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바보가 야구팬이 되기까지 - 1
여전히 모르는 게 많긴 합니다만
사춘기 때 나는 아빠에 대해 두 가지 불만이 있었다. 하나는 아빠가 지나치게 술을 자주, 많이 마신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매일 저녁 야구를 틀어놓는다는 것이었다. 그 야구란 운동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월요일은 쉬었을 테지만 체감으로는 매일이었다) 경기를 했다. 나는 스포츠 채널들은 사실상 야구 전용 채널 아니냐며,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피겨스케이팅은 세계선수권 정도 되어야 간신히 중계를 해주는데 야구는 국제시합도 아닌 국내 리그를 주야장천 송출해 주는 것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게다가 야구 경기는 무척 따분했다. 어쩌다 TV를 쳐다보면 80프로의 확률로 뒷모습을 보이며 우두커니 서 있는 투수와 건너편의 타자, 그리고 포수만 보였기 때문이다. 가끔 타자가 친 공이 땅을 떼구루루 굴러가는 모습이 보였고 캐스터의 흥분한 음성이 터져 나왔지만 그 장면의 의미를 모르는 나는 그저 심드렁했다. 물론 공이 관중석으로 넘어가면 홈런이고, 아무튼 엄청나게 좋은 거라는 것 정도는 나도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공이 땅에 닿지도 않고 멀찍이 날아갔으니 당연히 잘 친 거겠지. 그치만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공이 뭐가 좋은 건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아빠는 ‘안타다!’라고 소리치곤 했는데, 안타인지 밖타인지 이름도 용어도 많고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가장 헷갈리는 것은 투수와 타자 중 누가 공격이고 수비인가의 문제였다. 일단 타자는 무조건 공격인 것 같았다. 홈런을 치면 점수를 많이 얻는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투수도 공격하는 쪽으로 보였다. 수비라면 날아오는 공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투수는 공을 던지니까 수비는 아니겠지. 그러면 둘 중 수비수는 대체 누구라는 걸까? 야구는 공격하는 쪽만 있는 이상한 스포츠였다. (투수 뒤에 있는 선수들은 투명인간이었던 게 분명하다)
하도 신문과 뉴스에 많이 나와서 박찬호와 이승엽은 알고 있었지만 누가 투수고 타자인지는 몰랐다. 그 와중에 투수를 영어로 pitcher라고 부른다는 건 알았는데, 순전히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야구 관련 지문이 나왔고 그게 중간고사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문장 속 빈 괄호를 채우는 주관식 문제에 나는‘pitcher’가 아니라 ‘a pitcher’라는 답을 썼고, 덕분에 선생님께 크게 칭찬받았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야구를 몰라서 인생에 불이익이 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체육대회 연습에 불려 나갔을 때, 그 이름도 흉측한 발야구라는 것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세게 차도 공이 날아가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잡은 공을 어디로 던져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떨 때는 1루에, 또 다른 때는 2루나 3루에 던지라고 하니 공식처럼 딱딱 정해져서 외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예비역 선배들이 고래고래 고함치며 던져야 할 곳을 알려주었지만 거기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며 찾는 동안 주자는 이미 베이스를 밟고 있었다.
잔뜩 기가 죽은 나와 아무 생각 없는 대부분의 동기들과 달리 몇몇 여학우들은 뛰어난 운동능력을 발휘했다. 그중 가장 두각을 보인 2학년 언니는 선배들의 칭송을 받으며 붙박이 4번 타자로 활약했다. 나는 제일 잘하는 저 언니가 왜 하필 ‘4번’인지 궁금해 남학우에게 물어봤고, 원래 야구에서는 가장 잘 치는 타자가 4번을 맡는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알았다. 본인 앞에 최대한 많은 주자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아~ 그런 것이었구나.
