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윤초를 더해

by 심바

누구나 슬픔에 침잠하는 시간이 있다. 지난여름 나도 꽤 오랜 시간 어둠의 터널에 갇혀있었다. 내가 봉착한 상황의 무게가 지독히도 무거워 다른 모든 것들이 귀찮아지고 무기력해졌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덜어내야 했다. 그렇게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어긋났던 내 삶의 궤도가 제 자리를 찾아왔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옆으로 제쳐두고 잠시 덮어놓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단절 대신 비워둠'은 어떻겠냐고 건네주었던 친구의 편지가 이따금 생각났다. 그 어둠에서 나를 꺼내준 것은 어쩌면 친구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였을지도 모르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엊그제, 우리는 늘 만나던 곳이 아닌 조금 더 번화한 장소에서 만났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가장 멀리서 온 친구는 언제나처럼 해사하게 웃으며 경복궁역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을 두절했던 터였고, 최근에야 어렴풋이 그녀도 어둠의 터널을 지나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간의 걱정 어린 마음을 안다는 듯 따뜻하게 웃어주는 미소가 참으로 반가웠다.




그날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저마다의 삶의 힘듦이 있었고, 약속이나 한 듯이 침잠의 시간을 가졌던 우리들.

창문을 두드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나뭇가지 끝에 달린 그 빗방울을 눈에 담으며 우리는 담담히 억겁같이 무거운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매일 새롭게 나를 아프게 할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은 덤덤하게 서로의 무게를 주고받았다. 친구의 이야기는 하나도 무겁지 않았고, 나의 이야기도 그렇게 가닿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주고받은 무게를 더하면 결국 0으로 수렴할 것을 알기에.






'윤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천문시(天文時)’와 1972년부터 시간 측정의 기준이 된 원자시계 사이의 오차를 없애려고 원자시계로 잰 시각에 더하는 1초.

비 오는 겨울날, 서촌 그곳에서 우리는 미묘하게 어긋나려 하던 우리 사이를 정렬했다, 딱 윤초만큼.


'왜 연락이 없을까.' 하는 궁금증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나.'하고 반성할 거리를 찾다 '어디 아픈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이르러 온갖 오해와 억측을 하고 있는 중이었던 우리. 늘 언제나 시크하고 당당하던 재주 많은 친구는 아프지 않았고, 내가 잘못한 것도 없었다. 차라리 이유를 알게 되어 속이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삶은 고행이어서 때때로 지독하게 잔인하고 그 상처는 소금물을 들이붓는 것처럼 아프다. 딱지가 앉았다 떨어졌다를 수없이 반복하며 각자의 고통을 감내해 온 우리들. 이제는 상처를 들여다보고 보여줄 수도 있을 만큼의 어른이 되었다.






처음 만났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같이 하고 싶은 것도 참 많고, 각자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은 우리. 그날의 시간을 이렇게 글로 쓰는 건, 친구가 남긴 한 줄의 말 덕분이다.


'가끔 이렇게 생각을 꺼내어 살짝 어긋난 있던 걸 정렬하는 것도 필요한 거 같아요.'


다정한 맞춤의 시간을 함께 한 내 친구들이 앞으로 조금씩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나도 그 곁에서 같이 행복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