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에 데운 밥을 꺼낼 때, 혹은 뜨거운 음식의 열이 고스란히 전도된 접시를 만질 때 맨 손으로 후다닥 '앗, 뜨거워!'를 연발하며 옮길 때가 있다. 장갑 한 번 꺼내서 쓰면 될 일을 그마저도 귀찮다는 이유로 굳이 위험을 자처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손이야?
몇 번은 '무슨 소리래.'하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럴 때마다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니 그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되는 것이다. 뜨거운 것을 만져도 그걸 느끼지 못하는 손이란 말인가, 내 손은 그래도 된다는 말인가.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점점 더 삐뚤어졌다.
내가 뜨거운 것을 요령껏 만지는 것과는 달리 남편은 손이 그릇에 닿기도 전에 '앗, 뜨거워!!!'를 외치는 사람이다. 막상 내가 만져보면 그 정도로 호들갑을 떨 만큼은 아닌 경우가 다반사였다. 손가락을 부여잡고 큰일이 난 것처럼 방방 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가끔은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닐까.'싶기도 한 오버스러움 그 자체. 그렇게 난리를 피우고 나면 그다음 일들은 자연스레 나의 몫이 된다. 장갑을 끼고 옮기거나, 별로 뜨겁지도 않은 것을 옮기거나. 그러니 그 오두방정이 곱게 보일리가 없다.
1월 1일이 되었으니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며 플래너의 계획을 분단위로 지키는 큰 아이가 밥을 곧 먹었으면 하는 눈치다.(대문자 J랑 사는 건 대체로 좀 피곤하다.) 한 손엔 삼계탕 접시를, 한 손엔 샐러드 접시를 들어 바삐 옮겼다. 몇 걸음 가지 않는 동안에도 뜨거움이 스멀스멀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이걸 놓치면 그야말로 대참사. '앗 뜨거워!!!'를 연발하여 접시들을 옮기는데, 또 남편이 엄마손타령을 하는 게 아닌가.
"대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이제 엄마손 그 소리 좀 하지 마"
"아니, 뜨거운 걸 잘 만지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조심하라고."
"엄마도 뜨거운 거 만지면 손 뜨거워.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 난 그게 아니고 농담인데..."
즐거워야 할 새해 첫 점심식사 시간이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어떤 일이든 경험의 크기가 커질수록 대게 요령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남편의 시각에서 나는 어쩌면 예전보다 뜨거운 것을 잘 만지는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래야 하는 상황이 늘어났을 테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마 전보다 조금씩 더 잘 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왜 그 말이 듣기 싫었을까.
비슷한 말을 해도 다르게 들리는 것은 말한 사람의 경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통해 그 사람이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 그 나름의 깨달음과 통찰이 감동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내 말은 모두 그것들의 결과니까.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 / 김유진
엄마손이라는 말은 남편이 생각하고 고민한 단어였을까.
뜨거운 걸 잘 만지는 게 당연하다는 투로 들어버린 나는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 엄마를 보라며 대단하다고 손뼉 치는 것보다 뜨겁지 않냐며 걱정하며 도와주는 다정함을 기대했다.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한 관찰자 시점의 말투에 마음이 꼬였다.
난데없이 나의 짜증을 뒤집어쓴 남편은 머쓱해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식사시간에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한 마디 덧붙이며.
"앞으로 우리 집에서 엄마손이라는 말 금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