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책과 강의 노트를 비우며...
휴일이면 바닥에 배를 깔고 베개에 팔을 대고 엎드려서 책을 보던 것이 내가 어린 시절에 가장 즐겼던 취미생활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동네 서점에서 ‘어드벤쳐 북스’라는 시리즈의 책을 두 권 샀는데, 문고판으로 크기는 좀 작았고 탐정 추리 소설이었다. 특이한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는 책이 아니라, 읽다 보면 ‘A를 선택하려면 15페이지로 가시오, 선택하지 않고 다른 걸 하려면 24페이지로 가시오.’라는 내용이 나오고, 선택에 따라 페이지를 넘겨서 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결말이 나오는 책이었다. 그래서 몇 번을 읽어도 선택에 따라 다른 결말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5학년 때는 생일에 아빠랑 함께 큰 서점에 갔는데, 원하는 책을 마음껏 고르라고 하셔서 10권 정도를 사 와서 신나게 읽었던 기억도 있다.
또 ‘나의 비밀 노트’라고 외국 작가가 쓴 십 대들을 위한 소설이 생각난다.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나스타샤라는 10살짜리 소녀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비밀일기장에 꿈을 적고, 그 꿈을 키워가면서 성숙해져 간다는 내용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을 사다가 비밀 노트로 만들고 원하는 것들을 목록으로 적어보기도 했다.
‘플롯시’라는 십 대 소녀 주인공이 나오는 명랑소설 시리즈도 있었다. 마법의 모피코트를 입고 성인으로 변신해 학생으로서 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 같더라도 원하는 것들을 이루면서 살았던 이야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마지막 수업 때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책을 한 권씩 모두 선물로 주셨는데, 앞 장에 일일이 손편지를 적어주셔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가우디의 바다’라는 책인데, 생명과 환경에 관한 소중함을 일깨워줘서 그걸 읽고 눈물을 많이 흘렸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읽은 책이 현재 내 생각의 중심을 만들어왔구나 싶다.
초등학교 때는 동화나 소설책을 많이 읽었지만 중, 고등학교 때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책과 거리를 두고 지냈다. 만화책이나 소설책 시리즈 등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대학교 시절에도 강의 듣고 레포트 쓰느라고 관련 책을 찾아서 읽는 정도에 그쳤다.
정말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읽게 된 계기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와서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사이버대학교로 편입해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면서였다. 원래 대학교 전공은 언론정보학과였다.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활동을 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언론 쪽에 관심을 두게 되어 전공하긴 했지만, 진짜 그쪽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정말 관심 있는 걸 공부하니까 ‘세상에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당시 집 근처 5분 거리에 시립도서관이 있었다. 학교 과제 때문에 책을 빌리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알고 싶은 욕구를 느껴 심리학과 영성 관련 책을 꾸준히 빌려 읽었다. 도서관에 반납해야 하는 기간이 있어서 더 열심히 읽게 됐다.
그때부터 나만을 생각하던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도 생각해 보며 시야가 넓어졌다. 다른 사람은 나랑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점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점, 서로를 배려하면서 사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 좋아하는 책은 사서 집에 두고 여러 번 펼쳐보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런데 정리 관련 책을 읽으면서 ‘책을 소유한다는 건 결국엔 지적 호기심을 자랑하는 것’, ‘내용을 읽으며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게 목적이지 단지 책을 많이 가졌다고 자랑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짜 지식일까?’
사실 예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보다 담겨있는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비판 없이 수용했었다.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썼으니까 다 맞는 말일 것으로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책을 점점 많이 읽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정리 책에서 말하는 부분에 대해 공감하게 됐다. 책은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읽기 쉽게 종이에 옮겨서 묶은 것이고,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며 흡수할 부분은 흡수하고 버릴 부분은 버려야 한다는 걸 알게됐다.
물론 이런 부분을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높은 학벌과 화려한 경력, 유명한 사람이 쓴 책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깨고 나니 책을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도미니크 로로의 책에서 ‘책은 나를 대변하는 것만 남기자’는 말, 그리고 곤도 마리에의 책에서 ‘책이나 강의자료를 가지고 있어도 그 안의 지식이 내 것은 아니다,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지, 책을 소유하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인생의 중요한 책만 남기자.’는 말이 책을 쉽게 비울 수 있는 용기를 건네줬다.
