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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Aug 26. 2024

완전히 추리물인 것도, 스릴러물인 것도 아니다

<세상 끝의 살인> ●●○

O딱 2.5점 정도를 주고 싶다. 지난 리뷰를 뒤져보니 몇 개월 전 <방주>에는 2점을 매겼었다. 그렇다면 <세상 끝의 살인>에는 적어도 3점을 부여하는 게 좋겠다. <방주>보다는 확실히 낫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도가와 란포 상 만장일치?

<세상 끝의 살인>은 추리소설로는 아쉬운 점이 많은 소설이다. ‘추리’보다는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이기에 애초에 기대한 방향이 달랐다고 볼 수도 있으나, 온전한 스릴러물이라 하기엔 본격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추리 요소가 등장하는 것이 좀 애매하다.


찾아보니 에도가와 란포 상이 원래 본격 추리소설보다는 사회파나 폭넓은 미스터리 류의 소설을 쳐준다고 한다. 아마 이 작품의 대상 수상도 그런 견지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수학 공식을 방불케 하는 논리적인 추리 과정이라든지, 단서를 연결지어 누구도 생각지 못한 비밀을 발견해내는 통찰력이나 상상력 등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게다가 범인의 동기는 역대급으로 허약하다.


그 어떤 탐정보다 과격한 탐정

대신 이 소설의 장점은 빠른 전개와 긴박감이다.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사건과 인물을 마주치게 되니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한편으로는 아직 뭐가 뭔지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것이 조금 피로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끌고 가는 힘 덕분에 금새 다시 빠져들게 된다.


왓슨과 탐정 캐릭터도 꽤 괜찮다. 특히 탐정 캐릭터가 이제까지 읽은 모든 추리소설의 모든 탐정들 중에서도 가장 과격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사가와 강사는 소파에 앉아서 담배나 뻑뻑 피우고 회색 뇌세포 드립을 던지는 안락의자형 탐정과는 정반대로, 굉장한 행동력과 물리력, 공격력을 자랑한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정의롭지만 악인에게는 그 어떤 범죄자보다 잔혹해진다는 점이 독특하면서도 바람직한 성격이라 하겠다.


신파일까, 휴머니즘일까

책을 다 읽은 후, 이 작품이 에도가와 란포 상의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점수를 얻은 데는 스릴러적 요소 뿐 아니라 휴머니즘적 요소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훈훈함은 신파와 감동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걸치고 있어서, 사실적이고 시니컬한 결말을 선호하는 독자라면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이다. 내 기준에서는 억지 감동이라기보다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었고, 조금 순진한 마음가짐으로 읽는다면 마음이 찡해질 수 있을 정도였다.


총평

솔직히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엉성한 부분이 많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르물. 그러나 이 내용이 굳이 소설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그 당위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영화가 더 어울렸을 것 같다.


사족

 작가의 성향이 드러난 것인지, 일부러 인물 설정을 그렇게 한 건지 모르겠으나 페미니즘적 가치관이 드러나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작품의 완성도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대목인데, 그래서인지 더 궁금하다. 플롯과 관계없는 데서라도 사상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나라가 꽤 비중있게 언급된다. 다만 한국을 입에 올리는 인물의 지식이 부족해 실제 우리나라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다른 인물들은 제대로 알고 있으니 그 인물의 문제이긴 하다.


 표지에 한국어 제목이 없고 일본어 제목만 큼지막하게 써놓은 건 뭣 때문일까. 심지어 책등에조차 일본어 제목이 훨씬 크게 인쇄된 탓에 이 책의 제목이 잘 외워지지 않을 정도였다. 책을 집어들 때마다 내가 우리나라 번역본을 산 것인지 일어 원서를 산 것인지 헷갈렸다. 더군다나 표지의 왼쪽 상단에 작은 글씨로 일본어 문장을 그대로 무려 9줄 씩이나 박아두는 바람에, 나름 멋진 일러스트가 다 묻히고 정신산만하기 짝이 없다. 일본어를 읽을 줄 알았으면 원서를 봤겠지, 이 책을 샀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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