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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Dec 10. 2023

제가 듣기론 천상의 음악이 맞다니까요

클래식 클라우드 일곱 번째 책, 모차르트

이번 편은 연재 시작 후 가장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읽은 책이다. 대상이 모차르트였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이름 앞에서 내 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잘 쓰든 못 쓰든 그의 명성에 손톱만큼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데. 길고 자세하게 쓸 필요도 없다. 그의 음악이 모든 것을 말한다.

     

나는 피아노 학원에서 1년 넘게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배우고 있다. 1번부터 순서대로 배우진 않고,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을 고를 수 있게 선생님이 주요 작품의 주제를 간략히 쳐 주신다. 이런 식이다.

    

선생님 : 10번 다음엔 6번이 어때요? 유명하거든요. 아니면 5번도 좋아요. 아주 많이들 쳐요. 9번은 들어보셨죠? 아, 8번도 되게 좋은데. 아니면 11번을 해도 괜찮고요.

 

나 : ...... 그냥 제일 쉬운 것부터 할게요.

     

고를래야 고를 수가 없다. 다 좋아서다. 이 곡도 저 곡도 다 너무 좋아서 뭐부터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렇다. 안 좋은 게 없고 안 유명한 게 없다.

     

가까스로 한 곡을 골라서 연습에 들어가면 가장 처음 할 일은 테크닉이 손에 익을 때까지 수없이 반복해 치는 것이다. 베토벤보다는 상대적으로 쉽다지만 나에겐 모차르트도 아직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토록 반복 연습을 하는데도 싫증이 안 난다.

     

오히려 치면 칠수록 모차르트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되어 힘든 줄도 모르고 연습을 반복하게 된다. 노래가 너무 좋잖아, 라고 수백 번을 중얼거리면서 그 노래를 듣기 위해 치고 또 친다. 연습 시간이 아닐 때조차 주제 선율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그래서 또 신나게 연습한다. 그러다 보면 한 곡이 끝나 있다.

     

서양 고전음악의 3대 거장은 단연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인데 그중 누구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지는 취향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모차르트 파다. 그가 태어난 후 300년 동안 존재한 수억 명의 팬 중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이 <모차르트 × 김성현> 편은 나의 환상을 깨부수려 들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후대 음악가들과 학자들에 의해 과장된 면이 있으며, 사실은 ‘천사’보다는 ‘일벌레’에 가까웠고, 태교 음악으로서의 효능도 과장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이것은 저자가 모차르트를 싫어해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모차르트를 좋아하지 않는 클래식 전문가를 상상할 수 없는 나는 이 책의 취지를 그의 천재성에 대한 과도한 신화적 해석에서 탈피해,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시각을 견지하자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러한 입장에서 바라본 모차르트는 신동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아버지 레오폴트의 안목과 노력이 없었다면 미완성으로 남았을 음악가이다. 레오폴트는 당대의 저명한 음악 교육자로서 아들의 재능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그것을 꽃피우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랜드 투어’ 라는 용어로 알려진 어린 모차르트 남매의 유럽 순회 공연은 레오폴트가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었다. 그는 이 광범위한 여정을 통해 아들에게 최고의 인맥과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려 했다. 덕분에 모차르트는 전 유럽을 돌며 왕족과 귀족, 음악가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었다.

      

아들이 성장함에 따라 연주력이 뛰어난 신동을 넘어 훌륭한 작곡가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레오폴트였다. 역사상 어린 나이에 이름을 날린 신동이 자라 진정한 의미의 거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는데 모차르트가 바로 그 드문 케이스였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천재성과 노력이 정반대의 요소로 여겨졌던 것 같지만,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두 가지가 모두 성공의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너무 타고난 천재로만 봐선 안 된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다 아는 내용을 반복해 강조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했다.

     

김연아를 예로 들어보자. 그가 피겨스케이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재능을 진정한 실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역대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쏟은 노력 또한 어마어마하다. 모차르트도 마찬가지 아니었겠는가.

    

또한 저자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두뇌 발달에 좋다는 설이 상업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주장했다.      

