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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eal Jun 21. 2024

플라타너스

당연하게 여겨온 사랑에 대하여

나는 요즘 카페에서 일해요. 집 앞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인 작은 카페. 일하다 보면, “지금 내가 이럴 때인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졸업까지 한 학기를 앞두고 미래 설계가 아닌 다른 곳에 힘을 쏟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에요. 괜찮아요, 이 근심 곱게 접어두었어요. 저는 시간을 허투루 쓰는 중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수제 레몬에이드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걸요.


저는 변수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싫어합니다.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버스 도착 예정 시간보다 10분 일찍 나가는 편이에요. 그거 아세요? 올 6월은 역대 가장 무더운 6월이래요. 때문에 제 10분의 기다림이 이제는 고난이 되었죠. 이 또한 괜찮아요. 정류장에는 작은 벤치와 그늘이 있어요. 이 더위가 아니었다면 마음에 들이지 않았을 그늘이 있답니다.


가로수에 정말 많은 배려가 담겨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우리에게 더욱 촘촘한 그늘을 선물하기 위해 잎이 커다라야 하고, 시야를 가리면 안 되니 높아야 하고, 관리의 편리를 위해 강인해야 하며, 그 역할을 오래도록 수행하기 위해 수명이 길어야 합니다.


한 번이라도, 이에 고마워하셨나요? 그 우직함을 헤아린 적이 있으신가요?

부끄럽지만, 이름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스쳐간 존재들과, 지금 제 기다림을 감싸주는 그늘의 이름을요. 그 이름은 플라타너스랍니다.


플라타너스는 지금껏 제 10분만을 감싸왔습니다. 지금은 깨달음을 주어 제 자신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욕심이 솟아 제 앞날의 태도에도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면 하네요.


돌이켜 보니, 당연한 것은 없었어요. 아팠던 사랑도, 서투른 사랑도. 그 어디에도 당연함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충 뒤집어 벗어둔 양말이 보송한 채로 서랍에 담기는 것도, 상 다리가 무너질 듯 반찬이 놓이는 것도. 단호한 목소리로 꾸짖어도 속으로 눈물을 삼켰겠죠. 제가 매번 투정하는 그 한강라면을 끓일 때에도, 제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떠올리며 물이 끓어오르길 기다렸겠죠. 엄마의 라면은 물이 많아 그 시간이 더욱 길었겠네요.


지난겨울, 친구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때의 제 다짐은 봄이 되어 잊혔었네요. 여름은 또 다른 친구 어머니의 부고 소식과 함께 찾아와 제 다짐을 상기시키네요. 고마움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게 당연한 걸까요. 다가올 계절이 제 마음을 또다시 환기시킬까 걱정이 됩니다. 친구들은 어떤 심정으로 기억을 돌이켜보고 있을까요. 플라타너스가 오래도록 제 안에 뿌리내리길, 욕심이 더욱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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