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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Dec 17. 2023

노르웨이에서 뭉크 박물관 안 가고 뭐 했나

클래식 클라우드 여덟 번째 책, 뭉크

난 신혼여행을 노르웨이로 다녀왔다. 그때 아문센의 남극 탐험에 관해 공부하러 프람호 박물관을 찾았었다. 그 나라의 유명인과 관련된 장소 중 우리가 가본 건 그곳이 유일했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고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다. 노르웨이에 갔으면 뭉크의 그림을 보고 왔어야 하는 것이었다.

     

뭉크 편은 노르웨이 현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뭉크에 대한 연구로 학위를 받은 최고의 전문가 유성혜라는 분이 써주셨다. 뭉크의 생애와 작품 세계가 아주 상세히, 그러면서도 너무 복잡하지는 않게 설명돼 있어 읽기 편한 책이었다.

   

그 중에서 역시 <절규>를 먼저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절규


절규


뭉크는 <절규>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의 느낌을 노트에 적어두었다. 다음 이야기다.

  

친구 두 명과 함께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의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는 우울감에 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조이는 통증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섰고, 죽을 것 같이 피곤해서 나무 울타리에 기대고 말았다. 검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로 핏빛 화염이 놓여 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흥분에 떨면서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관통해서 들려오는 거대하고 끝없는 비명을 느꼈다. - 57p

     

저자에 따르면 노르웨이어의 ‘스크리크strik’라는 단어는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는 절규보다는 너무 놀라 지르는 외마디 소리인 ‘비명’으로 번역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한다. 또한 뭉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비명을 지른 건 인물이 아니라 자연이다. 인물은 들려오는 비명이 괴로워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뭉크는 핏빛 하늘과 검푸른 피오르라는 대조적이면서 강렬한 색감의 대비에 큰 시각적 충격을 받았다. 해설에 따르면 20대 시절 뭉크의 불안한 심리 상태로는 이러한 강렬한 색감의 자연이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한다. 뭉크는 이 시각적 충격을 청각적으로 ‘자연의 비명’이라고 표현했고, 그 비명을 듣는 자신의 심리를 다시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절규>다.

     

뭉크는 <절규> 전에 흡사한 구도로 <절망>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절규>가 훨씬 강렬하다. 절망을 절규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

    

절망


뭉크는 하늘을 더욱 물결치게 그리고 강렬한 색감으로 채색했다. 인물의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몸은 몸서리치며 불안에 떨게 했다. 그리고 이런 모티프를 잘 정제된 캔버스가 아닌 거친 판지 위에 그렸다. 이것이 <절망>을 <절규>로 발전시킨 방법이었다.

    

그런데 <절규>는 당시에 유행한 어떤 미술 사조에도 속하지 않았다. 공통점도 있었지만 차이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살펴보면 <절규>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1. 독일 낭만주의와의 비교

공통점 : 거대한 자연에서 강렬한 감정이 고취됨

차이점 : 독일 낭만주의의 숭고미, 비장미와 달리 <절규>는 인간의 어두운 감정, 즉 불안감과 공포를 담고 있음

    

2. 상징주의와의 비교

공통점 : 인간 내면의 어두운 감정에 집중

차이점 : 상징주의 화가들은 그림 소재를 주로 전설, 성경 등에서 찾은 데 비해 <절규>는 화가가 직접 경험한 사건임

     

3. 종합주의 혹은 나비파와의 비교

공통점 : 형태의 단순화, 면과 색을 이용한 평면적인 표현, 강렬한 원색 사용

차이점 : 종합주의와 나비파가 자연의 묘사를 형식적인 도안으로 발전시켜 마치 현대의 일러스트나 만화 같은 특징을 보이지만, <절규>에서는 자연이 여전히 풍경으로 남아있음

     

이렇게 19세기의 어떤 미술사조와도 완전히 똑같지 않았던 독창적인 뭉크의 미술은 ‘표현주의’에 영향을 끼쳤고 더 나아가 칸딘스키로 유명한 추상 미술에까지 영감을 주었다. 미술사에서 뭉크의 작품이 지니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죽음과 그림     

뭉크는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열세 살 때 누이를 잃는 슬픔을 겪는다. 특히 누이 소피에의 죽음은 뭉크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비극이었다고 하는데, 그 심정이 잘 드러나는 그림이 <아픈 아이>이다.

