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파리 한국어 교사입니다_문화
얼마 전부터 출강하게 된 파리 인근의 한 고등학교 한국어 수업에서 최근 한글을 떼고 1과에 들어섰다. 많은 한국어 교육 교과서들의 1과는 ‘자기 소개’로 시작한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무엇을 묻는 질문일까요?"
"Nos origines (our origins) ?"
Nos origines. 오리진. 불어에서 한국어로 옮기기 가장 어려운 어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번역을 시도한다면 ‘출신/태생’ 정도. ‘자기 소개’ 단원에는 나라와 관련된 어휘들이 제시되는데, 이때 한국을 중심으로 가까운 아시아 국가들 (중국, 일본 등)을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나라명이 나온다.
지구에 존재하는 약 200개 국가들 중 어떤 기준으로 교과서에 제시되는 나라들이 선정되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1과를 수업 할때마다 항상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과연 이 국가들이 가장 필요한 어휘들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국가명을 직접 선정하게 했다. 프랑스어로 된 세계 지도를 나누어 주고,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한’ 나라를 10개씩 찾아보고 발표해본다.
이 활동의 두 번째 학습적 의도는 아직 한글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ㄱ’과 ‘ㄴ’등 비슷하게 생긴 철자를 헷갈려 하는 학생들이 아직 많은데, 한국어에서 외국 국가명을 영어에서 그대로 가져와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알파벳과 한글을 대응하며 한글을 확실하게 익히게 하고자 했다. (예를 들면, 프랑스France의 경우 ‘F-ㅍ’, ‘R-ㄹ’, ‘C-ㅅ’처럼). 그리고, 그 결과!
"스테판, ‘캄보디아’를 찾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네, 제 오리진은 캄보디아와 중국이기 때문이에요."
학생들은 예상보다 더 다양한 국가들을 찾았다. 동아시아, 북아메리카, 서유럽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나라들이 칠판에 적혔다. 스테판 이외에도 씨암은 ‘그리스’를 찾은 이유로 그리스를 좋아하고 곧 그곳으로 여행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또, 클로에는 자신은 과달루프 사람이라며 그래서 과달루프를 찾았다고. 처음으로 1과 자기소개에서 미국, 영국을 넘어 코트디부아르, 알제리, 말레이시아를 더 많이 사용한 수업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다양한 ‘자기’ 소개를 할 수 있었다.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의사소통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사소통의 내용은 나와 청자와 관련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외국어로서든 모국어로서든 ‘언어’란 자고로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언어를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습자들이 자신의 삶에 닿아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한국어를 배우게 된다면 그만큼 더 학습 동기와 애정(?) 또한 커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