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속에서 더 나다워지기를 3

김필을 들은 시간 3부 ‘감사’

by 홍연서




그가 쓰고 불러준 노래들은

내게 와서

세상과 나 자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결이 되어주었다.








(2부에 이어서)


보석의 비밀


(김필의 가사) 6

답답한 청춘의 노랠 매일 불러봐도
모두가 당연히 그것만 바라보네
증명하는 시간은 곧 지겨워져
별 감정 없이 누구의 마음에 드는 일도

누구라도 좋으니 내 얘길 좀 들어줘
I want to find Want to find myself
누구라도 좋으니 내 진실을 물어봐 줘
I want to find Want to find myself

- 김필, <결핍>, 정규 《yours, sincerely》(2019)


https://youtu.be/ausj5b8WhFs?t=8 김필, <결핍> (김필 유튜브 채널 음원)

https://youtu.be/3E1smepibmY 김필, <결핍>, 2020 (김필 유튜브 채널 라이브 영상)

https://youtu.be/TS6VFMt5O-w?t=754 김필, <결핍>, '스페이스 공감', EBS, 2020


애초에 내 나름대로라도 답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물음이 있었다.

‘김필의 목소리는 왜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가’이다.


대중이 김필을 기억하고 그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청춘>으로 대표되는 커버곡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였다. (23년 6월 현재, 사람들이 김필에게 가장 환호하는 세 곡은 <그때 그 아인>('이태원 클라쓰' OST), <다시 사랑한다면>(원곡 도원경), <청춘>(원곡 산울림, '응답하라 1988' OST)이다.)


https://youtu.be/zYjjqrNzqt4 김필, <그때 그 아인>&<청춘>&<얼음요새>&<다시 사랑한다면> 외, '킬링 보이스', 딩고뮤직, 2021


나는 사람들이 그저 잘생긴 사람에게 반하듯 그의 좋은 목소리에 반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거기엔 뾰족한 답이 있을 수 없었다. 내가 김필이라면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목소리라는 '겉모습'에만 열광하고 자신의 내면인 ‘이야기’나 ‘진실’에는 무관심한 것 같아 속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김필의 ‘목소리’는 그저 특정한 생김새를 가진 소리이기만 한 걸까? 어떤 사람이 김필과 똑같은 음성을 가졌다면, 우리가 김필에게서 느끼는 것을 그 사람에게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우리가 김필의 ‘목소리’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김필의 목소리에 표현된 그의 ‘마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필이 어떤 노래를 부르든 그가 가진 고통과 슬픔, 후회와 안타까움, 자기다움과 꿈에 대한 갈망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일 테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일 거다. 다만, 어떤 이해의 과정 없이 그의 마음을 순식간에 느끼게 되기 때문에 그저 김필의 ‘목소리가 좋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김필의 마음은 고통과 슬픔을 덮으려 하지 않고 예민하게 느끼려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려는 습성이 있고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된다. 김필을 들을 때 우리는 그를 따라서 세상을 보다 예민하게 느끼려 할 것이고 동시에 그가 느낀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범위는 평소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넓어질 것이고, 그 넓어진 감정의 범위 안으로 그간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들이 흘러들어올 것이다.


‘김필의 목소리는 왜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가’에 대해 내가 찾은 답은,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이 외면해왔던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픔을 구석에 몰아두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가져와 제대로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끌리게 되는 것 아닐까. 내가 아프던 날 김필의 목소리가 떠오르고, 그 이후의 시간들 속에서 김필을 계속 들었던 이유도 내 고통과 불안한 현실을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위로와 기대


김필은 자신의 음악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 같다. 그렇다. 그가 쓰고 불러준 노래들은 내게 와서 세상과 나 자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결이 되어주었다. 노래를 만든 사람이 노래에 담아놓은 어떤 감정, 어떤 상황, 어떤 질문, 어떤 이해, 어떤 의미 부여는 듣는 사람에게 와서 그가 삶을 보고 이해하는 하나의 시각이 되어준다.


