟가락을 들 수 있다. 식사 중에도 여기 저기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면 일어서서 도와주고, 돌아다니며 편식 지도 하고, 장난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학생들도 지도한다.  먹은 친구들 식판 검사도 필수다.

 

 정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약 10여  동안 번개같은 속도로 입으로 밥을 우겨 넣고 있노라면, 앉은지 5분도 안되서 벌써 다 먹었다고 교실로 뛰어가는 친구들이 보인다.

 밥을 먼저 먹은 친구들을 다른 친구들이 모두 밥을 먹을 때까지 급식실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ㅠ.ㅠ 빈 자리가 생기면 급식조리원 선생님들이 얼른 그 자리를 닦은 후 다음 학년 받을 준비를 하셔야하기 때문. 그래서 식사가 끝난 친구는 먼저 교실로 올라가게 되는데, 문제는 담임 교사는 급식실에 남아서 아직 먹지 않은 친구들 급식 지도를 해야하는 것. 밥을 빨리 먹고 먼저 교실로 달려가는 친구들이 걱정되어도, 급식실에 남겨진 아이들을 두고 갈 수도 없는 처지. 정말 분신술이라도 쓸 수 있다면 나를 둘로 나누고 싶은 심정.

 

 담임 교사가 없는 점심 시간의 교실은 정말 정글 같은 곳. 모든 규칙과 잔소리가 없는 천국 같은 곳. 일찍 밥을 먹는 친구들은 그 달콤함을 누리고자 더 빨리, 더 일찍 밥을 대충 먹고 휘리릭 교실로 달려가곤 한다.

 

 담임에겐 이 시간이 가장 아찔한 시간이다. 초1 교실에서 가장 안전 사고가 많이 나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 선생님이 교실에 안 계신 동안 다툼이 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다가 다치는 일이 다반사. 서로 놀잇감을 먼저 차지하려고 얼굴에 손톱자국 나도록 싸우는 친구, 책상에 올라가서 뛰다가 넘어지는 친구, 화장실 문을 쾅쾅 닫으며 술래잡기 하다가 문에 손라가락이 끼어 다치는 친구...

 그래서 밥을 일찍 먹는 아이들에게 안전과 규칙에 대해 다시 한 번 다짐 시키고, 주의를 주지만, 보는 눈이 없는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주곤 하나 보다. 그 맛에 밥을 떠 빨리 먹기도 할 테지.


 급식실에서 유독 밥을 늦게 먹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담임 교사의 머릿속은 그래서 매우 불안하고 복잡해진다.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을 정글의 숲이 그려지기 때문. 유독 밥을 빨리 먹고 달려가던 우리 반 꾸러기의 장난스런 표정이 마음에 걸려, 미안하게도 늦게 밥을 먹는 친구들을 재촉하게도 된다.  "꼭꼭 씹어 먹으렴. 골고루 먹으렴. 이 나물도 먹어볼까?"라고 말하면서 어서 빨리 먹어주었으면, 어서 씹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솔직한 심정. ㅠ.ㅠ


 그래서 내 딸 몽실이에겐

 "골고루 천천히, 즐기면서, 꼭꼭 씹어 먹으렴."

 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오늘은 몇 등 했어?"라고 재촉하는 엄마일 수 밖에 없었다.


몽실아,


너무 늦게도,


너무 빨리도 먹지 말고,


꼭 뒤에서 5등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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