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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Oct 11. 2024

콘서트 D-2, 짧은 나들이 계획

10월 13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보아 콘서트가 열린다. 간신히 표를 손에 넣긴 했지만 시야가 제한될 게 틀림없는 제일 구석 자리다. (형편없는 티켓팅 실력은 대체 언제쯤 나아질까) 그래도 괜찮다. 세 시간 동안 보아 뒤통수만 봐야 한다 해도 갈 거다. 콘서트만 줄 수 있는 흥분, 막이 오르고 친숙한 비트가 수백 배는 증폭되어 공연장을 강타할 때의 기쁨, 몇천 명의 사람들과 한마음이 되어 열광하는 즐거움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지방민이 서울 공연에 갈 땐 디테일한 계획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차표 구입이다. 난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그곳에서 학교를 다닌 남편에게 교통편이나 간단한 지리를 묻곤 하는데(네이버 지도 찾아보면 되지만 그래도 꼭 묻게 된다), 이번에도 서울역과 수서역 중 어디가 나을지 물었더니 답은 SRT였다. 핸드볼경기장에 가기엔 그 편이 훨씬 가깝다면서.


콘서트 시작이 4시니까 수서역엔 점심때쯤 도착하면 될 것 같다. 공연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다 3시쯤 입장하면 된다. 울산에서 9:38분에 출발해 수서에 11:46에 도착하는 기차가 적당해 보인다.


엇, 그런데 내려오는 차편이 문제다. SRT는 막차가 21시 28분으로, 좀 이르다. 내 경험상 콘서트는 넉넉히 4시간 정도 하니까 8시에 끝난다 치면, 1시간 반 안에 올림픽공원에서 수서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해 보이지만 당일 인파와 혹시 모를 돌발 사태 등을 고려하면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설마 앵콜을 못 보고 나와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바에야 난 기차 포기하고 서울남부터미널 가서 버스 타고 내려올 거다. 그 먼 길을 갔는데 들어가는 가수의 뒷모습은 보고 나와야 할 것 아닌가. 작년처럼 (보아)언니가 집에 가라고 할 때까지 있을 테다.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 시각은 울산역까지 가는 교통편에 따라 다른데, 주말이라 주차장이 만차일 게 틀림없으니 내 차로 가진 못할 거다. 리무진은 버스정류장까지의 거리가 애매하고 택시비는 거의 2만 원이 넘을 게 분명하다. 정류장까지만 택시를 이용하고 거기서 역까지는 리무진으로 가는 게 좋겠다. 그러려면 8시 30분에 집 앞에서 택시를 타야 하니 최소 7시 30분에는 외출 준비를 시작하자.


서울까지 2시간 20분 정도 걸리므로 SRT에서 읽을 책을 골라놓아야 한다. 충전기와 보조배터리와 망원경은 필수고 갤럭시 버즈도 챙겨야 기차에서 노래를 복습할 수 있다. (어쩌면 그냥 신나게 잠만 잘 지도 모르지만..) 공연장이 실내여도 끝나고 수서역에 돌아갈 때 밤공기가 쌀쌀할 수 있으니 도톰한 아우터도 넣는 게 좋겠다. 그리고 물론, 아별봉(보아 응원봉)이 있다. 아이에게 요술봉 놀이하라고 빌려줬었던 아별봉을 찾아서 작동이 잘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쉬고 있던 그 아이도 드디어 본업을 재개할 때가 됐다. 후훗.


몇 년 전부터 혼자 서울에 가게 될 때면 즐기는 나만의 루틴이 있으니, 괜찮은 초밥집을 찾아 식사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올림픽공원 근처의 초밥집을 몇 군데 봐두었고 수서역에서 식당까지 바로 이동할 예정이다. 낯선 곳에 가서 연어초밥을 맛보는 일은 콘서트 날의 또 다른 큰 즐거움이라서, 벌써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일요일에 쉬는 가게는 아닌지 잘 체크해 두자)


점심을 먹고 나면 남는 시간은 고작 2시간 정도일 듯하니 공연장 가까이에서 시간을 보내야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근처에 어디 둘러볼 곳이 없나 찾아보니 마침 한성백제박물관이 있다! 난 고향과 거주지가 모두 신라 땅이지만 대학을 백제 중심지에서 다녔기 때문에 백제에 더 관심이 많다. 반갑게도 이 참에 풍납토성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겠다.


박물관에서 핸드볼경기장까진 걸어가면 될 것 같고, 마음껏 공연을 즐긴 다음에 지하철을 타고 수서역으로 돌아오면 되겠지. 택시를 타면 좋겠지만 발 빠른 사람들이 채어 갈 가능성이 높다. 작년에 올림픽 홀 갔을 때도 그랬다. 흑.




며칠 전부터 보아의 앨범을 천천히 복습 중이다. 이번 콘서트에서 특별히 듣고 싶은 곡이 있는지 생각해 봤는데, 그냥 어떤 노래든 다 좋을 것 같다. 난 전성기 시절부터 최근 앨범들까지 보아의 이름을 달고 낸 모든 음악을 좋아하니까.


극성 안티 무리에게 시달리던 데뷔 초 말고 최근에 몇 번 보아가 아이돌 팬들이나 대중에게 비판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일리 있는 의견이나 애정 어린 쓴소리도 있었지만 인신공격성 발언과 원색적인 비난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지적은 '음악이 올드하다'는 주장이었다.


과연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최근 앨범들을 들어보기나 했을까? 들어봤으면 올드하다는 소리는 절대 못 했을 텐데. 특히 미니 1집은 너무 트렌디해서 낯설 정도였고, 정규 9집이나 10집도 세련된 수록곡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창법과 음색 또한 예전보다 훨씬 섬세하고 정교하다. 아티스트의 꾸준한 음악적 도전과 노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든 팬들이 같은 마음이겠지만 내 바람은 오직 우리 언니가 앞으로 계속, 더 오랫동안 가수 생활을 하며 음악을 발표하는 것이다. 일전에 은퇴라는 단어를 꺼낸 걸 보고 놀란 팬들에게, 계약은 내년까지며 '그때까지는' 가수로서 최선을 다할 거라고 했었는데, '그때' 이후에 뭐가 있을지 몰라도 부디 음악은 계속해주었으면 한다. 참, 공연도 더 자주 해줬으면 한다. 무슨 팬이 그렇게 부담을 팍팍 주냐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언니는 아직 연차에 비해 콘서트(특히 한국) 횟수가 너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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