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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탑방이주민 Mar 14. 2023

한국어 교사의 특권(?)

저는 파리 한국어 교사입니다_문화


    ‘콜롬비아, 나이지리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페루, 에콰도르, 말리, 수단,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티베트, 알제리, 코모로, 튀니지, 감비, 기네, 프랑스, 한국’


    월말에 있을 각자 자신의 나라 음식을 가져와 나누는 ‘세계의 음식Repas du monde’ 행사. 이 행사를 설명하며 마리가 칠판에 학생들의 본국을 적는다. 마리는 이주 청소년을 위한 프랑스어 특별학급 담임교사이다. 논문을 위해 매주 참관하는 파리의 한 고등학교 프랑스어 특별학급 unités pédagogiques pour élèves allophones arrivants (UPE2A).  프랑스어 특별학급은 프랑스에 처음 도착한 학생들이 일반 학급 배정을 받기 전 약 1년간 프랑스어 집중교육을 받는 곳으로 공립학교 내에 설치되어 있다. 한국에 중도입국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 설치된 ‘한국어 학급’과 비슷한 모델이다.


마리는 맨 뒤에 앉은 내게 눈길을 보내며 ‘한국 음식도 맛볼 수 있겠네’ 하고는 마지막으로 ‘한국’을 추가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몰도바에서 온 막심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다. 평소에 말없기로 유명한 막심이 입을 뗀다. ‘선생님, 보드카 가져와도 돼요?’ 교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본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한 학생들도 많지만, 이주 2세대, 즉 가족들은 타국에서 왔지만 자신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학생들 또한 많다. 2020년 기준 프랑스 전체 인구의 12%, 약 7백5십만 명 정도가 이에 해당하며, 자기 자신이 이주 1세대(9%)인 사람들과 이주 3세대(10%) 인구까지 합하면 최소 30%가 넘는다. 그 이상의 세대까지 포함하면 수는 더 커질 것이다.




    프랑스 전체 인구 10명 중 최소 3명은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다 보니, 당연히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한국어 수업 현장도 다채로워진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과 한국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항상 시끌시끌한 바바라가 그날따라 조용했다. 심지어 초조해 보이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브라질 사람이어서 빨리 축구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브라질이 당연히 이긴다는 학생들과 한국이 이길지도 모른다는 의견들과 나름의 근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Final은 한국어로 뭘까요?”

 (갑작스러운 침묵)

“우리는 모두 알고 있어요. 자, 보자”


그렇게 ‘결승전’, 승리를 결정하는 싸움이라는 어휘를 제시하고, 이어 16강에 진출한 국가들의 이름부터 월드컵과 관련된 다양한 어휘들을 (갑자기) 공부했다. 이렇게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이주배경을 보여주는 학생들을 보는 것은 여전히 신기하다. 한국어 수업에 있어 학생들의 다양성은 언어 교육의 외연을 넓혀준다. 한국어라는 언어로 자신을 담아내기 위해선 그만큼 다양한 표현과 어휘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프랑스의 한 강의실에서 한국어 교육은 ‘물건 사기’, ‘교통수단’을 넘어 교육이 이루어지는 개인과 사회에 닿게 된다.


    학생들과의 소통 경로가 말이 아닌 ‘글’이 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작문>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짧은 수업 시간 동안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글로 안겨준다. 지난주 한국어 작문 수업의 주제는 ‘식사 예절’. 과제로 각자가 소개하고픈 식사 예절을 써 왔다. 스페인, 콩고, 우즈베키스탄, 이라크… 또 ‘여행’을 주제로 한 수업에서 누리아는 매 여름 간다는 알제리의 할머니집 이야기를 해주고, 아나이스는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의 풍경에 대해 들려준다. 다양한 나라를 한국어를 통해 접하는 시간은 몇 해가 지나도 생경하고 즐거운데, 이것이 한국어 교사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세계의 음식’ 행사에 어떤 음식을 해갈까 고민한다. 행사가 라마단 기간에 열려 긴 공복 후에 식사하게 될 무슬림 학생들을 위해 자극적인 음식은 제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음식이 많을 테니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가 볼까? 메로나? 먹기 힘들 수도 있으니 안전한 뽕따?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음식을 맛볼 생각을 하니 벌써 허기가 진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프랑스어로 자신의 음식을 소개할 학생들의 얼굴도 상상해 본다. 잘 듣고 한국어 수업에 가서 아는 척해야지. ‘유세프, 그때 말해준 음식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더라!’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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