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 출근을 하는 날에는 종종 남편과 카풀을 한다. 그는 평소의 출근 루트에서 조금 더 돌아서 나의 직장까지 태워주는데, 대중교통으로는 30분이 걸리지만 차로 가면 10분이면 되기 때문에 그런 아침은 확실히 마음이 편안하다. 지구의 안녕을 위해서도 혼자 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야 둘이 낫지.
우리 출근길의 루틴은 아침 라디오방송이다. 얼마 전 조정식의 FM대행진을 듣다가 우리 둘 다 웃음이 픽하고 터져 나왔다. 신입사원 때문에 고민이 있다며 사연을 보낸 청취자는 늘 똑같은 단어를 쓰며 변명을 하는 직원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프린터기 고장 이슈가 있어서 인쇄를 못했습니다."
"지하철 연착 이슈가 있어서 출근이 조금 늦었습니다."
"거래처 연락 이슈가 있어서 전화를 제때 못했습니다."
모든 말에 '이슈'라는 단어를 넣어 변명하는데,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본인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지, 그 직원이 '이슈'를 너무 남발하는 건지 구분이 안된다며, 이제는 그 단어만 들어도 무서워진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알겠어서 더 웃음이 나왔다. 한참을 웃다 직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불길한 소리가 났다. 무릎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을 길바닥에 떨어뜨렸다. 바로 옆이 배수구였는데 거기로 떨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순간 등에 식은땀이 났다. 남편에게 '오늘 휴대폰 이슈 생길 뻔'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에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고 답장이 왔다.
모든 상황에 놀랄만치 만능으로 어울리는 단어들이 있다. 그 사연이 더욱 재미있었던 건 그가 쓴 '이슈'라는 단어가 묘하게 어디에나 착 붙어서가 아니었을까. 다만 그 선배가 고민을 토로했던 건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든 말에 그 단어를 갖다 붙여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거슬림 이슈'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사는 사람과의 대화의 절반 이상이 일터 이야기인데 주로 내가 고민을 들어주는 편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7년 차 일꾼이니까.)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는 대부분 "네가 디테일이 부족했다"로 마무리가 된다.(매번 같은 답을 해주는데 왜 안 고쳐지는지 잘 모르겠다.)
< 일꾼의 말 > - 강지연, 이지현 -
같은 연장선 상에서 '디테일이 부족하다'라는 말 또한 다양한 상황에 은근슬쩍 다 어울리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결국 부족한 디테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그 디테일이라는 것이 담고 있는 상황과 어려움들은 3글자가 아니라 300글자로도 모자란 것들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디테일이 부족해서 그래.'라고 하면 무언가를 꼬집어 지적하지 않아도 대략적으로 모든 일에 대한 이유가 된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디테일'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명확히 알려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루뭉술 지적만 한다면 디테일 부족한 오지랖이 될 수밖에.
김영하 작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졸업할 때까지 '짜증 난다'는 표현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서운하다', '억울하다', '속상하다'와 같은 수많은 감정들을 '짜증 난다'라는 모호한 말로 치부해 버린다며. 그는 이런 표현이 우리의 감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이슈라는 단어로 변명을 일관하고, 디테일이라는 말로 문제를 퉁쳐버리는 것은 그 상황에 내포된 것들을 모두 뭉툭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여기저기 다 갖다 대도 어울리는 범용은 편리함을 앞세우지만 결국 그것만이 가진 개성은 없다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라디오 사연에서 시작한 이 글의 결말은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생각을 벼리고 오감을 활짝 열어 섬세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