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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Jan 02. 2024

엄마 일곱 살 (2)

7년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

  아이 둘 육아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우울할 틈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까지 겹치는 바람에 재택 근무하는 남편과 어린이집 휴원으로 가정보육 중인 큰 아이까지, 넷이 함께 온종일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는 혼자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인데,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남편이 다시 출근을 시작했을 무렵, 친구들이 꽃시장에서 꽃을 한아름 사 들고 집으로 놀러 와 주었다. 친구들이 사 온 꽃을 식탁에 풀어놓고 함께 꽃을 만지며 꽃놀이를 즐기는 시간이 충만한 위로가 되었다. 꽃을 보고, 꽃을 만지며, 친구들과 함께 하는 간헐적 꽃놀이가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때마침(?) 정부에서 ‘재난지원금’을 주었고, 나는 남편에게 그 돈으로 꽃 수업을 들어야겠다고 했다. 꽃이 가져다주는 가정의 평화가 얼마나 큰 지를 경험한 남편은 흔쾌히 허락했다. 둘째 육아의 고단함을 달래준 건, 꽃이었다.


  지역 내의 꽃 수업은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어서 재난지원금이 아닌 제 값을 주고 듣기에는 탐탁지가 않았기 때문에 꽃 수업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그 돈으로 꽃을 사다 신나게 꽃놀이를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조용한 새벽, 알람이 울리면 슬그머니 일어나 꽃시장으로 향했다. 심혈을 기울여 꽃을 대여섯 단 골라 사들고 들어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꽃을 사 오는 날이면, 꽃 잔치가 열렸다. 집에서 꽃놀이를 하고 남은 꽃을 포장해 동네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면 건네는 마음에 행복이 가득했다. 그런데, 선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나누어 주자니 받는 사람 마음이 곤란할 것 같았다. 내 마음 즐겁자고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꽃들이 처치 곤란인 상황이 되어버렸고, 나의 행복한 꽃놀이가 막을 내리게 될지도 모르는 슬픈 상황에 처하게 됐다.


  고민 끝에, 나는 결국 2020년 11월에 두 번째 사업자를 냈다. 꽃 가방끈이 짧은 게 마음에 걸렸으나 꽃놀이 하고 남은 꽃들을 소박하게 팔아 볼 목적이었기 때문에, 간혹 어쩌다 내가 만드는 꽃이 마음에 든다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 디자인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호기롭게 일을 벌이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주변에 선물할 때는 그리도 예뻐 보이던 꽃이, 돈을 받고 판매하려니 자꾸만 부끄러워서 실력을 높이기 위해 결국 다시 꽃 수업을 신청했다. 높아진 눈을 채우기 위해 서울로, 판교로, 꽃을 배우러 다녔고 꽃을 팔아서 버는 비용보다 꽃을 배우는 데 쓰는 돈이 더 컸다. 대체 뭐 하자는 인간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보람찼다.


  어느 날은 돌도 안 된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꽃배달을 가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네 살 큰 아이의 손을 잡고 꽃시장에 가기도 했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일주일에 두세 번은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새벽 꽃시장에 갔지만, 힘들어도 힘들지 않았다. 꽃은 매일 예쁘고 매일 새로웠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날이 많았지만, 내 혼자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참 열심히 했다. 내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집에서 꽃을 판매하는 건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꽃집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코로나 시국이기도 했고 나 스스로가 장사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자연스레 꽃집 생각은 접게 되었다. 꽃은 체력 소모에 비해 (매장이 없는 한계와 부족한 장사 수완 탓에) 얻는 수익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꽃 값은 날로 치솟았지만 나의 장사 기술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꽃을 만지는 일은 너무 좋았지만, 꽃을 판매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깨닫고 일 년 넘게 지속해 온 꽃 장사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허무했다. 조금, 슬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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