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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May 09. 2024

들어가며_ 7년간의 비움 대장정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치열한 미니멀라이프의 기록

2009년 1월, 일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내 방문을 열었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익숙한 물건들이 나를 반겨줬지만, 너무 많은 물건이 방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어서 어수선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현관이나 거실, 주방, 화장실, 안방, 창고… 집 안 다른 곳도 마찬가지로 물건으로 가득해서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1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2008년 초 호주로 떠났었는데, 돌아온 집과 내 방이 반갑기는커녕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줄이야…


‘호주에 있을 때는 정말 최소한의 물건으로도 충분히 잘 살았는데 내 방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물건으로 가득 차있는 걸까….’ 안 그래도 호주에서 지내는 동안 짐이 너무 많아져서 한국에 오기 전 몇 상자를 집으로 보냈는데, 집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물건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택배 상자와 커다란 캐리어에 들어있는 짐을 하나둘씩 풀면서, 필요없는 물건은 버려야겠다는 자연스러운 충동을 느꼈다.








사실 난 어린 시절부터 물건을 잘 못 버리고 모아두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당시 살던 집은 거의 40평 정도로 넓고 내 방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살던 집은 20평도 채 안 되고 방이 두 개여서 여동생과 방을 같이 썼다.


게다가 유치원부터 초, 중, 고, 대학교를 거쳐 직장에 가기까지 거의 20여 년을 한집에 계속 살다 보니 좁은 방에 물건이 점차 늘어나서 누울 자리만 빼고는 정말 물건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20대 후반까지 20년간 동생과 둘이 살던 방
어느 날은 걸어둔 옷이 너무 많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헹거가 무너지기도 했다...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서 필요없는 물건을 어느 정도는 버렸지만, 넓은 집으로 옮기는 거라 웬만한 건 다 가져갔다.


좋아했던 과목의 책이나 노트, 상장, 일기장, 편지 등 추억이 깃든 물건은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모아놨는데, 일곱 상자 정도였다. ‘그래도 이제 내 방이 있고 창고도 있으니까.’ 하는 생각에 다 싸들고 이사를 했다. 작은 상자는 방에 두고 좀 큰 상자는 창고에 보관해 뒀다.


그렇게 스물여섯에야 제대로 된 내 방을 처음 갖고 꾸밀 수 있어서 무척 설레고 행복했는데, 2년여 만에 온갖 쓸데없는 물건이 넘치는 방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물건 중에서 안 쓰는 걸 골라내고 조금씩 정리를 시작했지만 필요 없다 싶은 물건을 골라내기도, 버리기도 쉽지 않았다. 생각이 원체 많은 탓에 버리려고 굳은 마음을 먹고 바닥에 내려놓았다가 나중에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원래 자리로 갖다두게 된 것도 많다.


특히 예전 추억이 깃든 물건을 버리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물건을 버리면 추억도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캐런 킹스턴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됐다. 모든 물건은 에너지의 변형인데 안 쓰는 물건을 버려야 막혀있던 에너지가 나가고,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올 공간이 생겨서 삶 또한 바뀔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서양 사람이 쓴 책이지만 잡동사니 정리와 전생의 연관성이라든지 풍수지리설 등 동양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고, 필요없는 물건을 왜 쌓아두고 있는지와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설명했다. 이 책을 읽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정리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일 년에 두세 번 정리를 하며 물건을 조금 줄이긴 했지만 큰 차이가 없이 비슷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2012년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와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 구질구질한 물건뿐만이 아니라 쓸데없는 물건을 모아두는 습관, 힘들었던 과거 기억까지 모조리 뿌리뽑고 삶을 새롭게 바꾸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겼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 적게 소유하면서 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하는 도미니크 로로의 말을 통해,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물건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법은 곤도 마리에의 책에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당시 나는 심리학과 코칭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코칭 공부를 하면서 만난 마음 맞는 두 분과 함께 ‘정리프로젝트’를 약 3개월 정도 진행했었다. 각자 정리할 물건에 대해 목표를 세우고 매주 정리하면서 느낀 점이나 정리 성과, 어려운 점 등을 함께 나누다 보니, 추진력도 생기고 정리하는 습관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게 되었다.


정리프로젝트 초반에는 정리해서 버리려고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상자에 넣어뒀던 물건을 다시 꺼내오기도 하고, 보관하려고 제자리를 만들어줬던 물건도 다시 꺼내보고 버리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래도 점점 서랍장이나 책장에 공간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텅 비어서 더는 필요없는 가구를 비워내면서 방 안 공간도 여유로워졌다. 물건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고, 예전부터 좋아했던 것들을 -사진이나 글쓰기- 여전히 좋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리프로젝트를 통해 3개월 동안 꾸준히 물건을 버렸지만 아직도 제법 물건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2013년 6월 무렵 평수가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면서 좀 더 작은 방에 맞춰서 물건을 최대한 줄이고 또 줄였다.


이사 간 후에도 ‘한 사람이 소유하는 물건은 여행 가방 한두 개에 전부 담을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는 도미니크 로로의 말을 매번 마음속에 새기며, 일 년에 두 번씩은 꼭꼭 대대적인 정리를 하면서 물건을 비워나갔다.



2009년부터 2013년, 정리 초중반 시기에 나의 교과서가 되어줬던 책



2014년과 15년 즈음에는 남아있는 물건이 별로 없긴 했지만, 얼마 안 되는 물건을 더 줄인다는 게 정말 어려웠다. 그 무렵부터 단순한 삶, ‘미니멀라이프’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하나둘씩 찾아 읽어보면서 공간을 정리하고 물건을 비우는 방법이나 목적이 사람마다 확연하게 다름을 알게 됐다.


사사키 후미오의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보면서 내용은 지금까지 읽은 책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저자의 정리 전과 후의 방 사진이 도움이 많이 됐다. 글자로만 미니멀라이프를 접하던 내게 실제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접할 첫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비 존슨의 책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는 자원 절약과 환경 보호에 초점을 맞춰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줬다. 감히 다 따라 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소린 밸브스의 ‘공간의 위로’라는 책은 무조건 다 버리고 최소한만 소유하는 개념과는 조금 다르게,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 공간을 만들어가는 방법에 관해서 다뤘다.


그동안 내가 책을 통해 배우고 익혔던 방법과는 또 다른 방법을 접하면서, 각자에게 맞는 정리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리하다가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이 책들 말고도 새로운 책을 찾아서 읽고, 또 읽고 계속 자극을 받으면서 정리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2016년까지 정리를 하고 나서야 나름대로 나만의 요령과 방법이 생겨났고, 물건의 양이나 가진 물건의 질도 내 기준에서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2016년 드디어 만족스러운 나만의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는 내가 아끼던 것이라 완벽하게 버릴 수 없었던 물건이나 사회적, 관계적인 의미가 담긴 물건, 혹은 생각이나 신념을 과감히 버리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 그 속에서 느낀 점과 변화를 담고자 한다.


내가 버린 물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공개하기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꾸밈없이 전달하는 과정 속에서 분명히 예전의 나처럼 물건을 못 버리는 습관을 갖고 있거나,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물건 정리를 할 때 고민에 휩싸여있을 누군가에게는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하는 위로와 공감이 될 거라 믿는다.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글이 소중한 간접 경험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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