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8일 수요일 날씨 맑음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카톡이 활발한 기능을 한 건 아니지만, 중국에 온 뒤로는 카톡이 거의 울리지 않고 있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대부분 아이폰 유저라 안부는 주로 아이메시지, 가벼운 이야기들은 인스타 디엠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카톡은 주로 광고 메시지를 받는 용도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오랜만에, 아침부터 한국에서 반가운 카톡이 왔다. 즐거운 대화를 마치고 마지막에 ‘신박한 하루 보내’란 인사를 들었는데 처음 들어보는 인사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신박한 하루라니.
중국에 온 첫 주에 아이들 학교에서 한국인 선생님과 한국인 학부모를 만난 게 계기가 되어, 한인들과 소통하며 재미있는 중국 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 주에는 한국 친구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고, 셋째 주에는 엄마들끼리 모여 브런치를 먹었고, 그리고 넷째 주인 바로 오늘. 오늘은 한국 친구 집에 모여서 무려 ‘파김치’를 담갔다.
어젯밤 한국 친구 집에서 열리는 파김치 모임에 초대를 받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가도 괜찮을지 고민했더니 파김치 담가줄 사람이 올 거라 괜찮다며 안심시켜 주셔서 가벼운 마음으로 향했다. 오늘 함께 한 멤버는 지난주에 같이 브런치를 먹었던 3-40대 주부 넷과 처음 보는 20대 후반의 형제님 한 분이었는데, 와우. 이 형제님이 바로 오늘의 요리사였다!
먼저 집주인인 친구가 차려준 맛있는 한국식 점심을 먹고(감동의 맛!!), 형제님의 주도 하에 같이 파를 다듬었다. 그리고 형제님께 양념장 만드는 것을 배우고, 형제님께서 양념 바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다, 파 다듬는 것 말고는 모두가 형제님이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 셈이다. 이 상황이 너무 재미있고 웃기고, 참으로 신박했다. 아침에 카톡으로 건네받은 인사대로 나는 정말 야무지게 신박한 하루를 보냈다. 이보다 더 신박할 수는 없다, 중국에서 파김치라니!!
오늘 만난 멤버들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이인데, 나는 학교에서 만나게 된 게 인연이 되어 이들 사이에서 파김치까지 담그게 됐다. 나는 누군가 내게 종교를 물으면 차마 무교라고 할 수 없어서, 교회를 다녔었다는 과거형으로 답을 하는 왕년의 기독교인이다. 지난주에 브런치를 먹으며 나와 마주 앉은 이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이인 걸 알았을 때, 사실 마음이 좀 쿵쾅거렸다. 내가 교회에 다녔던 이유, 다니지 않게 된 이유, 오랜 시간 다니지 않던 이유, 다시 다니고 싶었던 이유, 그럼에도 다시 다니지 않았던 이유. 모든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명확하게 떠올라 그 어떤 결정도 내릴 수가 없는데 이렇게 갑자기 내 삶에 훅 치고 들어오면 어쩌란 말인가.
만나서 파김치를 담그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그중 교회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 모임 전반에 흐르는 은은한 믿음의 온기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배려가 너무도 선명해서 지켜보는 마음이 무척 흐뭇했다.
우리 김여사님께서는 내가 중국에 와서 만난 친구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사이라고 했을 때, (당연히 나도 그들과 함께 예배드리게 될 줄로 알고) 이제 내 걱정을 안 해도 되겠다며 안심하셨다. 본인 딸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닌데, 엄마는 왜 이렇게 나를 모르는 걸까.
아무튼, 종교의 문제를 떠나서도 이곳에서의 생활이 참 감사하다. 한국인이 몇 없는 척박한 땅 정저우에 와서 운이 좋게 초반부터 한국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외롭지 않게 살고 있다. 너무 좋고, 너무 감사한데 이 생각을 자꾸 거듭하다 보니 생각의 끝이 자꾸만 이 또한 주님의 은혜가 아닐까 하는 홀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어우. 안 돼, 안 돼, 여기까지. 오늘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