김필이 앞으로 쓸 곡들도 내게 그런 힘이 되어주겠지만,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줄 것은 아마도 그가 음악을 계속해나가는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음악시장은 앞으로도 차트와 스타 중심으로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김필도 그 안에서 자기다움을 지키며 자기만의 속도로 흘러갈 것이다. 그가 크고 작은 모순들 속에서도 계속 나아가는 모습이야말로 내가 가장 받고 싶은 위로다.


한편, 싱어-송라이터가 곡을 쓴다는 것은 그 당시의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쓴 곡들을 계속해서 부르게 되는 그들은, 노래를 거듭할 때마다 이전에 던져놓은 질문에 답을 이어가는 것 아닐까? 김필이 고통스럽고 슬프고 외롭다고 느낀 감정들, 현실에 저항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 현상들에 대해서 쓴 것은,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차차 이해하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고 싶어 던진 질문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자기만의 답을 찾았을 때, 모든 걸 대중에게 말해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인식한 것 중 글이 되는 것은 일부이고, 글이 된 것 중 가사가 되는 것은 또 일부, 그중에서 발표되는 것은 또 일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라는 사람, 그라는 세계에서 우리에게 올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겠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것은 아닐 것이다. 빙산의 일각은 빙산 전체의 성질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의 음악 안에서 우리는 그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음악은 그의 특별한 조각이니까.


그가 음악 활동을 해나갈수록,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자기다워지길 바라본다.




변한다는 것


(김필의 가사) 7

왜 사람들은 변할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던 물음들
난 매일 괜찮아야 하는 이
나 때문에 누가 다칠까 늘 걱정하는 이

- 김필, <Black>, 정규 《yours, sincerely》(2019)


https://youtu.be/8-TlnWWHvCY 김필, <Black> (김필 유튜브 채널 음원)

https://youtu.be/TS6VFMt5O-w?t=482 김필, <Black>, '스페이스 공감', EBS, 2020


그가 노래 안에 던져놓은 물음에 나만의 답을 해본다.

‘왜 사람들은 변할까’


일을 쉬었던 만큼의 시간이 일을 하면서 또 지났다. 요즘은 이전만큼 김필을 듣지 않는다.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뮤지션을 알아가기에 바빠서이기도 하다.

'난 변한 걸까? 왜 변한 걸까?'


김필을 많이 들었고, 한참 알아가는 시기를 지나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필을 듣기 전에는 몰랐던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김필의 모습, 그 다른 편에 있던 유명하지 않은 김필의 모습도 사랑하게 되면서 화려한 누군가의 이면, 널리 알려진 것의 반대편에 있는 소박하거나 낯선 것도 아름답고 내 마음에 꼭 드는 것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필은 내가 찾아 듣는 노력을 한다면, 유명하지 않은 가수나 유명하지 않은 노래도 내 마음에 꼭 맞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다. 그래서 요즘엔 음악이란 도서관이 열린 것 같다. 아는 이름이나 아는 제목이 아니어도 앨범 재킷과 제목이 마음에 들 땐 클릭해 듣고, 그 곡이 좋을 땐 깊어지고 넓어지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매일 김필의 노래를 듣는다. 좋아하는 곡들이 처음과 달라졌지만 말이다. 커버곡에서 그가 쓴 곡들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에서 좀 더 내가 좋아하는 곡들로. 내가 변한다는 것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서 빠져나와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었다. 좀 더 나다워지고, 깊어지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은 변할까’에 대해 내가 찾은 답은, 사람들이 계속 새로운 자극과 상황을 맞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더해가며 자기다워지느라, 압박을 받고 빈곤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빼가며 자기다워지느라 말이다.




나의 노래


어느 기간 동안 자신을 사로잡은 유일한 것에 대해 쓰지 않는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자신의 시간을 말하고, 어떻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 편지는 김필과 가장 가까웠던 때의 기록이다.


때로는 날카로운 그의 목소리가 이제는 편안해졌고 또 필요해졌다. 이제는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김필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본다.

