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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 Feb 26. 2024

그냥 너무 싫어서

한결같이 거지 같은

"전에 네가 해준 이 씌운 그거 옆에 있는 게 엉망이라고

이를 4개를 씌워야 된다네.

네 동생이 2개 해준다고 하는데..(중략)"


명절이 왔다.

이 전화는 그날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명절에 만나지 않음을 빌미 삼아 그렇게 아껴지는 돈만큼 달라는, 언제 들어도 신박한 셈법. 한결같이 노골적이다.

혹시나 얘기가 길어질세라 동생이 드렸다는 돈만큼 보내드렸다. 다른데 쓰지 말고 꼭 치과 가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동안 화답하듯 연락이 없었다. 한 며칠 동안.



"돈도 없는데 이 하지 말까 봐. 4개를 더 해야 된다는데.."

왜 돈이 없지? 송금한 지 1주일도 안 지났는데..

나머지는 제발 좀 알아서 하셔라, 없으면 내가 드린 돈만큼이라도 하셔라 하니 자꾸 말이 길어진다. 제발 돈얘기 좀 그만하자고 일방적으로 쏟아내고는 전화를 끊었다.

움켜쥔 손으로 명치를 몇 번 두드리고 숨을 후우 내쉬었다.

그렇게 명절이 지나갔다.




한 달 가까이 남은 아빠의 생신.

(다음날은 내 생일이지만, 결혼 후 양력생일로 바꾼 후부터 엄마는 내 생일을 기억한 적이 없다.)

어떻게 할 거냐고 엄마로부터 온 문자 한 통.

퇴근하고 집에 와 그 문자를 보고 나서, 먹은 저녁밥이 체한 것 같아 얼른 소화제 하나를 털어 넣었다.

친정집과 우리 집 사이의 거리가 멀어

예전엔 숙소를 잡고 중간쯤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하룻밤 자는 게 싫다는 둥, 그럴 거면 그 돈을 그냥 달라는 둥

그냥 너네 집에 간다는 둥(실제로 몇 번 2박 3일 동안 오셔서 손 하나 까딱 하지 않으시고, 나는 그동안 식모노릇을 했다.)

접점이 생길 때마다 지우고 싶은 기억만 대량생산하는 이유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문자창만 보고 있다 '알아볼게요.'하고 답장을 보냈다. 10분쯤 생각하고 알아보다 내가 친정 쪽으로 가겠노라고 전화를 드리니, 아빠와 의논을 하겠다고 하시더라.



잠시 후 오지 말라는 엄마의 회신문자.

먼 길 오려면 피곤할 텐데 안 와도 된다고, 아빠가 다음에 보자고 하셨단다. 본인이 알아서 아빠께 잘 말씀드릴 테니, 본인이 내게 연락했다는 얘기는 절대 비밀이라나 뭐라나.

엄마의 얘기는 언제나처럼 앞뒤가 맞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일방적이었다.

'네 알았어요, 주무세요.'

공허히 받아친 대답을 보내고 냉수를 들이켰다.

냉수를 들이부어도 부어오른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여기에 들어왔다. 또 이렇게 내 얼굴에 침을 뱉다.

가는 숨을 아껴 쉬며 한 줄 한 줄 적는다.



왜 이런 글을 써야 하냐고 묻는다면,

너무 싫어서.

싫음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관계임이 서러워서.

여기 쓰는 것으로 숨구멍 틔우는,

정상인척 사는 삶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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