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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Apr 10. 2023

한글 떼기의 조급함

초1 한글 공부는 어떻게?


첫째는 6살, 둘째는 5살에 완수했다.


한글 떼기.


늦동이 몽실이는 셋째라서 느긋함도 있었지만,


몽실이 5살에 코로나 사태가 터져 첫째 둘째 때처럼 한글 방문 교사를 모시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리고 첫째, 둘째를 기르다 보니


아이들에겐 한글 떼기의 적기가 다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간판 글씨에 관심을 갖거나


동화책을 읽어줄 때 그림보다 글자를 더 궁금해 할 때 한글을 시작하니


아이도 쉽게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나도 수월했다.


그래서 셋째는 적기가 오기를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5살 때 보낸 사립 어린이 집에서는


3~4살 어린 유아 때부터 일명 깍두기 공책이라 불리는 국어 칸 공책에 


ㄱ, ㄴ, ㄷ을 쓰고록 하며 한글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고 한다. 


5살 때 그 어린이집에 처음 들어간 몽실이는 


다른 친구들은 이미 가나다라를 다 익힌 후인데 자신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원을 하면 항상 조급하고 걱정스런 어투로


"나 공부해야 해! 엄마! 나만 몰라." 하면서


공책을 펴고 스스로 한글을 보면서 그리곤 했다.


우려스러웠다. 


그 사립 어린이집은 인근에서  꽤 좋은 평을 받는 곳이었다. 그래서 보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들에게 영어를 줄줄 외우도록 시키고, 


동화 구연 대회를 하고, 각종 학습을 시키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몽실이. 주변 아이들 모습에 주눅이 들었나보다. 


 아침마다 어린이 집 안 가겠다고 울고 힘겨워했다. 그땐 왜 몰랐을까. 아이의 버겨움을 ㅠ.ㅠ


 달래고 달래 어린이 집에 넣어두고, 나는 도망치듯 출근을 했으니. 



 다닌지 반 년 즈음 되었을 때 몽실이는 눈을 깜박이는 틱증상을 보였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것이다. 



다섯 살이 얼마나 어린 나이인데.


그래서 병설을 더 선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섯 살이 되기 전 11월부터 재원 등록을 해달라고 애원하듯 설득하시는 담임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내 아이를 위해 병설을 선택했다. 


강압적인 학습에서 해방된 여섯 살 몽실이는 다시 소소한 행복을 찾았다. 눈깜박임 증상도 없어졌다!!!




변명하자면 그래서도 늦었다. 한글 교육이. 


요즘엔 병설 유치원에서도 학부모들의 요구로 인해 방과후 시간에 한글, 수 교육을 해주시기도 한다. 몽실이의 유치원은 7세부터 시작해 주셨다. 행복한 6세 반을 지나 7세부터 한글을 시작했으니, 우리 몽실이 늦기는 정말 늦었다. 하지만, 여기 저기서 방문 학습지 선생님을 통한 코로나 감염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던 터라 방문 한글 선생님을 모시기도 정말 주저되었던 때다.




 서서히 불안감과 조급함이 밀려오던 7세 무렵. 마냥 해맑고 행복하게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는 몽실이지만, 엄마의 조급함은 몽실이의 행복감을 넘어섰다. 서점에서 한글 떼기 시리즈 교재를 3~4권 사서 아침 출근할 때 엄마 교실에 같이 따라온 몽실이를 교실에 앉히고 10~20분씩 한글을 가르쳤다. 하지만, 출근하면 이것 저것 수업 준비며 일할 것이 많은 나는 몽실이 공부를 잘 챙겨주기 어려웠고, 듬성 등성 가르치게 되었다. 그래도 몽실이는 삐툴삐툴 글자를 하나씩 그리면서 쓰거나 스티커를 붙이며 좋아했다.


 "이거 유치원에서 배운 글자인데!"라고 아는 글자가 나오면 좋아도 했다.


 


당장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엄마는 눈앞이 깜깜하다.



