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온 May 13. 2024

시리즈 최고의 완성도와 최대의 슬픔

<흉인저의 살인> ●●●●

한 추리소설 커뮤니티에 <흉인저의 살인>을 검색해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팬들의 평가가 상상 이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은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소설이 아주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 나는 리뷰 방향을 수정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처음의 감상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내가 느낀 장점을 최대한 설파하고 싶었다.

     


작가는 내가 이제껏 그 어떤 추리물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극도로 복잡하고 이상한 구조의 건물을 창조해냈다. ‘흉인저’라는 곳은 이름만큼이나 괴상한 장치와 장소들로 가득한, 오직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설정의 저택이다.

     

저택을 구성하는 두 동, 본관과 별관은 기묘한 형태로 얼굴을 맞대고 있으나 완전히 붙어있는 것도, 완전히 떨어진 것도 아닌 어중간한 형세다. 두 동 사이에 생겨난 애매한 공간은 ‘머리 무덤’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으며 본관은 다시 주구획과 부구획으로 나뉜다. 이 주와 부의 구분과 머리 무덤의 존재가 저택 구조의 핵심이다.

     

이렇게 요약한 것조차 복잡하지만, 골치 아프다는 이유로 평면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작품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나는 두 번째 독서 때평면도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흉인저의 구조를 확인할 필요가 생길 때마다 일일이 도면을 확인하며 읽었는데,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던 첫 번째 독서 때보다 훨씬 이해가 쉽고 재미있었다.

     

<시인장의 살인>에서 좀비가, <마안갑의 살인>에서 예언자가 메인 빌런으로 활약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흉인’이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흉인’의 정체를 여기서 밝힐 순 없으나 보통의 인간과는 여러 가지 다른 특성이 있다는 사실만 적어두겠다. 이 흉인의 습성과 저택의 구조적 특징을 잘 조합해야 살인 사건의 범인을 규명할 수 있다.

     

두 가지 힌트를 이용해 선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추리는 놀라운 수준이다. 나는 추리 파트를 읽으며 몇 번이나 다음의 말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가 진짜 천재다.’엄청나게 복잡한 조건 하에서 이론상 가능한 인물들의 행동을 모조리 다 계산하고, 반론의 반론까지 예상하여 해답을 마련한다. 이토록 창의적이고 정교한 저택 구조와 사건의 일시, 알리바이 등을 어떻게 다 고안해 냈는지 경이로웠다.

    

그러나 이런 고도의 복잡성은 추리소설 팬들에게 점수가 깎이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범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지나치게 정밀한 탓에 매우 사소하고 지엽적인 단서에 대해서도 시시콜콜 따지는 측면이 있어, 박진감 있는 전개를 원하는 독자층에게는 루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빨리 범인도 잡고 흉인저에서 탈출도 해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지난 밤 행동 되짚기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장 긴박감이 넘치는 대목은 중반에 등장하는 기습 작전이다. 마치 첩보영화처럼 순식간에 잠입, 탐색, 전투, 탈출 등이 전개되고 충격적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시리즈를 거듭하며 점점 성장한다고 생각했던 작가의 필력이 만개했다고 느낀 파트였다. 서사의 완급조절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표현력 덕에 소설적 재미가 넘쳤다.

     

작가의 문학적 욕심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두 전작에서도 사회적 혹은 철학적인 메시지를 녹여넣는 시도를 했던 그는 이번 작에서 사악한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탐욕, 그로 인해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작품이 전작들보다 훨씬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흉인저에 얽힌 비극에 대해 어떤 감상을 느낄 지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안타까운 사고로, 누군가는 분노의 대상으로 여길 테고, 냉철한 독자라면 소설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신파적 성분으로 평가할 확률이 가장 높다. 그러나 나처럼 어디든 쉽게 감정이입을 하는 성격이라면, 그리고 어떤 아이의 엄마라면‘몹시 슬픈 이야기’로 느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범죄가 방어능력이 전무한 어린 아이를 학대하고 유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이 사악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고통당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견딜 수가 없다.

     

<흉인저의 살인>을 읽으며 그와 비슷한 슬픔과 아픔을 느껴야 했던 탓에, 현실을 꼭 닮은 처참한 사건을 만들어 낸 작가가 미웠다. 내가 픽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열망 때문인데 소설 속에서조차 가차없는 부조리함을 맞닥뜨리게 하면 어쩌란 말인가.

     

추리소설 중에서도 특히 고전적인 수수께끼 풀이 스타일을 선호해 온 이유도 특유의 연극적인 분위기와 작위적인 장치들이 일종의 판타지로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본격파 추리물을 표방하는 작품에서 이토록 비통한 서사를 만들어 내면 난 어디서 위로를 얻어야 하는가.

     

마음이 축축해지는 것이 싫어서 2회독 때는 일부러 추리와 액션 장면만 복습하며 건조하게 읽으려 노력했다. 세상의 수많은 다양한 픽션 속엔 이보다 더 슬픈 이야기도 많을 텐데, 심지어 어린 시절 읽은 동화에도 더 불쌍한 아이들이 잔뜩 나오는데 이 정도 서사를 덤덤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보면, 어른이 되어 세상에 존재하는 상상이상의 끔찍함들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겁이 더 많아진 것 같다.




          

<흉인저의 살인>은 내게 시리즈 최고의 재미와 최대의 슬픔을 안긴 채로 끝이 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마무라 마사히로 월드는 계속될 예정이다. 1편부터 이어지는 세계관은 고정 등장인물들과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거대 음모를 축으로 새로운 사건들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처럼 회전한다. 다음 편은 어떤 내용일지, 이 이야기가 몇 권까지 이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알라딘에 접속할 때마다 시리즈의 신간이 나왔는지 꼬박꼬박 확인 중이지만 아직은 반가운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신작 알림을 받는 즐거움을 언제 누리게 될지 고대 중이다.

      

‘흉인저’도 일본에서 출간된 지 꽤 시간이 지난 이후에 우리나라에 번역되었으니, 차기작을 만나는 시기는 생각보다 더 뒤일지도 모르겠다. 온갖 좋은 기운들이 모여들어, 기다림의 시간이 줄어들기만을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언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