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일련의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부자리 정리, 방청소나 설거지 같은. 그중 으뜸은 단연코 '밥 차리기'가 아닐까.
오늘 저녁은 무얼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냉장고에서 쓸만한 재료를 떠올려보다가, 마땅한 먹거리가 없음을 깨닫고 마트에 가서 장을 한가득 보고 나면 체력고갈 이슈로 그냥 오늘 뭐 시켜 먹을까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 이 길고도 지루한 하루 3번의 일상은 배경이 여행으로 바뀜과 동시에 가장 기대되고 행복한 이벤트로 바뀐다. '제주 흑돼지 맛집', '중문 맛집 내돈내산', '고등어회 오빠랑' 이런 것들을 검색하고 심도 깊게 순위를 매기고 예약까지 해두면 그렇게 든든하고 기쁠 수가 없다. 게다가 숙소에 다양한 메뉴가 구비된 조식뷔페가 마련되어 있다면 그 여행은 아침부터 든든히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지난여름 제주도로 4박 5일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내내 큰 이동 없이 같은 숙소에서 머무르며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기로 한터라 내부에 마련된 식당의 퀄리티는 무엇보다 중요한 점이었다. 다행히 제주도의 특산물까지 구비된 훌륭한 조식뷔페가 있어 매일 아침 고민 없이 여유와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셋째 날 아침이었다. 점심즈음 스노클링을 예약해 둔 터라 아이들을 부랴부랴 깨워 뷔페로 향했다. 화창한 제주 하늘이 올려다보이는 통창 옆 테이블로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으니 옆 호수의 반짝이는 윤슬이 눈을 간지럽힌다. 저마다 먹고 싶은 것들을 접시에 가득 담아 자리로 돌아와 어제의 여행을 돌아보며 식사를 시작했다.
너, 이리 와봐!
따뜻하고 평화로운 아침공기를 가르는 싸늘한 목소리.
내가 앉은자리에서 멀지 않은 테이블에 앉은 남성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직원을 불러 세웠다. 한가로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마저 일순간 조용하게 만드는 생경한 상황에 살짝 소름이 일었다.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식사하고 있는 거 안 보여? 고객이 식사를 하고 있으면 말을 하고 접시를 치워야 될 거 아니야!"
그 남성은 뷔페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을 테이블 옆에 불러 세워 놓고 큰 소리로 삿대질을 해가며 꾸짖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대체 뭘 잘못했길래, 아니 애초에 직원이 잘못한 게 있긴 한 건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어 조심스레 그들의 대화에 더욱 집중했다. 추측 건데 직원이 음식이 거의 비워진 접시를 치웠고, 그 남성은 직원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접시에 조금 남아있던 음식에 대한 대한 시각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를 하고 자리를 떠나려는 직원을 다시 불러 세운 그 남성은 2절을 읊기 시작했다.
"여기는 직원 교육도 안 시켜? 치우기 전에 고객한테 '이 접시 치워도 될까요?'하고 먼저 물어보고 치워야 될 거 아니야! 어쩌고 저쩌고..."
더욱 언짢았던 것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 남성의 맞은편에 앉은 두 여성의 뒷모습이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아내와 성인인 딸. 그녀들은 그 아침 주변의 누구도 식사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남성의 맞은편에 앉아 까끌함이 하나도 없는 우아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들의 뒷모습이 거북해져 시선을 거둬들였다.
세상엔 별 사람들이 다 있잖아요. 힘내세요!
아침부터 삿대질을 받은 그 직원이 곧이어 우리 테이블로 왔고, 나는 속삭이듯 이렇게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 직원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우박을 맞는 일처럼 순식간에 일어나는, 짐작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상황들이 생각보다 빈번히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순간 나의 말은 그를 위한 것임과 동시에 나를 향한 위로였다.
나에게 삶이 다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타인에게 가혹해지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가능하다면, 매일매일이 내게 다정하지 않더라도, 나는 내가 매일매일 다정해지려 노력하는 사람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정하다는 것은 어쩌면 '상태'로서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도'로서 내가 실천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 다정한 매일매일 > - 백수린 -
그 가족은 삿대질 사건 이후 거의 한 시간여 동안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나갔다. 그들이 앉은 테이블의 접시는 다른 테이블보다 조금 더 공들여 치워 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을까.
타인을 윽박지르고 낮춘다고 해서 나의 권위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자명한 이치는 종종 흐려진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그들의 삶에서 '다정함'이 잠시 없었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더 이상 타인에게 가혹한 아침을 내던지지 않기를. 그 상황이 자연스러워지지 않기를, 한 번쯤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