물론 요즘 초등 1학년 교육과정에서는 "한글 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학기 내내 국어 시간에는 한글 떼기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한글을 떼지 못하고 입학했다 하더라도, 보통 1학기엔 거의 모든 학생이, 좀 늦으면 학년이 끝나기 전까지는 한글을 떼곤한다.   



 몽실이가 입학하고 얼마 있지 않아 학교에서도 "한글 책임 교육"에 대한 안내장이 보내오기도 했다. 비록 한글을 떼지 못했다 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학교에 맡겨 주라는 내용. 1학기 동안 성실히 한글 교육을 시킬 예정이며 한글을 떼지 않은 학생들을 배려하여 1학기 동안은 알림장 쓰기, 일기 쓰기 등의 활동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얘기.



 그래도 학부모 입장에선 걱정된다.


 다른 친구들이 줄줄줄 읽고 있을 때, 혼자 멀뚱히 앉아서 고개를 갸웃거릴 내 아이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초조함이 밀려온다. 혹시나, 아이들이 "바보"라고 놀리지는 않을까, 무시 당하지는 않을까. 제일 걱정되는 점은 스스로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어디서든 당당히, 자신감 있게! 인정 받으며 생활해 줬으면 하는 그런 바램들이 엄마를 조급하게 한다. 



 사실 학교에서 1학년 신입생들을 지도했을 때, 한글을 떼지 못한 채 입학한 학생수는 학급에 1~2명 정도 있을까 말까 했다.  아이들의 국어 실력은 천차만별. 줄줄 줄글을 멋들어지게 쓰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더듬 더듬 간신히 한글을 읽는 친구, 맞춤법은 조금 틀릴 때가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3~4줄로 표현할 수 있는 친구, 읽기는 읽되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친구... 그래도 얼추 1년이 지나면 엇비슷한 실력이 되어 2학년으로 진급하곤 했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는 없다. 아이 마음이 다치지 않게, 자존감 떨어지지 않게 배려하며 지도하겠다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학부모님들을 안심시켰었다. 


 실제로 1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선생님, 0자는 어떻게 써요?"이다. 


 '모르는 글자를 물어보는 것이 챙피한 게 아니다. 모르니까 알려고 왔다. 그러니 서로 묻고 알려주며 배우자'라며 한글을 잘 모르는 친구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서로 묻고 알려주는 분위기를 만들어 수업했었다. 그러다 보면 서로 알려주며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서로 같이 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 자녀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는 것. 참 요상스럽다. 


 한글을 모른 채 입학해도 담임 선생님께서 살뜰히 가르쳐 주실 것을 믿으면서도 그런 채로 입학시키기는 싫다는 것. 


 코로나가 막바지로 온 전국민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던  2022년 5월, 어쩔 수 없이 나도 한글 떼기 학습지 방문 선생님께 S.O.S.를 쳤다. 교사인 나도 급 공손한 자세로 방문 선생님께 이실직고 했다. 너무 늦은 거 같아 불안하다고.


 "어머니, 아니에요! 늦지 않았어요! 시간 충분해요!"


 입학하려면 10개월도 안 남았는데, 그래서 초조했는데! 


 방문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진작에 시켜주지 못해 죄책감 들었던 마음이 녹아났다.




한글 떼기 적정 시기를 이미 놓쳐도, 너무 놓쳐서


글자란 글자에 온통 호기심을 보이던 몽실이는


그 후 3개월만에 한글을 뗐다.


이젠 제법 줄줄 글도 잘 읽고,


엉망진창 일기도 제법 쓴다.







너는 한발짝 한발짝 제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데,


엄마의 마음을 왜이리 조급했을까.


너보다 앞장서서 "어서 따라와."하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구나.




한글 떼기의 조급함이


앞으로


수학의 조급함, 영어의 조급함, 


교과 학습의 조급함으로 변질되어


너를 재촉하지 않기를,


나도 너의 기분을 잘 살피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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