체육대회가 끝나자 야구를 몰라도 되는 평화로운 나날이 다시 찾아왔고, 나는 여전히 안타가 뭔지 모른 채로 2학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다름 아닌 베이징올림픽이었다. 오랜 야구팬들은 2008년 이후에 야구를 좋아하게 된 나 같은 사람들을 보고 ‘베이징 뉴비’라고 부른다. 그렇다. 나도 베이징 뉴비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본가에 내려와 있던 나는 하루종일 올림픽 중계를 즐겼다. 시차도 거의 없었던 베이징 대회는 야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던 내게 끝내주게 재미있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야구까지 보게 되었느냐. 말하기도 부끄러운 어떤 계기가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브런치를 통해 떠벌린 모든 얘기 중에서도 제일 창피한 얘기지만 솔직하게 털어놓겠다. 그건 오로지 클로즈업된 누군가의 얼굴 때문이었다.
소년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의 그 투수가 누구였을지는 야구팬이라면 바로 짐작할 것이다. 파란 야구모자 밑으로 드러난 얼굴은 딱 모자챙과 꼭지 사이의 면적과 일치할 정도의 크기였다. 홀린 듯이 검색을 해보니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내가 얼빠의 길로 빠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물론 그 선수는 얼굴이 아닌 실력으로 우리나라 역대 최고 투수 중 한 명이 되었다) 언젠가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헤르미온느가 론에게 항변한 것처럼, 나는 절대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진짜다.) 프로야구를 보기 시작한 후에도 그 선수의 팀이 아닌, 산적을 방불케 하는 비주얼로 유명한 어느 돈 없는 팀의 팬이 되었다는 것이 증거다. 하지만 최소한 야구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이돌보다 더 뛰어난 그의 외모에 놀라서였으니, 뭐, 나도 영락없는 여대생이었던 모양이다.
쿠바와의 결승전이 열리던 토요일 저녁, 아빠는 일찌감치 거실 TV 앞에 상을 펴놓고 각종 안주와 소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서야 아빠를 붙들고 야구 규칙을 배웠다. 우리 부녀의 입 속으로는 회가 쉴 새 없이 들어갔고 류현진은 수도 없이 아웃을 잡았다. 그도 나보다 고작 한 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미 한차례 프로야구를 평정한 바 있는 명실상부한 현역 최고의 투수였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중요한 순간 마운드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다.
9회에 이르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포수가 심판이랑 싸우는 것 같더니 퇴장을 당했다. (야구에도 퇴장이 있었나?) 든든하게 버티던 류현진은 허리를 숙였고 얼굴이 백지장 같은 새 투수가 달려 나왔다. (나는 그가 너무 긴장해서 그렇게 하얘진 줄 알았다) 불안해진 나는 물었다.
“아빠,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나?”
아빠는 벌게진 얼굴로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으며 대답했다.
“음. 이거는 진다고 봐야 된다.”
“....”
못내 아쉬웠다. 이제야 야구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는데. 내내 이기다가 우승을 코앞에 두고 진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라려 토할 것 같았다. 상 밑에 줄 선 술병들은 엄마 아빠의 합작일 뿐 난 입에도 안 댔는데. 이대로 진다면 너무 분해서 먹은 회가 하나도 소화되지 않고 모조리 얹혀버릴 것 같았다.
정대현이 운명의 공을 뿌렸다. 구리엘의 방망이가 그것을 쳐내는 순간,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승엽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만세를 불렀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절규했고 화면엔 CG로 만든 금메달이 날아들었다. 어리둥절해진 내가 돌아보자, 머그컵에 화이트를 따르던 아빠가 놀라울 정도로 나긋하고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됐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왜 이겼는지는 몰랐다. 아무튼 이겼다니 너무 기뻤다. 이 중대한 경기를 안 보고 방에서 리니지나 해대고 있는 동생이라는 놈까지 용서할 수 있을 만큼 좋았다.
그 후 나는 열렬한 야구팬이 되었다. 모종의 이유로 삼성라이온즈에 충성을 바치게 된 김에 핸드폰 벨소리도, 알람도 숫자송을 개사한 응원가로 바꿨다. 목소리도 가사도 귀여웠다.
(1~3까지는 잊어버림)
4랑해 라이온즈 5늘도 이길 거야
6,7,8 구단에서 널 만난 건 럭키야
라이온즈 우리 함께 응원해요 최강 삼성
라이온즈 우리에게 승리하는 모습 매일 보여줘
팔딱팔딱 뛰는 가슴 9회 말 만루 홈런
10년이 가도 너를 사랑해
언제나 우린 널 응원할게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