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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Aug 08. 2024

아무래도, 먹으러 왔나 봅니다.

2024년 8월 6일 화요일 날씨 맑음

  시안이가 잠결에 다리를 아빠 배에 척 올려두었다. 나였더라면 예쁜 다리를 문질문질 쓰다듬고 그대로 두었을 텐데, 남편은 시안이 다리를 들어 바닥으로 내동댕이. 잠결에도 한결같이 가차 없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킹 사이즈 침대에 넷이 다닥다닥 붙어 자려니 잠자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렇게 잘 바엔 그냥 일어나는 게 낫겠다 싶어 일찍 일어나 밀린 일기를 쓰고 있다. 아이들도 분명 잠자리가 불편할 텐데 잘 잤냐고 물어보면 잘 잤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죽을 맛인데 아이들은 기억이 없어서 다행이다. 얼른 대책을 마련해 봐야지.


  중국에 와서 그야말로 찐 여름을 경험 중이다. 한국의 여름도 덥긴 했지만 맨날 차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하니 무늬만 여름이었지, 땀 안 나고 고슬고슬한 날들을 보냈었는데 여기 와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땀이 줄줄줄…


  남편의 연구실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기도 하고, 회사 측에서 중국 이주 후 필요한 일처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그간 외출 시에는 항상 남편과 함께였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이 처리할 일이 있어 출근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아이들과 셋이 점심을 먹었다.


  중국 온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같은 메뉴 두 번째 도전! 아는 맛이 안전할 것 같았고 아이들도 햄버거가 먹고 싶다길래 며칠 전 갔었던 맥도널드에 다시 갔다. 남편이랑 같이 가서 주문할 때는 남편 핸드폰으로 주문용 큐알을 찍고 내 핸드폰으로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주문을 했는데 오늘은 혼자서 메뉴를 캡처해 가며 번역기를 돌리려니 속이 터져서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 맙소사! 맥도널드 직원이 더듬더듬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나의 더듬더듬 영어와 협력하여 주문 성공. 단어로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귀인을 만난 기분이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버블티를 먹고 싶다고 해서 버블티 매장에 갔다. 메뉴판에는 밀크티에만 버블이 들어 있는 걸로 나와서 번역기로 ‘망고 주스에 버블을 추가해 줄 수 있나요?’ 물었더니 직원 둘이 난감한 표정으로 안 된다고 했다. 아이들이 버블티를 포기 못 해서 설득하느라 계속 매장 앞에 있으니 직원이 나와서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물었다. 망고 주스와 밀크티에 든 버블 그림을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했더니 해준다고 했다. 오예!!! 계산하는데 친절한 직원이 본인의 핸드폰으로 번역기를 실행시켜 내게 내밀었다. ‘이것은 중국말로 진주라고 한다’ 아 맞다, 펄!!!! 친절한 직원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이들의 버블티에는 마치 ‘옜다 많이 먹어라’의 느낌으로 진주가 엄청 많이 들어있었고 아이들은 천국맛을 맛본 표정이었다.


  아직도 집에 가스 연결이 안 돼서 오늘로 일주일째 외식 생활 중이라, 햇반에 김만 싸 먹어도 좋으니 집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오늘은 또 무얼 먹나, 터덜터덜 ‘롱지후’로 향했다. 식당을 고를 때는 밖에서 아이들이 먹을 맵지 않은 메뉴가 있는 지를 확인하고 들어가는데, 오늘 저녁은 소고기 볶음밥이 맛있어 보이는 곳으로 정했다. 식당에 가서 어플로 주문을 할 때 어린이 인원수를 체크하는 곳에서는 어린이 메뉴(귀여운 식판에 동물 찐빵이랑 과일, 옥수수, 국수 등)를 서비스로 주신다. 지난번에 처음 겪었을 때는 황송해서 어쩔 줄 몰랐는데 오늘은 두 번째라 자연스럽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저우‘에 간다고 했을 때 중국 경험이 있는 지인들에게 음식이 맛있을 거란 얘길 종종 들었는데, 여긴 정말 음식이 맛있다. 입이 짧고 향신료에 예민한 편이라 음식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와서 보니 이 또한 괜한 걱정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매운 음식점 거르고, 중국어가 안 되니 주문이 어려워 보이는 훠궈집도 거르고,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는 집은 난이도가 높을 것 같다 거르고, 그러고 나면 먹을 게 없을 줄 알았는데도 매일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재미가 있다.


  오늘 저녁을 먹은 식당은 판다 젓가락 받침이 너무 귀여워 마음속으로 별 다섯 개를 주고 시작했다. 와, 테이블 세팅에서 나오는 센스가 음식에서도! 음식이 너무 맛있으니 본능적으로 행복한 마음이 차올랐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 두고 햇반에 김 싸 먹었으면 억울할 뻔?) 특히, 아이들을 위해 주문한 소고기 볶음밥이 맛있어서 놀라웠다. 중국 볶음밥 이렇게 맛있는데 우리나라 중국집에서는 대체 왜 그렇게 기름 범벅인 볶음밥만 파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또, 중국 와서 맛있는 것 중 하나는 두부!! 두부가 진짜 야들야들 부드럽고 맛있는데 중국 마파두부 처음 먹어보고 하트 뿅. 와, 이게 진짜구나. 내가 여지껏 먹었던 마파두부는 다 한국맛이었구나. 제대로 된 마파두부도 먹고, 중국에 온 보람이 있다. 매우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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