      

뭉크는 이 작품을 <습작>이라는 이름으로 전람회에 출품했으나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완성된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기법으로 그린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표면에는 두껍게 덧칠된 물감 층과 긁어낸 자국, 오일에 희석된 묽은 물감이 흘러내리면서 만드는 줄무늬가 매우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 98p

      

아픈 아이



그러나 뭉크는 당시에 각광받던 사실주의 화법으로는 자신이 느낀 깊은 슬픔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었기에 새로운 방법을 동원한 것이었다. 저자의 설명처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그저 자연을 관찰하듯이 볼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찢어지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었으리라.’


뭉크는 이 <아픈 아이>를 40년에 걸쳐 반복해 그렸고, 회화 뿐 아니라 여러 버전의 판화로도 제작했다. 그가 이 모티프에 그토록 천착했던 이유는 아무리 여러 번 그린다 해도 자신이 느낀 상실의 고통을 다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배경을 알고 그림을 보면 아픈 소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어머니의 슬픔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데다 스스로도 병약했던 뭉크는 ‘죽음’을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표현한 어둡고 음울한 느낌의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그림들을 보고 잔잔한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마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아픔이 담겨있기에, 나만이 그러한 고통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와 그림

     

뭉크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나 깊은 관계를 맺은 여성이 세 명 있었으니, 밀리와 율, 툴라였다.

     

밀리는 뭉크의 첫사랑이었으나 유부녀였다. 연인으로 지낸 기간은 짧았지만 뭉크에게 그녀는 각별한 존재였다. 밀리에 대한 뭉크의 감정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 <두 사람, 외로운 이들>이다.

     

두 사람, 외로운 이들


두 번째 여인은 뭉크가 베를린에 체류할 때 만난 율이었다. 그녀는 뭇 남성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던 매력적인 여성이었는데, 뭉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돈나>의 모델이 그녀인 것으로 짐작된다.

     

해설에 따르면 뭉크는 신적인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인간적인 성인을 염두에 두고 <마돈나>를 그렸고, 황홀경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통해 생과 사의 연결고리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뭉크의 어느 그림보다도 관능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마돈나


툴라는 뭉크가 유일하게 약혼까지 한 여인이었으나 결혼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녀와 다투다가 감정이 격해져 권총을 잘못 쏘는 바람에 뭉크 본인의 왼손을 다치기까지 했다. 그녀에 대한 뭉크의 감정이 담긴 그림 중 내가 인상깊게 본 것은 <마라의 죽음Ⅱ>이다.

      

마라의 죽음은 그 유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을 포함해 여러 화가에게 영감을 준 일로, 프랑스 혁명 당시 급진파 지도자 마라가 온건파 지지자인 샤를로트 코르데라는 여인에게 암살당한 사건을 뜻한다.

    

뭉크는 <마라의 죽음Ⅱ>에서 누워있는 마라를 자기 자신으로, 옆에 나체로 서 있는 코르데를 툴라로 상정하여 팜므파탈의 위험성과 잔인성을 묘사했다.

     

왼쪽이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오른쪽이 뭉크의 마라의 죽음Ⅱ



생의 프리즈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매우 중요한 뭉크의 작품 중엔 <생의 프리즈>가 있다. 책에서는 ‘삶의 거대한 교향곡’이라는 비유로 소개된, 생명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일생을 보여주는 연작이다. 이 아이디어에 대한 뭉크의 회고를 읽어보자.