책장에 책을 둔다는 건 생각이 잘 맞는 친구를 내 곁에 두는 것과 동일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나는 어떤 친구를 남겨둘 지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했다.
초창기에 정리할 때 100여 권이 넘는 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젠 굳이 다시 읽을 이유가 없는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미련 없이 버렸다. 이미 다 내 것으로 만든 지식이 담긴 책도 버리고, 아직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책이랑 깊이 공감하는 책 30여 권만 남길 수 있게 됐다. 그마저도 나중에는 더 정리해서 20권 정도로 줄였다.
가방이나 책, 어떤 물건이든 처음에 정리할 때는 60~70%는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데, 남은 3~40% 중에 옥석을 가리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버리면 버릴수록 얼마 남지 않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진짜 함께 할 물건을 고르는 일은 나같이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도 깊은 고민이 된다.
일반적인 저자의 책뿐만 아니라 전공 책이나 강의노트의 경우도 그렇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공부를 했던 필기자료를 버리는 건 정말 어려웠다.
근데 그걸 갖고 있다고 해도 다시 펼쳐볼 일이 있을까? 만약 보관해 두더라도 구석에 둔 예전 자료를 뒤적거리며 찾아보는 것보다는 인터넷으로 새로운 정보를 검색해 보는 것이 빠르기에, 볼 일이 없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버렸다. 심리학 전공 관련 자료는 강의 ppt 파일을 보관해 두고, 책자형태로 된 교재는 다 버렸다. 대학원에서 사진 공부를 할 때 필기를 태블릿으로 한 경우는 그냥 보관했지만, 종이 자료는 두고두고 참고하고 싶은 내용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버렸다.
예전엔 책을 읽다가 좋은 내용이나 구절을 종이에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제는 디지털을 활용한다.
한때는 메모 앱인 '에버노트'를 사용했었다. 메모를 저장하고 동기화를 시키면 컴퓨터와 태블릿, 스마트폰 등 어떤 기기에서든 확인할 수 있어서 유용하다. 현재는 '노션'을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저장소에 내용을 정리해두다 보니 원할 때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어 다 읽은 종이 책을 굳이 보관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그리고 무턱대고 자료를 쌓아두는 것보다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정보를 가공해서 분류하고 저장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렇게 책이나 강의자료 등을 버리는 과정이 내가 가진 지식이나 알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스스로 점검해 보는 기회가 됐다.
또한, 지금은 정리하면서 아끼고 닳도록 보던 몇몇 책도 중고로 팔았다. 사진 공부를 하면서 샀던 제법 값나가는 사진집이나 예술 관련 서적도, 왠지 가지고 있으면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은 처분했다. 역시 처분한 책 중에서 여전히 기억에 남고 다시 보고 싶은 것도 있긴 하다. 그래도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에, 늘 마음속의 일정 공간은 빈 틈으로 남겨두자는 생각을 한다.
생각하고 사고하는 의식 수준이 달라짐에 따라서 내가 읽는 책이 바뀌었고, 그것을 토대로 또 생각과 의식의 수준도 예전과는 확 다르게 바뀌었다. 이제는 책을 쌓아두는 건 한 곳에만 머무르고 안주하는 듯한 느낌이다.
세상에 70억 인구가 살고 있으니 개개인의 인생을 최소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면, 기본으로 70억 개는 넘을 것이다. 근데 누군가는 수십 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테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도 많으니까,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의 엄청난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수많은 개개인의 우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미지의 세계를 계속 항해하며 나가고 싶다.
그런데 책을 정리하면서 중요한 맹점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계속 읽어왔는데 왜 나는 남들이 하는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의 수동적인 소비에서 벗어나, 이제는 능동적인 생산의 차원으로 나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 또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현시대에 공존하면서 살고 있지만 멀리 있어서 만나지 못하는, 혹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옛사람들의 생각과 시공을 초월해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책이라는 매개체이다 보니 사람들이 책에 그렇게나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혼자인 듯 보이지만 누군가와 늘 연결되면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게 사람이라는 존재니까.
아, 이제 나는 종이책을 사서 보는 것보다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보는 편이긴 하다. 치열한 책 정리를 마친 이후 종이책은 최대한 일정 개수를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전자책은 정기 구독을 하면서 읽고 싶은 책을 마냥 다운로드하고 나중엔 그 책을 다운로드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있을 때가 많다. 날 잡아서 전자책 정리도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책은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라 쌓일 수밖에 없구나 싶다.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