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슈즈는 행복을 싣고
12월 24일은 왠지 크리스마스보다 더 설렌다. 어린 시절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두고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던 두근거림 때문인지, 산타엄빠의 선물을 기다릴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빛 때문인지. 23일과는 뭔가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할 텐데 하는 고민을 매년 한다. 올해는 너무나 운이 좋게도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근 몇 년 동안을 되짚어보면 짧은 여행을 가거나 사람들이 많은 명동 같은 곳을 찾아가곤 했다. 갑자기 매년 그 공연을 보러 간다던 어느 이의 말이 생각났고, 아이들에게 의사를 물었다. 너무나 흔쾌히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저들도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던가 보다. 문제는 크리스마스가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공연예매 사이트는 이미 모든 좌석이 매진이었다. 혹시나 해서 예매를 하고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올린 티켓이 있지 않을까 해서 수소문한 결과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7시 30분 공연티켓을 3장 연석으로 구할 수 있었다. 4층 좌석이기는 했지만 구한 게 어디야 하는 기쁨이 아쉬움을 잠재웠다.
무용수들이 혹여 성냥개비처럼 보일까 봐 오페라안경도 구비해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달뜬 표정의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다. 오페라극장 한가운데 꾸며진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이브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실제 좌석에 앉으니 무대는 정말 멀었고, 하필 앞에 앉은키가 제법 큰 분이 당첨되는 바람에 공연 내내 무대는 그 사람의 머리에 반쯤 가려졌지만 그냥 모든 것이 좋았다.
차이코프스키의 곡 '호두까기 인형'은 대부분 귀에 익은 곡들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발레 공연은 처음이었지만 우리가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건 이해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을 만큼 그 내용이 제법 친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깃털이 나부끼는듯한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의 몸짓에 감탄을 하기에 바빴다. 공연장을 들어가기 전엔 스치듯 지나쳤던 오늘의 캐스팅 프로필 사진을 꼼꼼히 짚어보게 되더라. 저런 몸짓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을 쏟아부었을까 새삼 경이롭게 느껴졌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무대를 주시하던 그 순간 문득 초등학교 때 무대에서 뛰어다녔던 그때가 떠올랐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경제관념이 철저하지 않았던 엄마 덕분(?)에 어린 시절 나는 형편을 생각했다면 할 수 없었을 몇몇 것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현대무용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무용학원에서 인원이 많이 필요한 공연을 준비해야 했고, 가까운 초등학교에서 지원자를 받아 몇 개월 동안 학원을 다니며 그것을 완성시켜 나갔다.
그때 입었던 옷을 잊을 수가 없다. 은은히 광이 나는 핑크색의 전신 무용복. 색깔별로 고운 쫄쫄이를 입은 열댓 명의 초등학생들은 무용학원 원장님의 지시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차이코프스키의 '행진곡'에 맞춰.
그리고 출전한 대회의 단체 분야에서 우리는 1등을 했다.
십수년도 넘은 시절의 일이라 까맣게 잊고 지냈다.
하지만 4층 그 객석에서 '행진곡'을 듣는 순간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어른 같은 화장을 하고 분홍색 쫄쫄이를 입었던 그때로 되돌아갔다.
어떻게 저렇게 발끝으로 잘 서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발레용 토슈즈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던 그 토슈즈. 현대무용을 했던 우리는 맨발이었지만, 무용학원에 있던 발레를 전공한 6학년 선배언니는 늘 우리 수업이 끝나면 발레용 토슈즈를 신고 또각거리며 연습실을 날아다녔다.
어린 나이에도 그 언니가 참 예뻐 보였다.(대회 연습차 전신 쫄쫄이를 입은 날에는 더욱 그래 보였다.) 좀 친해졌던 어느 날 그 언니는 나에게 본인의 토슈즈를 선물해 주었다. 가슴에 고이 안아 들고 집에 와 조심스레 신자마자 발레리나의 세상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도 부럽지 않았다.
그 후로 한동안 집에서 그 토슈즈를 신고 내가 배운 무용을 연습했다. 다리가 한껏 길어지니 자신감도 덩달아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는 대회날 무용학원 원장님께 인사를 하며 '아이가 무용을 너무 좋아해서 집에서 매일 연습했어요'라며 인사를 건네셨다. 앞코가 닳을 대로 닳은 토슈즈는 한동안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음악의 힘이 이렇게도 위대하다니. 4층 객석에 앉아 '행진곡'을 듣는 순간 그때의 스텝과 손짓과 무대가 생생히 떠올랐다. 그리고 순간 행복해졌다, 그때의 토슈즈가 떠올라서.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는 <호두까기 인형> 덕분에 다른 해보다 조금 특별했다. 어쩌다 보니 그때의 나보다 더 자란 두 아이들 옆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추억할 수 있는 기회도 얻어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내년에는 좀 더 낮은 층의 좌석을 구해서 아빠도 같이 보러 오자며 아이들과 웃으며 약속했다.
우리 가족만의 크리스마스 리츄얼이 이렇게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