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시절,
남편이 탄 퇴근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되면 나는 평강상회 앞 버스정류장으로 남편을 마중 나갔다.
사람들로 꽉 찬 버스 몇 대를 보내면 어느새 버스 창문에 얼굴을 대고 씩~ 웃고 있는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남편은 대기업에서 설계 도면을 그렸는데 연필가루로 더러워진 한쪽 팔을 늘 걷고 다녔기에 멀리서도 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그의 호주머니 속에 내 손을 찔러 넣고 매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이 행복했다.
“저기요, 새댁. 새댁.”
어둑어둑한 골목길 한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행상을 하는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네? 저요?"
왜소한 체격의 할머니는 쌀을 수북하게 담은 바가지를 우리 부부 앞에 내밀었다.
"새댁이 이거 사가요."
요즘 사람들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결혼 후에 나는 봉지 쌀을 사 먹기도 했었다. 쌀을 사러 가는 일은 별거 아니었으나, 봉지를 들고 오다가 아는 사람들이라도 만나면 어쩌나 싶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집으로 왔었다.
‘아직 집에 쌀이 남아 있긴 한데... 조금 더 사둘까? 돈이… 어쩌지?’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착한 남편이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할머니 이거 다 주세요. 제가 살게요.”
“그래요. 이거 정말 귀한 거예요~”
누런 종이봉투에 담긴 쌀을 가슴에 품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황금색 겨와 뽀얀 쌀이 섞여 있었다. 남편과 마주 보며 이걸 어쩌나 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이것이 엄마가 꾼 나의 태몽이다.
며칠 전 엄마의 옛 추억을 끄집어내다가 나온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넌 태몽이 특별히 좋아서 재복도 있을 거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태몽이라고 하면 환한 달이 품에 안는다던가, 예쁜 복숭아를 따서 집으로 왔다던가 그럴듯한 꿈들도 많이 꾸던데 '쌀'이라니… 그것도 길거리에서 파는 겨와 쌀이 섞인… 태몽치고는 너무 시시한 거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얘 봐라, 쌀이 얼마나 귀했는데….”
꿈보다 해몽이라고 엄마는 그 이후로도 이렇게 좋은 꿈은 꾼 적이 없다며,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미신 같은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다.
어찌 됐건 나는 대한민국 구전에서 빠질 수 없는 삼신 할매가 콕 찍어 점지해 줬다고 믿는 아빠, 엄마의 첫 딸로 태어나 48년째 마음의 부자로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만 언젠가 이루어질 예지몽(?)도 기대해 보고 싶어졌다.
‘엄마의 태몽대로 될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