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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May 09. 2024

이사 소감

  9년 전 오늘, 풀옵션 신축 원룸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우리. 작은 원룸에서 우린 둘에서 셋이 되었고, 세 식구가 살기에는 집이 너무 작아서 신축 쓰리룸으로 집을 옮겼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의 부족한 예산에 맞춰 사이즈를 키운 집이다 보니 대전의 외딴 동네였고, 그 바람에 나는 아이와 함께 혹독한 외로움을 겪었다. 결국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가 18개월쯤 됐을 때쯤 세종의 값싼 전셋값에 혹해 세종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대전의 딸로 자라 대전 사랑이 깊었던 나는 반드시 부자가 되어 대전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했는데, 세종에서 살아보니 애 키우며 살기에는 대전이고 뭐고 세종이 제일이었다.

  국민평수라 불리는 84제곱미터 신축 아파트가 주는 편안함은 이전에 살았던 신축 빌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했다. 세종살이에 흠뻑 취한 우리는 세종의 청약이란 청약은 다 넣고 떨어지고를 반복하였고,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돌 때쯤 됐을 무렵 덜컥 청약에 당첨되고야 말았다.


  생애 첫 내 집으로의 이사를 앞두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하반기에 남편의 중국행이 결정되는

바람에 이사가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겨우 몇 달 살고 떠날 거라 인테리어는커녕 그 흔한 줄눈마저 하지 않고, 간단히 입주 청소만 마치고 이사를 했다. 새 집으로의 이사를 앞두고 부풀었던 마음이 식어버리니 이사가 숙제처럼 느껴졌었는데, 짐을 옮기고 이사를 마친 집에 앉아 가만히 둘러보니 어째 좀 괜찮은 것 같다? 이 기분 뭐지? 이사 오는데 새 가구 하나 없이 쓰던 것들 줄줄 늘어놓는 마음이 어쩐지 좀 서글퍼서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둘러보니 쓰던 것들은 모두 과거의 내가 시간을 들여, 예산의 가용 범위 내에서 고심해서 고른 물건인 탓에 새 집에 두어도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 새로 산다고 해도, 고만고만한 예산 안에서 고르는 걸 테니 별 수 없을 거란 사실이 위안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이삿짐을 싸느라 체력을 너무 많이 쓴 바람에 정리는 아주 아주 먼 훗날, 미래의 나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새 집이 퍽 마음에 들어서 어서 빨리 집을 정리하고 말끔해진 새 집을 짧고 굵게 누리고 싶어졌다. 솔직한 마음은, 이사 오니 너무 좋아서 중국이고 뭐고 쭉 눌러앉고 싶은데 과연 나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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