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후반, 나는 대학 대신 간호조무사의 길을 택했다.
친구들보다 먼저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한 나의 선택이었다.
학원에서 6개월간의 이론 교육을 마치고, ‘국립소록나병원’으로 실습을 떠나던 날,
난생처음 ‘섬’이라는 세상과 마주했다.
순천 터미널에서 선생님과 열두 명의 실습생이 녹동행 버스에 올랐다.
비포장 도로를 4~5시간 달리는 동안, 김치와 반찬 냄새가 뒤섞인 차 안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다. 녹동 터미널에 도착한 뒤, 배를 갈아탔다.
나룻배는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짧은 5분이었지만, 파도는 배를 흔들었고, 물방울이 얼굴을 스치며 나를 놀리는 듯했다.
덜컥 겁이 났다. ‘과연, 내가 이곳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당시 소록도에 들어서려면 세 개의 검문소를 지나야 했다.
걸음을 재촉하던 선생님은 거듭 당부하셨다.
“환자를 봐도 절대 놀라지 말고, 규칙을 어기는 행동은 하지 마라.”
하지만 병원 안에서 처음 마주한 환자의 모습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한쪽 다리로 크러치를 짚고 서 있던 분,
양팔과 양다리가 없이 침상에 누워 있던 분,
입술이 아래로 늘어진 채, 손으로 그 입술을 자꾸 밀어 올리던 분….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선생님이 가실 때, ‘나도 따라 나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가슴이 답답해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병원 앞 공원으로 나가 바람을 쐬었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비석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나병은 낫는다.”
천벌처럼 여겨졌던 나병, 잔혹한 낙인의 시간 속에서도
그 문장은 희망처럼 내 마음을 붙잡았다.
공원에는 남쪽 하늘 끝을 향해 반짝이는 향나무 줄기와 햇살이 조용히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다음 날, 나는 주사실에 배치되었다.
담당 간호사님은 실습생인 나에게 직접 주사를 놓으라고 지시했다.
겁에 질린 나는
“죄송합니다. 조금 더 배우고 다음에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돌아온 것은 단호한 고갯짓뿐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의료현장은 인력 부족으로 실습생에게도 직접 경험을 요구했다.
가슴뿐 아니라 손까지 떨려서 머뭇거리고 있자, 환자분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감각이 없어요. 아무리 찔러도 아프지 않으니 걱정 말고 어서 해보세요.”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아, 손을 떼지 못했다.
낯선 실습생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그분의 모습은, 내게 성인의 희생처럼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사기를 들었다.
두 번이나 혈관을 찾지 못했다.
무섭고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괜찮다며 다시 다른 손목을 내미는 그분의 다정한 목소리는 내 삶의 첫 용기가 되었고,
내 마음에 감사의 씨앗이 조용히 뿌리내렸다.
오후가 되면 담당 간호사님을 따라 마을을 돌며 환자분들 집을 방문했다.
집집마다 찾아가 약을 챙겨 드리고, 복용 방법을 알려드리며 건강 상태를 기록했다.
환자분들과 마주 앉아 눈을 맞추는 시간은,
단순한 업무를 넘어 배려와 감사를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손목에 호미를 묶어 잡초를 뽑던 그 지극한 정성,
혹시 병이 옮을까 신문지에 여러 겹 싸서 조심스레 건네주던 껌 한 통…
질병의 전염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랑을 전하고자 했던 그 순정과 감사의 표현
내 안에 눈물샘을 열고, 산울림처럼 오래 맴도는 여운을 새겼다.
새벽이면 교회와 성당에서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손바닥 없어진 뭉뚝한 손목으로 힘차게 박수를 치는 소리.
그 울림은 집안 형편 탓에 마음껏 꿈을 펼치지 못해 굳어버린 내 마음을
흔들어 깨우며, 활화산 같은 불길을 지폈다."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소록도에 들어온 그는
유배지 같은 이곳을 수없이 벗어나려 했다.
탈출을 꿈꾸고, 절망 끝에 생을 놓으려는 시도도 했지만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은 내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나는 결심했다.
'어떤 절망 앞에서도, 내 마음속 작은 불꽃같은 꿈을 꺾지 않겠다.'
비록 짧은 실습 기간이었지만, 소록도는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엄마 없는 설움도,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도…
그분들의 고통 앞에서는 부끄러운 투정일 뿐이었다
환자분들의 감사하는 마음과 서로를 돕는 모습은 내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배웠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삶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희망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게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소록도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삶은 포기할 수 없는 선물’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배움은 단순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실습이 끝난 뒤 자격증을 취득하고, 여수 애양재활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것도,
소록도에서의 그 따뜻하고 담대한 삶의 경험이 나의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