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까끌까끌

by 심바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평소엔 불편해서 손이 잘 가지 않던, 보기에는 참 예쁜 옷을 입고, 화장에도 좀 더 신경을 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눈가의 주름은 웃어서 생긴 거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했다가 별생각까지 다 한다 싶어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했다.


너 어제 잘 못 잤어? 되게 피곤해 보여


아뿔싸, 내가 생각했던 첫인사는 이게 아닌데...

내 얼굴을 매만지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친구.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무새에 최선을 다했던 오늘 아침의 내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피곤해 보인다'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라면 걱정이 적절히 담긴 안부인사쯤 되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근황을 나누고 건강이나 영양제 같은 주제들로 연결이 되는.

그런데 나는 왠지 저 말을 들으면 미묘하게 나쁜 기분이 들고는 한다. 꼭 해야만 하는 말이었을까.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듣고 나면 내가 오늘 피곤하지 않고 굉장히 좋은 컨디션이라는 것을 굳이 강조해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최선을 다해 외모를 가꾼 날에는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했다.


나는 오늘 컨디션도 좋고 기분도 좋고 이래저래 모든 게 다 좋아요.

당신은 피곤해 보이지만 말이에요.

적어놓고 보니 나는 배배 꼬인 사람인 것 같다. 그래도 어째,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리는 걸.




< 피곤 >과 더불어 귀에 까끌까끌하게 걸리는 표현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아니지~


이 말은 대화 중에 상대방이 답이 있을법한 질문을 먼저 한 다음 내가 어떤 답을 하고 나면 상대방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던지는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아이유의 3단 고음처럼 3번 언짢아진다.


1. 내 답이 틀렸다고

2. 괜히 고민했네

3. 답정너면 처음부터 말하란 말이다



만나자마자 상대방의 기분을 스을쩍 다운시키기.

맥락도 모르는 사람을 만든 다음 약간은 우월감을 느끼며 상대방 반계단 위에서 대화하기.

언어란 습관이기도 해서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저 표현을 단골처럼 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의 뒷맛 씁쓸한 대화를 하고 나면 늘 생각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지 하고.






설령 좀 피곤해 보이는 안색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칭찬거리를 찾아내 밝은 인사를 건네려는 노력.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상대방이 대답을 하면 "맞아요, 거기다가 ~~" 하고 공감을 먼저 한 다음 덧붙여 이어나가려는 노력.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타인에게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겠다는 굳은 다짐.

조금의 노력들이 모여 내가 나를 좀 더 좋아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