돌아보면 모차르트 이펙트에는 출발부터 자가당착적이고 모순적인 요소가 있다. 아이의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대위법적인 요소가 강한 바흐의 음악을 듣는 편이 차라리 도움이 될 것이다. 둘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이 결합된 바로크 음악은 건축물처럼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복합적 사고에도 효과가 크다. 반대로 대립과 갈등, 화해와 해결의 과정을 통해서 감정적 진폭을 키우고 싶다면 베토벤의 교향악이 제격이다. 서정적인 감수성에는 쇼팽의 피아노 음악이 어울릴 것이다. (310p)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나도 그래서 임신했을 때 일부러 태교를 위해 모차르트 음악을 듣진 않았다.

     

그러나 돈벌이를 위해 과장된 부분만 걷어낸다면, 모차르트의 음악이 어린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정서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밝고 명랑하며 산뜻한 모차르트의 작품은 어린이뿐 아니라 누구든 긍정적인 정서를 함양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모차르트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성실한 일벌레였다는 사실도 그의 능력을 재평가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쉴 새 없이 레슨과 작곡, 연주로 채워진 일상에서 600곡이나 되는 작품을 써낸 가공할 생산성은 타고난 재능이 특출했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심지어 모차르트의 곡에는 졸작이 없는 데다 자필 악보에는 수정한 흔적조차 거의 없으니, 머릿속에 저절로 악상이 떠올라 일필휘지로 음표를 휘갈기는 이미지가 큰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모차르트는 고전파의 대표 작곡가인데 이 음악 사조는 꽤 엄정한 형식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후대의 낭만파 작곡가들처럼 악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여지도 적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난 전통적인 평가대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천상의 선율 그 자체로 느끼고 있으니 굳이 그 환상을 깨뜨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음악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건 모차르트를 듣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정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그 누구의 작품보다도 큰 황홀감과 행복을 선사한다. 그게 다다.

     

나보다 훨씬 유명하고 지위 높은 사람들이 늘어놓은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찬사가 책에 여러 개 실려있으니, 내 글의 신빙성을 위해 그중 하나를 옮겨보았다.

     

신학자 바르트 -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바흐를 연주하지만, 자기들을 위해서는 모차르트를 연주할 것이다. 사랑하는 하나님께서도 무척 즐거워하면서 그들의 연주에 귀 기울이실 것.


바흐와 모차르트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은 없을 것 같다.


이제까지 뭐라 뭐라 구구절절 늘어놓았긴 하지만, 첫머리에 언급했듯 이 글 읽을 시간에 모차르트 음악을 하나라도 더 듣는 편이 낫다. 그런 의미에서 링크를 좀 가져와 봤다.

    

그런데 그 전에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글자 수를 늘려야 한다. 바로 서양음악의 장르적 라이벌인 교향곡 vs 오페라의 대결 구도다. 나는 책에서 설명된 이 구도를 아주 단순하게, 다음 표와 같이 도식화해 보았다.

                   


모차르트는 기악곡이든 성악곡이든 다 잘했는데 이런 케이스는 서양 음악사를 통틀어 아주 드물다. 그 대단한 베토벤조차 오페라는 단 하나뿐인 데다가 너무 위대한 교향곡에 가려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남긴 작품은 교향곡, 오페라, 협주곡, 소나타, 현악 4중주 등 18세기에 존재하던 모든 음악 장르를 포괄한다.

     

나는 그중에서 대표 오페라 아리아와 교향곡, 목관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세레나데를 가져와 봤다.

     

<피가로의 결혼> 中 《편지의 이중창》     

영화 <쇼생크 탈출>에 삽입된 장면이 유명하다. 자막으로 해설이 흘러나와 감상하기에 좋은 영상이다. 선율이 무척 서정적이고 우아하다.     


<돈 조반니> 中 《그 손을 내게 주오》     

발랄하고 경쾌한 음악에 능청스러운 연기가 가미되어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마술피리> 中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속에 끓어오르고》     

<마술피리>는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배경 때문에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런데 깊게 파보면 모차르트가 가입했던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 결사의 교리를 상징하는 내용이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오페라가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이유는 밤의 여왕 덕분이다. 정식 제목은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속에 끓어오르고>이다.

