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씩씩 Dec 21. 2023

2023 올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읽게 된 건 팟캐스트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덕분이었다. 여둘애드에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소개되었는데 작가님들의 소개 멘트와 신형철 문학평론가님의 추천사에 마음을 빼앗겨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여둘애드에 소개된 건 신간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전작인 <맡겨진 소녀>부터 차례로 읽고 싶어서 두 권 모두 주문했다. 김하나 작가님께서 <맡겨진 소녀>를 읽고 펑펑 우셨다고 하길래, 기대가 되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며 눈물 펑펑 흘려보겠구나 싶은 마음에 설레기도 했다. 펑펑 울어야 하니까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간에 한껏 분위기를 잡고 독서를 시작했고, 100페이지 분량의 짧은 소설이라 앉은자리에서 끝을 낼 수 있었다. <맡겨진 소녀>는 너무 아름다운 소설이었고, 너무너무 아름다운 소설이었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음,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책의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보니 키건은 “애써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지력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는데 문제는 나의 지력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나도 펑펑 울고 싶었다고요…


  <맡겨진 소녀>의 감상평을 한 줄? 한 글자로 요약하면 ‘음…’이었던 반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하아-’였다.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하였고, 급기야 책을 덮으면서는 깊은 탄성이 나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너무 소중해서 품에 꼬옥 안아주고 싶은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펄롱’이 되었다. 그의 시선에 닿는, 그가 마음을 쓰는 모든 일들이 모두 다 이해가 되어 지켜보는 내 마음도 저릿해졌다. 앞으로 그가 겪게 될 일들, 그가 어떻게든 해나갈 거라 믿고 있는 일들이 그의 삶을 힘들게 만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책을 덮었다. 이 짧은 소설의 밀도는 실로 상당했다. 정말이지 버릴 단어가 하나도 없었다. 야물차게 꼭꼭 채워진 사랑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소설이 주는 여운이 깊어 며칠을 품었다. 이 여운을 나 혼자만 품을 수 없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냈다. 반드시 크리스마스 전에 읽어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과 함께.



  사실 나는 번역서를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를 내 힘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서 한국 작가들의 책을 주로 읽는다. (한국 작가들의 책만 읽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니까) 그런데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마지막에 쓰인 옮긴이의 글을 보고 번역서에 대해 가졌던 굳건했던 생각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모든 작가들이 다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키건은 번역본을 출간하는 데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섬세한 태도를 보였다. 번역문에서의 뉘앙스까지, 세심하게 도움을 주는 키건의 태도는 그간 번역서에 가져왔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일차원적이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전작에 비해 신작의 감동이 더 크게 와닿아 다소 상반되는 듯한 평을 남겼지만, 클레어 키건의 두 작품 모두 아름다웠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에 담기에는 벅찰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소설로 단숨에 나의 사랑을 꿰찬 클레어 키건. 나는 벌써부터 이 작가의 다음이 기다려지는데, 다음엔 누구보다 기쁘고 반갑게 초판을 손에 쥐고 독서를 이어나갈 두터운 팬심을 보여 줄 준비가 되었는데, 이번 작품이 11년 만에 발표된 거란 사실에 기분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또 기꺼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다리며, 매년 12월이 오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연례행사처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어나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인생도 편집이 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