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기록과 축하
이 적막이 싫어졌다. 어둑한 밤의 무게, 고요한 새벽의 향기를 좋아했었던 나는 온데간데없다. 찾아올 아침을 향해 웅크리던 새벽에 감동하던 나는 죽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온갖 소음을 허락한다. 바구니에 반쯤 차오른 빨래를 돌린다. 또 찾아온 삭막함을 달래기 위해. 선반 위에 쌓인 위스키를 한병 집는다. 향도, 맛도 개이치 않고 그저 들이킨다. 각기 각색의 술도 결국 똑같은 씁쓸함을 띤다.
나는 비가 싫어졌다. 여름날에 흩날리던 비는 내 세상을 앗아갔다. 버스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빗물은 그 조차도 흐려 허락치 않았다. 많이도 울었다. 여름날을 그렇게 보냈다. 다가올 겨울마저 그럴까 두렵다.
눈길을 둘 곳이 필요했다. 내 슬픔에 동요하지 않을 정도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식물을 키웠다.
늦은 여름의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창을 열고 식물을 내놓았다. 햇빛을 잔뜩 머금은 모습을 감상했다.
나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같은 자리와 같은 사람들, 반복되는 업무. 창 밖은 온통 잿빛이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소리와 쏟아지는 비.
일은 뒤로한 채 집으로 향했다. 툭 치면 터져 나올 거 같은 설움을 간신히 참으며 달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화분에는 빗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뿌리가 드러났다. 집 안으로 들이친 흙탕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제발 머무르길 바랐다. 어떻게든 살길 바랐다. 이 작은 생명 하나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시간이 흐르고, 그 작은 화분은 무성한 녹색으로 가득 찼다. 작은 식물은 거센 소나기조차도 품었다. 무너지지 않고 더욱 자라났다. 이에 감사를 표했다. 너라도 지켜낸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방황이 길어지고 있다. 다가오는 수많은 선택지에서 나는 선택을 포기하고 있다. 위로를 바라며 내 어지러움을 늘어놓는다.
"이대로 살면 행복할까? 너무 늦은 때에 가슴 뛰는 일을 찾으면 어쩌지? 그때가 책임이 필요한 때라면..."
"원한다면 하면 되지.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응원하지 않을까."
그 말을 이해하고는 하염없이 슬펐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나의 설렘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의 길을 응원하지 못했다. 나는 참으로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감히 사랑을 했다.
20여 년 전의 오늘에서 출발한 기적이 있다. 그리고 비가 내리던 어느 5월 내게 닿았다. 그 기적을 나는 용케도 품었었다. 여전히, 어김없이 그 기적을 하늘에 그린다. 언제나, 끝까지 기적일 것이다. 순수하게 깜빡이는 빛은 어느새 반짝일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의 행운이 되어, 모두에게 사랑을 건네며.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부디 전하고 싶다. 같은 날에 비를 맞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그날의 비는 내게 축복이었다고. 함께 좇던 은하수는 영원히 흩뿌려져 있다고. 오늘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축하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