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월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을 분야별로 나누어 세 보았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고전문학 2권, 역사 1권, 추리소설 11권, 평전 1권, 현대소설 3권. 이번에도 사회과학은 하나도 안 읽었다. 그래도 고전이랑 순문학을 조금이나마 봤으니 골고루 읽기에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자위하고 있다.
그중 추리소설 매거진에 올려야 할 책을 빼고 인상 깊었던 몇 권에 대해서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카뮈, 최초의 인간
다 읽은 나 자신을 칭찬한다. 고전이라고 다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카뮈의 이 미완성 작품은 정말 쉽지 않았다. <이방인>보다도 완독하기 힘들었다.
일단 문장이 엄청 길다. 6~7줄이 넘어가도 끝나질 않고 쉼표도 많으니 읽는 사람조차 숨이 찬다. 주어와 동사를 찾기도 힘든 그 긴 문장들을 비문 없이 번역해 낸 김화영 박사는 실로 대단한 분이다. (그분도 역자 후기를 통해 ‘집요하게 긴 문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최초의 인간>은 카뮈의 구상대로 완성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나, 지금 결과로만 보아서는 자극적인 서사보다 잔잔한 일상의 묘사 위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을 그린 이 소설에는 궁핍했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가득하다.
자연의 축복 속에서 구김 없이 자라는 소년의 순수하고 씩씩한 모습,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덤덤히 살아가는 어머니와 할머니, 좀 모자라지만 선하고 용감한 삼촌 그리고 이들 가족 간의 투박한 애정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장황한 문체와 빽빽한 묘사 탓에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나중에야 깨닫긴 했다)
권여선, 각각의 계절
현대 한국문학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권여선이라는 작가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 유수의 문학상 수상자였다. 단편 하나하나가 모두 깊이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인물 간의 관계와 갈등, 내밀한 감정에 대한 묘사가 섬세했다.
한 가지 거슬렸던 부분은 모든 작품의 인물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애연가라는 점이다. 담배 피우는 장면이 그렇게 빠짐없이 나오는 소설집은 처음 봤다. 당연히 작가 본인도 애연가일 줄 알았더니 엄청난 애주가라고 한다. 어쩌면 둘 다 좋아할지도 모른다.
술도 담배도 안 하는 나는 해당 장면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지만 반대로 양쪽 다 좋아하는 독자라면 쉽게 몰입할 수도 있겠다. 기호식품을 즐기든, 즐기지 않든 좋은 소설을 원한다면 후회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집이다.
이희진,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 고대사
현재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아마도 서울대 사학과)가 식민사학에 물들어있다는 고발을 담은 저서다. 저자는 고려대에서 이과를 전공하고 서강대 대학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전공자도 아니면서 이런 도발적인 제목을 썼다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테지만 박사까지 수여받은 분이 썼다고 하니 호기심이 일었고, 다 읽고 나서는 혼란에 빠졌다. 주류 학계를 두고 어디서는 국수주의라고 매도하고 또 어디서는 반대로 식민사학이라고 비난하니, 대체 뭐가 맞는 소리인가? 과연 무엇이 진정한 실체인가?
나는 초중고를 거쳐 학부까지 줄곧 주류 학설로 교육받았기에 솔직히 저자의 주장과 논거가 완벽하게 옳다고 결론 내릴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우리나라 고대사학계의 원로이자 거두인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다시 펴서 머리말을 찬찬히 읽었는데, 오히려 상당히 균형 잡힌 시각으로 쓰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지식으로는 이희진 박사의 책을 학문적·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으므로, 이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는 중이다. 특히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신빙성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데 이희진은 긍정론, 주류 사학계는 수정론 쪽이라고 한다. 방금 검색하니 같은 문제에 대한 99년도 기사까지 뜨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된 쟁점이다. 고대사를 둘러싼 이러한 논란들은 일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절망적’이라고 표현됐었던 사료의 극심한 부족을 실감케 한다.
김창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평전
위인전에 나온 인물 중에서도 소수라서, 그리고 같은 여자라서 나는 세계의 여성 위인 3인방을 제일 존경했었다. 아동용 전기의 간소한 내용은 성에 차지 않았으므로 자라면서 계속 제대로 된 평전을 찾아다녔다.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교보문고 광화문 본점에 가서 헬렌 켈러의 자서전을 샀고, 대학생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마리 퀴리의 평전을 빌려 보았다. (퀴리 부부의 딸이며 작가였던 에브 퀴리가 쓴 것으로, 무척 재미있었다. 하루 날밤을 새서 다 읽고는 감동에 젖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유독 나이팅게일만 어디에서도 관련 도서를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던 중, 2019년에 충실한 내용의 평전이 출판되었음을 알았다. 병원 수간호사로 재직 중인 김창희라는 분이 쓴 책이었다.
전기 역시 일종의 문학인 만큼 문필가가 썼으리라 예상했던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현직 간호사이신 만큼 의료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성실한 작가보다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었겠지만, 문장력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평전을 다 읽은 후의 소감은, 안 읽었으면 후회할 뻔했다는 것이었다. 문학보다는 다큐에 더 가까운 느낌이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풍성하게 실려 있는 덕분이었다. 특히 플로렌스의 유능한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명석한 통계학자로서 세운 업적이 잘 드러나 있었다.
플로렌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추진력의 소유자였으며, 목표를 위해서는 자신의 재산과 지위, 인맥 또한 이용할 줄 알았다. 사비를 털어 시설을 짓거나 물자를 샀고, 절친한 친구였던 영국 국방성 장관에게 수많은 편지를 써서 지원을 요청했다.
수학과 통계를 좋아했던 그녀는 전쟁 중 연도별·월별 입원, 부상, 질병, 사망자의 숫자와 그 원인을 직접 고안한 도표로 표시해 보고서에 실었다. 장미꽃을 닮아 장미도표(로즈 다이어그램)라고 불리는 이 통계는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었고, 보건위생과 사망률의 관계를 증명하는 자료로서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단한 플로렌스가 세균의 존재를 부정하여 잘못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19세기에는 나쁜 공기가 병을 옮긴다는 설과 세균에 의해 감염이 발생한다는 설이 대립했는데, 플로렌스는 감염 이론의 철저한 반대론자였던 것이다.
파스퇴르의 세균 발견과 리스터의 무균 수술법의 개발이 있은 후 그녀는 이를 세균 숭배라 부르며 비웃었다고 한다. 그녀는 공중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염병의 세균 원인론’을 비판했다. … 그녀는 세균의 존재를 본 적이 없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고, 신선한 공기의 효력은 경험한 바 있어서 믿은 것이다. (295p~296p)
그러나 나는 보고 경험한 바를 믿은 플로렌스의 태도 역시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오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세균론이 완벽하게 검증되지 못했던 시대적 한계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