  

나는 그 그림들을 모아보았을 때, 각각의 그림들이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그림들이 전시되자 그림들 사이에서 하나의 울림이 터져 나왔고, 그림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교향곡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생의 프리즈’를 그리게 되었다. - 216p

    

뭉크는 당대의 다른 화가들과 달리 그림의 조화와 배치, 전시 기획과 디자인에도 관심을 가졌고, ‘건축적 틀 안에서 그림과 공간과의 합치’를 꿈꿨다. 그러나 뭉크의 살아생전에는 그의 이상을 구현하지 못했고, 그 한계 내에서나마 선보인 전시회조차 사진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뭉크가 바란 ‘생의 프리즈’가 진정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의 뭉크 전시실에 가면 <생의 프리즈>에 포함되었던 그림들이 걸려있어서, 그때의 전시회 광경을 상상할 수 있다고 한다. <절규>, <마돈나> 등의 대표작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 뭉크 전시실을 감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작품 세계에 매료된다고 하니, 노르웨이에 갔을 때 미술관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 다시 한번 후회스럽다. 그래도 피오르드도 보았고 백야도 목격했으니 뭉크의 내면에 영향을 준 노르웨이의 자연을 아주 일부라도 체험해 봐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오슬로 대학 강당 벽화

     

마지막으로 언급할 뭉크의 작품은 오슬로 대학의 강당 벽화다. 이 강당이 지어질 때 벽화를 그릴 화가를 공모전으로 선정했는데, 뭉크는 이 공모전에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그림을 강당에 걸 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3점의 그림에 담긴 내용을 알아보자.

     

<태양> : 햇빛은 생명의 원천이자 계몽의 상징. 빛이 뻗어나가는 모습은 지식을 널리 전파한다는 뜻.     

<역사> : 연륜 많은 뱃사람이 세상에 대한 지식과 식견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함.     

<알마 마테르> : 라틴어로 직역하면 ‘젖을 먹이는 어머니’라는 뜻으로, 대학을 뜻함.

     

<알마 마테르>와 <역사> 사이에 <태양>이 위치한 것은 노르웨이의 민족과 전통에 기반한 지식을 널리 알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벽화는 뭉크가 노르웨이의 국민 화가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그 나라 공공 미술의 백미로 꼽힌다고 한다. 

   

벽화는 사진으로 봐도 크기가 엄청 나고 사람들 머리 높이보다 훨씬 위에 걸려있는 것이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장엄할까? 아마 성당이나 교회에 있는 미술품처럼 보는 사람을 압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강당을 사용하는 대학생이나 시민들은 위대한 화가의 예술혼을 가득 느끼며 행사를 치를 테니, 감상이 남다를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인상깊게 느낀 점 하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뭉크의 작품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책에 소개되지 않은 그림이 더 있을 테니, 뭉크는 꾸준히,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그만큼 미술을 사랑한 게 아닐까.

     

그는 말년에는 내성적인 성향이 더욱 심해져 누구도 만나지 않고 대화도 피한 채로 집과 작업실에만 특어박혀 있었다고 하니 사람 대신 그림으로 외로움을 달랬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오랜 기간 신경 쇠약과 불안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려 피폐해진 내면으로는 제대로 된 사회생활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뭉크는 세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혁신적인 작품 세계를 개척함으로써 내면에 잠재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예술가가 세상에 자신을 외친 방법이었다.

     

옛날 고등학교 미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몽크’가 아니라‘뭉크’이니 헷갈리지 말라고 하셨었는데, 이제 이 책을 읽고 그림까지 많이 보았으니 절대 헷갈리지 않을 것 같다.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인물로 아문센과 그리그에 더해 뭉크를 기억하게 된 것도 수확이다. 아이가 열 살이 넘으면 북유럽으로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으니, 그때 다같이 국립 박물관이나 뭉크 미술관에 들르면 되겠다.

      

독자분들께서도 어디선가 뭉크의 그림을 보게 된다면 화가가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시길 바란다. 외롭고 불안했던 거장을 위로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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