꿈을 지키기 위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땐, 스스로를 바보 같은 <Dreamer>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해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나를 삼켜서 내가 보이지 않을 땐 스스로를 <Pierrot(광대)><괴수> 같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어둠 속을 걷다가도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그 목소릴 따라 빛으로 걸어갈 것이다. 때론 수많은 고민들이 나를 짓누를 <불면>의 밤, 그의 노래로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뾰족해진 마음을 거두고 나의 문제들을 돌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힘들 수도 있었던 시간 동안 내 생활에 밀도 있게 뿌리내려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준 김필과 그의 음악에 감사한다. 그로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쓸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만, 실제로 겪은 마음을 곡에 쓸 것인지 또 얼마나 투명하게 쓸 것인지는 전적으로 창작자인 송라이터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덕분에 말해주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순간들과, 그것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김필의 가사) 8

네가 부서진 그 순간
넌 네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어

- 김필, <Feel's Song>, 《슈퍼스타K6 결승전》(2014)


https://youtu.be/SCFwq9uJ9Hc 김필, <Feel's Song> (김필 유튜브 채널 음원)

https://youtu.be/cm4otCXUQ6E 김필, <Feel's Song>, '스페이스 공감' 미방송 영상, EBS, 2017


그의 노래대로 내가 부서질 때마다 나에게, 내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겠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이리저리 부대끼면서도 계속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순을 가진 사람이 자신은 결코 마음 편해질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그때서야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순이란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는 상태다.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서도 선택이라는 걸 해야 한다면 내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엇이 더 나다운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순들 속에서 부서지는 일은 조금이라도 더 나다운 것을 남기고 조금이라도 더 나답지 않은 것을 버리는 일,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경계를 섬세하게 다듬게 되는 일인 것 같다.


그동안 난 좀 바보 같은 전사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싸우며 나아가는 게 아니라, 멈춰서서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었으니까. 양손에 창과 방패를 하나씩 들고 어느 것이 더 센지 서로 부딪혀보느라 여념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앞으로는 나의 창과 방패를 세상을 향해 들고 나의 전쟁에서 무기로 쓰고 싶다. 목숨과 같은 것들을 지키고 꿈들을 쟁취해 가는 데 쓰고 싶다. 그렇게 나아가는 내 걸음이 누군가가 보기엔 느리고 미약할지라도, 스스로는 놀라워하며 격려하고 싶다.




짧은 시와 같은 노래들을 사랑한 시간이었지만,

너무 많은 생각에 넘쳐나는 글을 더는 줄이지 못한 나를

누군가는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



12월에서 1월, 2월에 걸친 시간들을 담아,

2021년 2월에 연서가.








*덧붙임


김필의 커버곡 무대 영상에 한참 빠져 있을 때, 나는 지난 편지인 <나의 이야기> 원고를 쓰고 있었고 내가 살아온 시간에 비해 성취가 없는 것에 기가 죽어 있었다. 지난 편지의 최종 원고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2020.12.23. 내가 김필에 대해 처음으로 쓴 문장은 다음과 같다.


김필이 그렇게 소리를 내듯, 나도 글로 그런 멋진 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걸어온 한 길, 그의 성취가 부럽지만 사실 부러워할 자격이 없다. 그게 뭔지 모르니까. 그의 빛나는 무대 하나 뒤에 숨겨진 어둠이 얼마나 큰지, 나는 모른다.
- <나의 이야기(HLTAM.4)> 초안 중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그는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과 내 인생 화두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갈증이 맞물려 김필의 노래를 그토록 듣게 했던 것 같다. 노래를 들으면서 그가 가진 어떤 물음들에 대해서는 이 편지에 쓴 것처럼 매우 공감하고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다른 물음들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김필과 나의 갈림길에 대해서는 내 이해가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나는 왜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차이’와 ‘그 차이를 당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준다면.

그동안 ‘같음’이나 ‘공감’을 통해서는 자신에게 던질 수 없었던 새로운 질문을 하게 한다면.

섣부른 이해로 결국은 김필을 오해하게 되는 것을 막아준다면,

그래서 언젠가는 그를 이해할 수도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나는 지금 모든 걸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기쁘게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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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홍연서 All rights reserved.



https://youtu.be/ZBJyncJhJdE

※이 글은 2021.03.17. 유튜브에 업로드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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