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아침에는 집에서 나와 간선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해서 강남역에 도착, 저녁에는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로 환승해서 집에 도착. 그중 어쩐지 자주 만나 뵙는 것만 같은 기사 한 분이 있다.
퇴근길에 타게 되는 15번 마을버스는 배차 간격이 거의 10분이어서 그런지 항상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이 버스만 타고 가면 곧 홈스윗홈에 도착하므로 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유독 더디게 간다. 버스정보안내단말기에 '15번 곧 도착'이 뜨면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약간은 분주해진다. 이윽고 들어오는 버스에 올라타며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는다. 이때 타의적으로 나의 시선을 앗아가는, 저녁 7시 즈음의 15번 버스기사님.
까만 선글라스, 대충 두른 마스크 그리고 뒤로 돌려쓴 캡모자.
언뜻 보이는 모습으로는 아마 젊은 분인 것 같다. 이 기사님의 버스를 타고나면 손잡이를 평소보다 더 꽉, 힘주어 세게 잡는다. 운전을 제법 터프하게 하시는 분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주 만나 뵙는 기사님은 손님을 이렇게 훈련시킨다.
엄지혜 작가님의 인터뷰집 < 태도의 말들 > 중 어느 버스기사님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오전에는 선진국 버스기사였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기사가 된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운전해야지.'하고 마음을 먹고 시동을 걸어도, 너무나 많은 이례적인 상황과 대책 없는 무례 같은 것들을 겪고 나면 아침에 먹었던 그 마음이 온데간데 없어져버릴 수도. 열악한 조건은 마음의 힘으로만 이겨낼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힙한 착장의 15번 버스기사님은 저녁 7시에 제법 속도감 있게 운전을 하신다. '손잡이 꽉 잡으세요'를 운전으로 형언하신달까. 차가 꽤나 막히는 퇴근시간대에 좁은 도로를 요리조리 질주하는 실력자.
좌회전을 하고 나면 이내 내가 내릴 정류장이 나온다. 2차선으로 바뀌는 데다 골목 교차로까지 있어 차들이 자주 엉키는 곳을 지나야 한다.
지난주 어느 날 저녁, 내리는 문 앞으로 이동해 하차태그를 한 후 다시 손잡이를 꽉 잡고 있다가 허억, 하고 탄식을 뱉어버렸다. 그 골목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기다리며 선을 물고 있는 승용차를 아슬아슬 피해 15번을 몰던 기사님. 버스 문을 쓸고 지나갈 것처럼 내 눈앞을 지나가던 인도의 전봇대. 곡예운전이 바로 이런 것인가, 5cm도 안 남았을 것 같은데. 운전을 진짜 잘하시는구나. 찰나의 순간에 온갖 생각이 폭죽처럼 떠올랐다.
기사님의 버스를 두세 번 정도 탔을 때는 속으로 무엇을 하시던 분일까, 하고 궁금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전봇대사건(?) 이후부터는 호기심이나 궁금함보다 그의 고단한 저녁근무 속 뭉근한 다정함이 더 다가온다. 전봇대 옆을 닿을 듯 지나갈지언정 절대 경적은 울리지 않았던 15번 버스기사님. 손잡이를 꽉 잡아야 할 정도의 속도감 있는 운전으로 힘든 저녁시간 꽉 막힌 도로를 버텨내고 있지만, 버스안과 밖의 사람들에게 짜증 담긴 경적소리는 전하지 않겠다는 그만의 굳센 의지가 느껴진달까.
옆 한번 돌아보지 않는 15번 힙보이 기사님.
쿨한 다정함 앞으로도 쭈욱 부탁드립니다 :)
+)진짜 딱 이런 느낌이었다. 챗G 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