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근 후의 서재 Oct 18. 2023

여성의 흡연에서 시작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사람입니다 고객님> - 김관욱

 <사람입니다, 고객님>이란 책의 저자인 김관욱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의사이자 인류학자이다. 원래는 의사의 길을 걷던 중에 뒤늦게 자신이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에 도전했는데, 그 결과 쉽게 연상되지 않는 두 개의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가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군인들을 상대로 흡연이라는 중독 현상을 연구한 적 있었나 보다. 사회에 나와서도 그 관심은 여전했고, 한국 사회의 흡연 현상을 연구하던 중 유독 젊은 여성의 흡연율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서 더 연구를 진행하던 와중에 특정 직업에서 높은 흡연율이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콜센터다. 그때부터 저자는 옛 구로공단 자리를 차지한 디지털 단지에서 간판 없이 운영 중인 콜센터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맨땅에 헤딩하듯 하나씩 직접 방문하고 인터뷰하여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펴낸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고객님>이다.      


<사람입니다, 고객님> 책 표지

 여기까지 읽고 난 당신의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르는지 알고 있다. 아마도 감정노동의 최고봉이라는 콜센터에 관한 흔한 이야기와 풍경들일 것이다. 진상 고객들에게서 받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라던가, 믿기 힘든 빌런 에피소드들, 책 제목이 연상시키는 대로 그들도 사람이라며 우리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문장들, 콜센터라는 혹독한 생태계와 그 혜택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도덕적인 지침 같은 것들 말이다. 만약 당신이 예상한 내용에 그쳤다면 처음부터 이 글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그런 이야기는 너무 흔하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저자인 김관욱의 연구는 그보다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콜센터의 감정노동이 아니라, 노동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했는지를 다룬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상담원들의 스트레스를 빠르게 줄이고, 쉽게 근무지로 돌아올 수 있도록 흡연에 용이한 근무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연구와 연결고리를 갖는다.           


 저자가 내부 직원들을 통해 들은 콜센터의 현실은 조금 충격적이다. (주의할 것은 이 사연들이 하청을 전문으로 하는 간판 없는 콜센터들의 경우로 한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심한 경우 8단계 하청까지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소수의 관리자로 많은 인원을 통제하기 위해 자리 비움 같은 알림이나 업무 전달을 디지털화한다든지, 모두의 실적을 눈에 보이는 곳에 게시하고 상위의 소수에게만 성과급을 지급해 경쟁을 시킨다는 내용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쉼 없이 업무를 돌리기 위해 200명이 넘는 사무실에 단 3개의 화장실 열쇠만을 걸어두는 식으로 직원들의 휴식과 화장실을 통제한다는 사실에는 정말 놀랐다. 거기에 실적 내기 좋은 고객 리스트를 얻기 위해 관리자에게 매일 아침 빵이나 우유, 과일 같은 음식을 대접한다는 이야기에도 기가 찼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사무실 옆에 큰 베란다를 트고 커다란 재떨이를 두어 최단 거리로 흡연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멀지 않은 곳에서 빠르게 털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흡연이 단기적으로 스트레스 경감에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이 중독을 일으키고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다. 콜센터들은 계속해서 업무가 돌아가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위험하지만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드는 흡연이라는 방식으로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한때 여공들이 주로 일을 했던 구로공단 지대는 수출을 위한 공장들이 들어선 곳이었다. 인천으로 빠르게 물류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지역이라 박정희 시대에 조성되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공단의 공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디지털 산업을 표방한 거대 빌딩들이 들어섰다. 저자는 그 빌딩 속에 숨어든 콜센터들이 21세기형 디지털 공장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돌아가는 노동 공장. 그 디지털 공장에서는 굴뚝의 연기가 아니라 거대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최근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K를 붙인 열풍들이 많다. 그중에는 초록색 병, 소주에 대한 것도 있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는 그 술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한때 저급한 술로 부끄러워했던 소주가 각광을 받고 있다. 


 소주 예찬론을 펼치는 사람들은 소주가 한국 음식과 얼마나 궁합이 좋은지를 떠들어댄다. 하지만 나는 이 인과관계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음식에 유독 소주가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소주에 잘 어울리도록 한국의 음식들이 변화해 온 것이다. 


 지금은 그 정도로 심하지 않겠지만 한때, 그러니까 고도성장을 보이던 70년대부터 90년대에 한국 사회의 음주량은 엄청났다. 한창 선진국을 지향하던 시기였던지라 언론들은 걸핏하면 국민들의 엄청난 음주량과 함께 술을 권하는 문화를 문제 삼곤 했다. 옛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여공들의 증언처럼, 이때는 타이밍이라는 약을 먹어가며 3교대로 장시간 노동에 내몰렸던 시절이다. 고된 노동 강도와 장시간 업무에 지친 사람들이 피로를 잊기 위해 쉽게 찾는 것이 소주였다. 가장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다 보니 한국 음식도 그에 맞춰 변화해 왔을 것이다. 


 과거에 소주가 차지했던 영광의 일부를 지금은 담배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음주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었고, 음주와 관련된 법 처벌도 강화되었으니까. 그리고 고용주 입장에서도 술보단 흡연을 권하는 게 낫다. 술을 마시면 다음날 근무 효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경제학자가 우리가 받는 월급을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재분배한 것’이라고 표현한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발언은 내게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 회사라는 한 그룹이 다 같이 고생하여 벌어들인 돈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눠줄 것인가, 그것이 임금이다. 그 결정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줄어든 몫을 손에 쥐기 시작했다. 내 월급만 빼고 모든 게 오르고 있어,라는 농담 같은 진실이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때부터일 것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상승했지만, 한 주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길고, 거기에 정치는 최장 69시간까지 일을 시켜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만들었다. 길어진 노동시간, 줄어든 임금. 서서히 사회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소주를 찾던 손으로 담배를 쥐어 드는 모습이 내게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성의 흡연에서 시작해 콜센터로 확산된 이야기가 한국 사회를 가로지르는 한 단면처럼 보인다. 근무자들의 무한 경쟁, 효율과 성과를 높이기 위해 가혹하게 압박하는 시스템은 쿠팡의 물류창고부터 여의도의 금융 회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직종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강도와 외형이 다를 뿐, 모두가 똑같이 디지털 공장 안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와 피로를 잊기 위해 누군가는 맛집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술을 선택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담배를 집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다음 소희>와 같은 영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밤 우리의 손에 들려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다. 담배 대신 무엇을 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비록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질 테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전시] 판타지와 스토리에 메시지까지 담아낸 작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