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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D Apr 18. 2023

냉장고를 열 때마다 (ft.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라는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이다. 상실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이 책을 읽었는데도 꽤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리고 이 책에 관해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키친>의 주인공 미카게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미카게는 방에서 잠들기가 어려워 냉장고 옆에서 잠을 잔다. 위-잉 하고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에 평온함을 느낀다.



미카게와 다르게 나는 부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엄마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고 두 달 만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이 한 문장을 쓰는 데에 몇 년이 걸렸다.) 그리고 우리 집 부엌은 내게 더 가슴 아픈 곳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 뒤에 엄마의 공간이었던 부엌은 점점 더 방치되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으리라.



냉장고를 열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매일 새벽같이 출근하시는 아빠의 아침을 챙겼고 퇴근하고 나서 혼자 밥을 차려먹을 때면 꼭 눈물이 났다. 냉장고와 부엌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앉아서 고통에 몸부림칠 때 나는 냉장고에 기대고 앉거나 그 옆에 누웠다. 미카게처럼 평온을 느꼈다기보다는 그냥 거기에 있고 싶었다. 결국 냉장고는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내가 정리를 했는지 이모가 와서 도와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와서 엄마는 좋아하는 쑥떡을 먹으며 울었다고 했다. 슬픈 와중에도 쑥떡이 먹고 싶다고 그 떡이 맛있다는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했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절절하게 그 말이 사무쳤다. 엄마를 잃었는데 그 엄청난 상실에서도 배가 고픈 내가 무언갈 먹고 있는 내 모습이 견디기 힘들었다.



한참이 흐른 지금, 산다는 것과 부엌을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쑥떡을 먹으며 슬퍼했던 엄마를 할머니는 분명 이해했을 것이다. 울면서 밥을 먹는 나를 하늘에서 바라보며 엄마는 가슴 아파 했을 것이다.



요리를 정말 잘했던 우리 엄마는 냉장고를 열고 마법을 부려 맛있는 음식을 뚝딱 만들어 냈다. 여전히 나는 냉장고를 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생각나서 슬플 때가 많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엄마한테 보고 배운 것처럼 냉장고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부엌도 깨끗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해줬던 음식들을 비슷하게 흉내낸다. 내가 잘 차려먹기를 엄마도 바랄 거니까.



그래도 늘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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