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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 후의 서재 May 23. 2024

모른 척 지나치지 말고 애도할 것

<애도의 기술> - 박우란


 박우란이라는 정신분석가를 처음 보았던 건 유튜브 채널이었다. 웃음을 목적으로 한 그 방송에서 그녀는 몇 마디 하지 못하고 겉도는 존재였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미디어는 보통 심리상담가에게 점쟁이나 탐정 같은 역할을 요구한다. 특정 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식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한 심리상담가는 탐색자에 가깝다. 누군가의 마음을 섣불리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심이 무엇인지 함께 탐색하는 사람이다. 도리어 앞서 나가서 추측했다가는 상대(내담자)와의 신뢰 관계가 깨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런 일회성 방송에서 함부로 입을 열기보다는 원칙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말을 좀 더 자세하게 듣게 된 것은 그녀의 다른 영상을 찾아낸 알고리즘 덕이었다. 그 영상에는 ‘애도’라는 단어가 달려있었고, 나는 관심을 갖고 클릭하였다. 그리고 영상에서 쏟아내는 (이전 영상과는 다른) 아주 자연스럽고 풍성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 사람이 상담가 혹은 정신분석가로서 아주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책을 찾아보기로 했고, 가장 최근에 발간된 것이 오늘 리뷰하는 <애도의 기술>이다. 



  ‘애도되지 못한 감정들은 반드시 회귀한다.’ -64p에 등장하는 프로이트의 말. 



 이 책은 우리에게 내재된 감정, 혹은 경험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애도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그녀가 상담했던 사례들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이다. 모든 목차는 ‘애도’라는 단어로 통합되어 있지만 상실이나 슬픔, 분노, 내가 몰랐던 나 자신 등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대체로 담고 있다. 


 박우란은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녀는 스스로 밝히듯 젊은 시절을 수도원에서 보냈다. 종교계에 10년간 몸을 담았다가 그곳을 나와 상담가가 되었다. 

 앞서서 그녀에게 심리상담가가 아니라 정신분석가라는 호칭을 붙였는데, 정신분석가는 심리상담의 여러 학파 중 프로이트 계열을 중점으로 공부한 사람들에게 붙는 이름으로 알고 있다. (참고로 이는 정신과 의사들이 주로 공부하는 분야다.) 그녀는 수도원을 나와 상담가가 되는 과정에서 정신분석을 주로 공부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보이는 약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녀의 이 이력과 연관이 있는데, 혹시나 우려했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녀가 종교 편향적인 색채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울지마, 톤즈> 같은 영화가 언급되기도 하고 그녀의 과거사가 등장하는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사례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에 종교가 개입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은 그녀가 주로 공부했던 정신분석이란 학문이다. 그녀는 책에서 프로이트가 주창했던 여러 가지 이론과 어휘들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리비도(성적 에너지)라던가, 억압이라던가, 정신분석(프로이트는 상담의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다)이라는 말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인 정신분석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사례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정신분석의 용어들을 사용하다 보니 그 논리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에게는 와닿지 않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의 몸과 정신을 아우르는 에너지의 핵심인 리비도가 대상으로 옮겨지거나 순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순환하지 못한 모든 에너지는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 -71p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리비도의 집중이 다른 곳으로 향한다는 뜻이었지요.’ -27p


 

 이런 문장들을 보면 정신분석에 무지한 사람들도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문장을 다듬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한 분야에 오래 몸을 담고 있다 보면 거기에 함몰되어 다른 사람들의 언어체계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전문가 집단이 쉽게 주고받는 표현이나 어휘를 일반 대중을 상대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실수가 나타나곤 하는데, 이 책에도 그러한 실수가 엿보인다. 편집자와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에는 곳곳에 오타도 많이 보이는데, 이 점에서도 편집의 역할이 아쉽다.)


 그리고 또 다른 약점은 그녀의 분석과 글이 가끔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문장을 읽었어도 단번에 이해되지 않고 무슨 말인지 정확히 와닿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저자의 추상적인 글쓰기 때문이다. 이 점도 함께 교정되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매번 저자가 직접 분석했던 사례들이 다뤄진다. 하지만 그것이 자세히 다뤄지는 편은 아니다. 그 사례의 분석과 결과를 소개한다기보다는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사례의 일부를 끌어오는 방식이다 보니 책에서 다뤄진 사례에 대해 궁금증이 남는 독자도 많을 것 같다. 혹은 상담의 과정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독자에게도 적합하지 않은 책이다. 

 

 계속 아쉬운 점들만 나열한 것 같은데, 이 책에서 좋았던 것들도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진짜 나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자기 이해를 위해 지난한 노력과 힘을 들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범람하는 지식에 자신을 끼워 맞춰 “아, 나는 그렇구나” 하고 넘기지 않고, 자신을 붙들고 끝까지 이해하려는 노력과 사투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11p 


 서문에 쓰인 이 문장은 특히나 공감했던 내용이다. 요즘엔 나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MBTI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틀로 조금이나마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맹신하지 말고 사람의 다양성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자신을 계속 찾아나갔으면 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 책에는 눈여겨볼 만한 사례 설명이 등장하는데, 412페이지에 등장하는 '마음껏 애도할 권리'의 에피소드다. 사례에서 중학생 동갑내기 친구의 죽음을 쉬쉬한 어른들의 행태에 대해 그것이 왜 좋지 않은지를 저자가 설명한 대목이 좋았다. 저자는 '죽음과 상실을 애도할 기회를 빼앗긴 데서 오는 혼란과 고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라고 적는다. 우리는 흔히 어린 아이들이 죽음과 같은 커다란 사건을 직면했을 때 그것을 감추고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저자가 적은 것처럼 죽음과 상실이 무엇인지 배우고 그것을 애도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된다. 아이의 잘못을 나무라지 않고 지나치게 보호만 하면 그 아이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애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감정과 경험은 모른 척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내 삶에 다른 형태로 튀어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해서 무엇이 애도되지 않았는지를 찾고, 지금이나마 진정한 애도를 통해 거기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 위의 사례에서 저자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쉬쉬하는 것이 아니라, 애도의 과정에서 충격을 받았다면 어른들이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는데 적극 동의하는 바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후반에 다뤄졌던 그녀의 문장을 남긴다. 이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기만의 생각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녀의 문장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되길 바란다. 


 ‘정신분석은 내가 아닌 나를 걷어내는 작업이고 그렇게 걷어내다 보면 종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내 삶의 의미를 갖게 할 무엇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대단한 의미를 가진 무엇을 찾아내는 것 또한 상상적 판타지입니다. 지극히 사소하고 하찮은 무엇이라도 그것을 내 삶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고 ‘진짜가 되도록 만드는 노동’이 존재할 뿐입니다.’ -2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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