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근 후의 서재 Mar 20. 2024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아도 읽어보세요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 - 일자 샌드

 우리는 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타인의 평가를 받게 되어있다. 외모부터 성격, 능력, 나의 행동에 대한 것까지 다방면에 걸쳐있다.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거울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인식하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부당한 지적, 왜곡된 평가, 상대의 의도적인 악평이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일그러뜨린다. 일그러진 자화상은 낮은 자존감, 혹은 자신에 대한 엄격한 잣대와 자책감을 낳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해지기도 한다.      


 일자 샌드의 또 다른 저서인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는 자신에게 너무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스스로 가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분명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일 것이다.      


 저자에 대한 애정은 이미 앞서서 고백한 바 있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남기려고 한다. 베스트셀러인 <센서티브>라는 책으로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대중에 알린 그녀는 덴마크 출신의 목사이자 심리상담가이다. 그녀의 책은 대체로 분량이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독성이 좋고 쉽지만, 굉장히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동일선상에서 본다. 그리고 죄책감을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으로 나눈다. 합리적 죄책감은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행동을 교정하고, 그 사람의 성장에 영양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비합리적인 죄책감이 문제일 것이다. 이 둘의 구분은 원인이 된 사건에 자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나뉜다. 
 예를 들어 피크닉 날짜를 내가 결정했는데 그날 비가 왔다고 치자. 이 상황에서 괜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동양, 특히 한국에서는 나의 선택으로 사람들이 난처해졌다는 점 때문에 편치 못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일자 샌드는 비가 오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이 느끼는 죄책감은 비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이 비합리적인 죄책감을 다루는 여러 가지 방법을 책에서는 이야기하는데, 그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비합리적인 죄책감을 발견했으면 이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따지고 나눠보라고 한다. 그 목록을 만들고, 원형 그래프, 혹은 100퍼센트의 지분으로 각각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는지 나눠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몫에 내 이름을 적고 나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의 책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업은 심리 치료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기법이다. 특히나 비합리적인 평가나 비합리적인 책임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생각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내비칠 때 사용한다. 일자 샌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죄책감을 나누어서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일상에서 지치는 사람들은 이 비합리적인 죄책감이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비합리적인 죄책감을 발견하고, 실은 내 몫이 그리 크지 않았음을 깨달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저자는 힘든 일이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당장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도 말한다. 버거운 상황에서는 그 행동이 도리어 독이 될 수도 있다. 부정적 생각에 빠져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우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면 나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 발단은 나에게 책임이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경우다. 이럴 때 우리는 어디까지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할까? 어디까지가 내 몫이라고 해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약간의 힌트를 덧붙이자면, 합리적인 서구식 사고가 반영된 결론이고 개인적으로는 그 생각에 동의한다.      


 책에는 퇴행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퇴행은 과거의 발달 단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힘든 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유아기 때처럼 떼쓰거나 어린아이처럼 우는 것은 퇴행의 흔한 예다. 보통 책들은 퇴행에 대해 설명만 하지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퇴행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시련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도록 재충전하는 일종의 돌봄이라는 것이다. 다만 퇴행에 빨리 빠져나와 나에게 필요한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문제이다. 


 우리 주변에는 뭐든지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대해 책에서는 ‘피해자 역할에 갇힌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은 남에게 피해만 본 억울한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피해자 역할이 되는 것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퇴행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피해자 역할에 갇힌 사람이 친구나 가족이라면 그들이 퇴행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상대가 불평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지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생산적이다. 하지만 상대가 피해자 역할에 머물고자 할 수도 있다. 저자는 상대가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 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자신을 돌보는 일에 힘쓰라고 말한다. 냉정해 보이지만 합리적인 조언이다. 내가 일자 샌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지니고 있으나 상담가로서 끊어야 할 부분에서는 정확하게 끊을 줄 알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도 그러한 태도에서 쓰였다.      



 책은 이렇게 자신의 죄책감을 잘 다루기 위한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제목이다. ‘나는 자신에게 가혹하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책을 지나쳐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혹하든 가혹하지 않든 당신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상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 주변에는 당신과 다르게 죄책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잘 살기 위해, 그리고 당신 주변과 잘 어울려 살기 위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의 내면을 돌보기 위한 시행착오가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좀 더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그 후는 과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