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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Jan 02. 2024

엄마 일곱 살 (3)

7년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

  코로나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자수 수업은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무얼 하면 좋을까. 그 사이 둘째는 어린이집을 일 년이나 다닌 어엿한 어린이가 되었고, 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2022년 1월, 할 줄 아는 게 가르치는 일밖에 없던 나는 전공을 살려 독서 학원의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나에게 독서 학원은 최고의 직장이었다. 오후에 서너 시간만 근무하면 되니 오전엔 평화롭게 내 시간도 쓸 수 있고, 안정적인 수입도 있고,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날들이었다.


  여유가 지속되다 보니 몸이 근질거려서 다시 뜨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보그 수업을 들으며 뜨개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주일에 한 번, 대바늘 입문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시작한 배움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또 욕심을 부리고 말았다. 대바늘 입문 6개월 과정을 마치고는 대바늘 강사와 코바늘 입문 수업을 동시에 수강했다.


  아이 둘 육아에, 학원 선생에, 뜨개 학생까지. 대바늘과 코바늘 수업을 동시에 듣다 보니 언제나 해야 할 숙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괜찮았다. 몸이 익숙해져서 할만했다. 심지어 뜨개를 많이 해서 손목이 아픈 날이면 숙제를 잠시 멈추고 책을 읽을 여유까지 생겼다. 나는 늘 시간이 부족해 허덕이던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든 게 할만했다.


  내가 얼마나 시간이 많은 사람이 되었냐 하면, 뜨개를 할 때는 드라마를 틀어놓는데 얼마나 뜨개를 많이 했는지(=드라마를 많이 봤는지) 더이상 보고 싶은 드라마가 없어서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읽고 싶은 책이 많아져 한동안 멀리 했던 책도 읽기 시작했을 정도로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여유로울까.


  어느덧 2023년이 되었고, 그 사이 나의 직업은 학원 강사에서 학교 시간 강사로 바뀌었다. 뜨개 공부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었으나 일본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르는 날벼락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어 대바늘 강사와 코바늘 입문 수업을 끝으로 뜨개 공부는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본행은 면했으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해서 목을 조여 오고 있다.) 일 년 동안 뜨개 수업을 듣다가, 기한이 있는 뜨개(=숙제)를 하다가 갑자기 해야 할 것이 사라지니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었다.


  12월에 읽은 책을 세어보니 서른 권이었다. (유년 시절을 제외하고) 살면서 한 달에 이토록 많은 책을 읽었던 때가 있었던가. 내 삶이 기특해서 울컥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엄마로 살았던 지난 7년의 시간이었다. 엄마가 된 후 가장 서글펐던 건 내 시간이 없다는 거였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엄마 7년 차인 나는 지금 시간 부자가 되었다. 누구보다 야물차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너무 기특해서, 기특한 나를 온 동네방네에 자랑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다능인, 취미 부자로 만들어 준 지난 7년을 보내고 이제 해가 바뀌었다. 2024년, 나는 이제 엄마 여덟 살이 되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에 가고 나는 학부모가 된다.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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