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생태계

by 심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큰 아이는 전학을 했고, 집은 이사를 했다. 흔히들 고민하는 아이의 학교와 앞으로 살고 싶은 동네를 모두 아우르는 선택이어야 했으므로 고민의 시간은 꽤나 길었다. 손가락의 수를 훌쩍 넘는 집들을 보러 다니며 후보를 추리고 협상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동네에 정착했다. 나도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가야 했었고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던지라 아이가 겪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했지만, 학교를 거의 가지 않았던 그 흉흉한 시절이 되려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작은 아이는 언니가 새로 다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모든 것은 대부분 까끌거림 없이 자연스러워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지. 이전에 알고 지냈던 동네 지인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같은 학교나 학원을 다니며 아이들이 먼저 친해진 후 알게 된 '아이친구 엄마'들이 대부분이어서 더욱 그렇게 되기가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지도 않게 된 인간관계는 그렇게 자연소멸되어 갔다.


그런데 딱 한 가족. 다른 친구 때문에 건너 건너 알게 된 이 친구(언니이지만 너무 높고 먼 사람 같은 느낌의 단어라 친구라 씁니다)는 이사 온 지 6년째가 되어가는 지금도 연락을 이어오고 있다. 주기적으로 부부가 같이 만나곤 하는데, 이 주기라는 것이 꽤나 즉흥적이어서 오늘 연락을 하고 내일모레 만나는 식이다. 어려움도, 부담도 크게 없는 우리들 사이. 지난 주말의 우리의 만남 또한 이렇게 성사되었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오지만 우리는 만날 때마다 이 말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야 건강한 사이로 오래 만날 수 있어요."

바라는 게 생기면 기대를 하게 되고, 그 기대의 무게가 서로 차이가 나면 관계는 어긋나게 된다는 것. 친구도 나도 비슷한 연유로 멀어진 동네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헤어짐의 시간 또한 말처럼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서로 더욱 조심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때로는 비슷한 취미를 함께 즐기기도 하고, 서로의 다른 면을 보며 놀라워하기도 한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비슷하다는 것도 우리가 계속 만나는 매개체가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잔잔한 호수 같은 관계의 기본은 '존중'이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

< 태도에 관하여 > - 임경선


좁고 깊은 사이를 지향하는 내가 읽으며 무릎을 탁 친 구절이다. 어느새 나는 관계의 상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너무 억지스럽지 않게, 그렇데 되었다면 그렇게 될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그런 사람.

관계에서 무게를 덜어내고 나니 자연스레 또 다른 관계가 생겨나는 '관계의 생태계'가 내 안에서 건강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감사히 주어진 시간 안에서 나를 더 돌아본다.

어쩌면 외로운, 하지만 마음은 가벼운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