     

이 영상엔 소프라노 담라우와 조수미의 노래가 나란히 나와 비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댓글란에 고퀄리티의 설명과 의견이 많으니 시간이 나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제 기악곡 차례다. 제일 어려운 교향곡부터 가장 쉬운 세레나데 순으로 가 보자.

     

먼저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주피터>를 링크해 보았다. 아마 내 또래 사람들은 HOT의 아이야나 동방신기의 트라이앵글 때문에 25번이나 40번이 더 친숙할 수도 있지만 41번도 아주아주 유명한 곡이다. 바쁘니까 1악장만 들어보자. 11분 15초까지만(...) 들으면 된다.


         

난 이 교향곡을 처음 들었을 때 하도 웅장하다길래 기대가 컸지만 생각보다 거대한 느낌은 아니었다. 베토벤 급으로 웅장한 걸 기대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스케일이 작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주피터>도 충분히 힘이 넘치는 멋있는 음악이다.

     

이제부터는 교향곡보다 훨씬 쉽다. 우선 협주곡인데, 모차르트가 가장 협주곡을 많이 쓴 악기는 단연 피아노다. 그와 마찬가지로 베토벤이나 슈만, 브람스 등 후대의 작곡가도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차라리 피아노 소나타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난 피협(피아노 협주곡)에 대해서는 언제나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더 좋아했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나 그리그의 피협이 최애다.

      

바협(바이올린 협주곡)도 마찬가지라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훌륭한 바협을 남겼음에도 나의 페이보릿은 무조건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브루흐, 시벨리우스 5인방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도 모를 수 없는 작품이 있으니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1번이다. 대중가요 <칵테일 사랑>에도 등장한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삭여 주며
아침 햇살 눈 부심에 나를 깨워줄
그런 연인이 내게 있으면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영향으로 21번 작품은 이례적으로 1악장보다 2악장이 더 유명하다. 영상은 정명훈 지휘에 조성진 연주다. 14분 30초 ~ 21분 15초. 연주자가 음악에 얼마나 몰입했는지 곧 녹아서 피아노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다.     



헐리우드 영화에 쓰여서 유명해진 2악장이 하나 더 있으니, 클라리넷 협주곡이 그것이다. 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원작 소설로만 봤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얘기한다. 1악장도 좋지만 일단 2악장만 들어보자. 12분 25초부터 들으면 된다. 6분밖에 안 된다.     


         

이건 여담인데, 이번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 중엔 모차르트가 악기 플루트를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난 플루트의 맑고 청아한 음색이 모차르트의 음악과 너무 잘 어울리는데 대체 왜 싫어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차르트가 살던 시기의 악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으니까, 플루트 소리도 지금처럼 청명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드장이라고 하는 돈 많은 아마추어 플루티스트가 곡을 의뢰하는 바람에 모차르트는 플루트 협주곡을 써주어야 했다. 내키지 않게 써낸 곡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아름답다는 게 함정이다.

     

다음엔 피아노 소나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두 개인데, 피아노 학원에서 배우는 소나티네에 실린 16번과 터키행진곡으로 유명한 11번이다. 누구나 다 아는 그 선율은 각각 1악장과 3악장에 있다.

    

그렇지만 난 16번 2악장이 제일 좋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악장은 유달리 반음, 즉 올림표나 내림표가 붙은 음이 많이 등장하는데 처음엔 좀 불협화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여러 번 연습하며 노래에 익숙해진 후에는 그 음들이 큰 흐름 속에 통합되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그럴 때마다 난 악보에다 대고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손열음 님의 연주로 들어보자. 3분 20초 ~ 9분 30초 구간이다.     



마지막으로 세레나데다. 이제까지 소개된 모든 곡을 몰랐더라도 이 음악만큼은 모를 수 없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모차르트 음악의 유명세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나온 그 곡이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활달한 1악장도 당연히 훌륭하지만 역시 나의 원픽은 2악장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선율은 대체 어떻게 떠올렸을까. 몇 악장이든 내키는 대로 듣자. 어딜 들어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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