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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Jan 24. 2024

당신의 빚은 온전히 당신의 책임입니까?

<약탈적 금융사회> - 제윤경, 이헌욱

 간단한 퀴즈 하나. 

 여기 두 사람이 있다. 이미 많은 빚을 지고 있는 프리랜서와 빚 하나 없이 살고 있는 월급쟁이. 이들 중 누구의 신용등급이 더 높을까?      


 소득의 안정성이나 재무 구조의 건전성을 놓고 봤을 때 후자가 더 높을 것 같지만 예상과 달리 부채 규모가 큰 프리랜서의 경우가 신용등급이 더 높다고 한다.      


 이 내용은 오늘 소개할 책 <약탈적 금융사회>에 등장한 실제 사례다. 저자는 자신이 출연했던 실제 방송 내용을 전달하며 빚지고 살지 않으면 불이익을 얻는 것은 은행의 마케팅이 신용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정리한다. 


 당신은 빚을 지고 있는가? 그 내용과 종류는 어떻게 되는가? 가계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빚을 지지 않고 살기란 가능한가? 그 모든 질문에 앞서 이 책에서 다루는 빚에 대한 내용은 한 번쯤 생각해 볼거리를 준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양해의 말을 남긴다.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로 시중에서 새 책을 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중고 시장에서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중고책을 구입해 봐도 좋을 것이다. 

          


아쉽게도 절판되어 구하기 어렵지만 중고시장에 나와있다


<약탈적 금융사회>라고 이름 붙여진 이 책은 2012년에 쓰였다. 그 시기에 세계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모기지론이라는 주택담보대출의 문제로 월가에 대한 항의 시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fy Wall Street)’가 펼쳐지고 있었다. (1퍼센트에 맞서는 99퍼센트라는 문구가 기억날 것이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산O머니니 러O앤캐쉬니 하는 대부업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던 때다. 


 이 책은 그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무분별하게 대출을 내준 은행들이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지적하고 있다. 상환하지 못할 시 담보를 가져가면 된다며 애초에 상환이 힘든 금액을 빌려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다. 개인이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 대출을 해주었다가 사달이 난 것이 미 금융위기의 핵심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저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상환 능력 이상의 대출을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로 규정하고 법률로 규제한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빚이 없는 사람보다 빚을 진 뒤 착실히 갚는 사람이 더 좋은 신용등급을 받는다. 이러한 신용등급 산정은 신용정보회사와 금융회사가 독점하는데, 신용정보회사는 이름과 달리 공적 기관이 아닌 사적 기업이라고 한다. 신용등급을 산정하는 기준을 신용 정보 회사와 금융회사가 독점하는 셈이다. 금융사들이 채무자의 학력에 따라 신용 등급을 차별하고, 학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부당하게 가산 금리를 책정했다가 감사원에게 발각된 적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연 신용등급은 정당한가? 금융사들이 제멋대로 책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거기에 제동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에서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하면 흔히 그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한다. 빌린 돈을 갚지 않는 파렴치한으로 본다. 저자는 애초에 돈을 빌려주는 신용등급도 금융사들이 결정하는 데다, 상환능력이 부족해도 담보를 취하면 된다는 식의 약탈적 대출을 해주는 환경에서 그런 비판이 정당한가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에 투자를 했다가 손해 본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투자 행위는 그 사람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관계 또한 투자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기업에 내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기업의 낙관적 미래와 수익성을 보고 내가 판단해 내가 돈을 낸다. 이 관계가 대출에서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측은 이자 수익, 원금 상환, 그게 안 되었을 경우 담보 취득이라는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런 뒤에 돈을 빌려주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니 대출 역시 투자처럼 돈을 빌린 쪽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려주는 쪽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적자면 이 책의 저자는 대출 자체를 부정하거나 나쁘다고만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돈을 쥐고 있는 금융회사 쪽에 유리한 환경이고, 일반인들은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다. 정보력의 차원에서도 그러하고, 상대하는 사람의 수나 전문성에서도 그러하다. 게다가 원금회수나 이자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대출은 잘 해주려 하지 않는다. 책에서 언급된 햇살론처럼 경계적 취약계층의 대출은 받기가 어렵다. 이 책은 2012년이라는 과거에 쓰였지만, 2024년의 우리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서민들의 생계형 대출이 얼마나 받기 어려웠는지 잘 알고 있다.     

 

 신용등급 평가와 대출 결정권을 쥔 금융회사와 대출을 받는 일반인의 관계를 동등하게 보는 게 맞는가? 그리고 이 관계에서 돈을 빌린 쪽의 책임만을 묻는 것이 정당한가? 저자는 아니라고 주장하며 하나씩 근거를 소개해 나간다. 

 하지만 이 책에도 맹점은 있다. 2012년에 작성되어 현재 시점과 맞지 않는 내용이 존재할 거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주장하는 바의 맥락은 지금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대출을 부추기는 사회의 풍토, 우리의 욕망은 누구의 것인지, 저축은행 사태에 관한 이야기와 사회적 금융망의 핵심인 은행들이 배당을 주는 주식회사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합당한가 등 다양한 논의를 풀어놓는다.      


 개인적으로는 신용카드에 대한 주장이 흥미로웠다. 국가적 화폐가 되어버린 신용카드에 대해 어느 정도 개입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대기업과 소상공 사이에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카드 수수료 문제는 각종 온라인 페이가 성장하는 현재에도 생각해 볼 거리를 준다.      


 그리고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쟁을 통한 효율을 더욱 중시하는 풍토가 강해졌고, 그 결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는 저자의 분석이 흥미로웠다. 더불어 한국의 재테크는 IMF 이후 안정적인 직장이 사라지면서 등장했다는 지적도 눈길을 끌었다.      


 그 이유는 재테크를 바라보는 내 시각과도 연관이 있다. 우리는 흔히 ‘월급 빼고 모든 게 오른다’며 자조 섞인 농담(실은 진담인)을 한다. 회사는 계속 성장하는데 내 월급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건 실제로 받고 있는 돈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말은 회사가 벌어들인 돈이 이전처럼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시야를 한국 전체로 확장시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제 성장이 이전과 비슷하거나 상승했는데 내 수익이 줄고 있다는 것은 이 나라가 벌어들이는 돈이 이전보다 불공정하게 나뉘고 있다는 뜻이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진 요즘, 많은 사람들이 타개책으로 재테크를 선택한다. 얼마나 재테크를 공부해서 거기에 얼마를 투자할지는 각자가 결정할 문제이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에 따라 재테크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은 불공정한 배분으로 수익이 줄어든 문제를 사회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기도 하다. 책에도 소개되었듯이 (그리고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언론은 재테크에 성공한 극히 소수의 사례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숱하게 널려있는 실패 사례들에는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우리의 욕망을 만들고 부채질한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면은 있다. 내가 부동산이나 주식에 뛰어들었을 때 손해를 보지 않는 방법은 이 시장에 추가적으로 계속 돈이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만 전체 파이가 커지면서 내가 투자했을 때보다 가치가 상승할 테니까. 그래야 손해를 보지 않고 수익을 거둘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재테크에 이미 손을 댄 이들은 낙관적 기대감을 부추기면서 새로운 사람을 계속 유입시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재테크라는 해결책 이전에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을 먼저 가져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정당한 문제인가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부당한 대출의 결과는 개인뿐만이 아니라 금융회사도 함께 져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어쩌면 금융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 심사숙고해 봐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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