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맞죠?
"아, 테스트해 보면 그렇게 나오긴 하더라고요~"
확신의 E상까지는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를 대게 외향인으로 본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가 있으면 은근히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소심한 관종끼도 있고, 강의나 수업을 받는 곳이 있으면 맨 앞자리에 가서 앉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내강사를 꿈꾸며 다양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던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E력이 51쯤 되는 사람이 되었다.
왜 '나이를 먹어가면서'냐면, 짐작하겠지만 나이를 먹기 전에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차벨을 못 누르겠어요..
학생들이 가득 찬 만원 버스. 몇 개 되지 않는 빨간 하차벨에 닿지 않던 손. 누를까 말까, 저걸 누르면 내 머리 위로 조명이 내리쬘 것만 같은 공포. 내려야 하는데 어쩌지 걱정만 하는 사이 멀어져 가는 내 정류장.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정받은 중학교는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로 제법 먼 거리였다. 버스를 타 본 경험이 별로 없던 나에게 가장 무서운 순간은 벨을 눌러야 할 때. 잘 달리고 있는 버스를 나 때문에 세워야 한다니, 말도 안 돼.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전지현은 류시원에게 '저 여기서 내려요'도 했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누르기만 하면 되는 벨도 못 누르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성격에 내가 배신당하는 느낌이 든다. 낯가리지 않고, 처음 본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밖으로 나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 > 나조차 나를 속이며 사는 셈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진짜 나일까.
-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 김신회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건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 들 때면 가끔 어지럽다. 하차벨도 무서워 누르지 못하던 내가 주목받지 못하면 서운한 관종이 되다니.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이웃 어른께 어렵게 인사를 한 아이에게 집에 돌아와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어릴 때 버스에서 벨도 못 눌렀어.
엄마에 비하면 넌 정말 용기 있는 사람 그 잡채!"
소파에 늘어진 아이가 너무나 궁금한 투로 말했다.
왜?
아. 이유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는 거라면 넌 확신의 E다. 날 닮은 줄 알았는데 아닌 게로군.
버스는 잘 타고 다니겠어, 다행이다.
지금으로 보자면 트리플 I였던 중학생이 이제는 마음을 많이 쓰지 않고도 두루두루 사회에 어울린다. 그런 나를 보아왔기에 내 아이의 내성적인 모습들은 마음으로 이해되고, 그것들이 걱정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경험해 보았기에 알 수 있는 것이므로. 과거의 내가 때로는 좋은 육아 선생님이 되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엄마로 만들어준다.
지금의 나에겐 없지만 과거의 나에겐 있었던 모습.
아무도 모르는 내 모습을 나만 알고 있는 거라면
나, 대단하네.
이제 하차벨 두 번, 세 번 누를 수 있는 나, 대단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